된장, 너무 흔하거나 너무 귀하거나

오리지널을 찾아서_된장
  • 등록 2009-03-05 오후 12:15:00

    수정 2009-03-05 오후 12:15:00

[조선일보 제공] "아무리 똑같이 담가도 손 다르면 장맛도 달라
콩은 유기농이어야 자연적으로 꼬숩지요"
유기농이라 '단맛' 3년 묵혀 '꼬신맛'


주말매거진은 조선일보 창간을 맞아 새로운 기획시리즈 '오리지널을 찾아서'를 시작합니다. 옛 방식 그대로 키우고 만드는 음식을 매달 하나씩 가려 소개합니다. 옛 방식을 고스란히 지키고 따르면 굳이 '유기농' '슬로푸드'를 따질 필요가 없지 않을까요. 처음 소개하는 음식은 한식의 기본 중 기본인 된장입니다.

비닐하우스 문을 열고 들어서니 구수하면서도 달큰한 향기가 가득하다. "이게 짠가 싱거운가?" "소금에 물을 더 부어야지." "어때요, 됐어요?" "조금 더 저어."

김흥년(65)·정춘희(62)씨 부부가 대화를 주고받으며 된장 담그는 광경이 구수하다. 정춘희씨는 "장 담글 때는 꼭 둘이서만 한다"고 했다. "메주 만들 때는 사람을 불러다 써요. 하지만 장은 여럿이 담그면 원하는 맛이 나지 않더라고요. 똑같은 재료를 가지고 똑같이 만드는데, 사람마다 맛이 다 달라요. 희한해요." 

▲ 메주 쑬 때는 다른 사람 도움을 받아도 된장 담그는 날만큼은 부부 둘만 일한다는 김 흥년 정춘희씨. 약 치지 않고 키운 콩으로 만든 메주를 짚불로 소독해 만든 된장은 추억 속 "시골 할머니 밥상" 맛을 낸다. / 조선영상미디어

강원도 홍천군 서석면 청량리. 홍천에 들어선 다음에도 한참을 달려야 닿는 깊은 산골 마을이다. 김흥년·정춘희 부부는 지난달 24일부터 장을 담그기 시작했다. 앞으로 일주일은 부부가 장을 담근다고 했다. 장은 흔히 정월(음력 1월 첫 말(午)날)에 담가야 좋다고 한다. 2월 24일은 음력으로 1월 마지막 날이니, 전통대로 따지자면 좀 늦은 셈이다. "정월장이 좋다는 게 기온도 적당하고 벌레도 없을 때라서 그렇다는 거지, 굳이 따질 필요가 있나요?"

정춘희씨는 본래 태백 사람이다. 충청도 신랑 만나서 서울에서 35년을 살다 13년 전 홍천으로 이사 왔다. 처음에는 오이며 각종 농사를 지었다. "농사하니까 빚만 져요. 농사해서 살 수 없겠다, 된장 해야겠다 싶더라고요."

정씨가 된장을 만들겠다고 나선 건 그만큼 자신이 있어서였다. "처녀 때 고기를 안 먹었어요. 된장만 먹었어요. 밥도 된장에 비벼 먹고 그랬거든요. 친정어머니도 된장을 잘 담그셨고요. 시집 와서 된장 만드니까 시댁 식구들이 다 맛있다고 하시더라고요. 서울 살 때도 된장 담가서 주변 분들한테 드리기도 하고 더러 팔기도 하고 그랬어요." 

▲ 3년 묵은 된장, 구수하고 쿰쿰하고 달다. / 조선영상미디어

땅 6600㎡(2000평)에 콩을 심었다. 6년 전부터 제초제나 병충해약을 뿌리지 않고 유기농으로 재배하기 시작했다. 유기농 인증은 2년 전 받았다. '유기농 해야겠다' 작정하고 시작하지는 않았다. "남편이 오이에 약 치다 보니까 현기증이 생겨서 안 되겠더라고요. 하지 말자고 했어요."

부부는 약 치지 않고 키운 콩을 5월에 심어서 9월에 벤다. 17가마 수확했다고 했다. 11월 중순경부터 메주를 쑤기 시작한다. 지난해에는 11월 17일부터 큰 솥 세 개를 걸고 하루 2가마씩 일주일 동안 콩을 삶았다. 삶은 콩을 네모난 틀에 눌러 담아 모양을 만든다. 적당히 굳으면 볏짚으로 묶어서 높은 곳에 매달아 띄운다. 그러면 '바실루스 서브틸러스'라는 세균과 자연계 국균이 메주에 달라붙어 하얗게 곰팡이가 핀다. "하얀 곰팡이가 좋은 거예요. 시꺼먼 건 좋지 않아요. 어떤 데는 푸르스름하기까지 하던데, 그건 좋지 않아요."

좋은 메주는 겉이 딱딱하고 속은 말랑하다. 겉이 거무스름하거나 끈적거리면 좋지 않다. 메주 색이 원래 콩 빛깔 그대로면 덜 뜬 것이다. 색은 붉은빛이 도는 황색이 좋다. 잘 뜬 메주 곰팡이는 흰색이나 노란색을 띤다. 검거나 푸르면 잡균이 번식한 것이다.

'개량 메주'는 밑가루와 쌀가루를 섞어 삶은 콩에 황국균을 넣어 만든다. 일주일 정도면 발효가 되니 재래식 메주보다 훨씬 짧다. 더 달지만 된장 특유의 깊은 풍미는 약하다. 개량 메주는 콩알이 잘고 깨뜨렸을 때 표피가 얇으면서 연한 녹두색이 좋다. 너무 희거나 검다면 온도 조절이 안 됐다는 뜻이다.

"방부제나 발효제는 안 넣어요. 아이고, 해 보지도 않았어요."

▲ 조선영상미디어

메주가 잘 떴으면 본격적인 장 담그기다. 메주를 물로 씻고, 장독에 볏짚을 넣고 불을 붙여 소독한다. 정춘희씨가 큰 통에 소금을 담고 물을 붓는다. 달걀을 띄워 보더니 남편에게 "됐느냐"고 묻는다. "장 담그는 건 나보다 남편이 더 도사거든요."

독에 메주를 눌러 담는다. 김흥년씨가 싸리나무 가지로 '×'자 모양을 만들어 메주 더미를 누른다. "이렇게 해야 소금물을 부어도 메주가 뜨지 않아요. 싸리나무를 쓰는 건 냄새가 좋아서고요." 소금물에 달걀을 띄워 위에서 본 크기가 500원짜리 동전만 하면 적당한 염도. 이 소금물을 독에 붓는다. 공기방울이 바글바글 올라온다. 붉은 고추와 대추, 깨, 숯을 띄운다. "이게 다예요. 메주에 물, 소금. 방부제나 발효제는 안 넣어요."

50일에서 60일이 지나면 된장을 푸는 시기이다. 된장을 독에서 퍼내면 발그스름한 검정빛 간장이 남는다. "간장을 많이 빼면 노란빛이 나고, 덜 빼면 검붉은색이 되죠. 요즘 사람들은 노란 황금빛 된장을 좋아하지만, 맛이나 영양은 아무래도 간장을 덜 뺀 된장이 좋지요." 콩이 완전히 으스러지지 않을 정도로 된장을 빻아서 독에 다시 담는다. 간장은 따로 담는다. 이렇게 된장을 담은 독은 하루 종일 비닐하우스 속에서 따뜻한 햇볕 속에서 기분 좋게 익어간다.

된장은 오래될수록 좋다고들 한다. 맞는 말이지만 파는 사람 입장에서는 꼭 그렇지도 않을 것이다. 하루가 다르게 양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김흥년씨가 1년 된 된장독과 4년 묵은 된장독을 열어 보여줬다. 양이 3분의 1가량은 준 것 같다. 빡빡해진 된장에는 따로 담아뒀던 간장을 부어서 촉촉하게 만들어 판다. 정춘희씨의 이름을 딴 '춘희된장'은 대개 3년 산이 팔린다. 특별히 좋은 걸 팔려는 생각은 아니다. "워낙 팔리지 않으니까 그냥 남아있는 거예요. 대신 우리가 먹는 것처럼 만들어서 판다는 건 있어요."

점심 식사시간이 됐다. 정춘희씨가 "된장 맛 좀 보라"며 된장과 길쭉하게 썬 배추, 된장국, 고추장찌개 등 자기가 만든 된장으로 한상 그득하게 차려준다. 된장국이 약간 쿰쿰하면서도 구수하고 달다. 어릴 적 친구네 시골집에 놀러 갔을 때, 친구 할머니가 끓여주시던 된장국 냄새. 시중 판매하는 개량 된장에서는 느낄 수 없는 깊이가 있다. "유기농 하는 게 뭐가 좋은가 하면은요, 농산물이 자연적으로 달고 '꼬신' 맛이 있어요. 이런 맛을 제초제가 싹 없애요. 병충해약은 그 맛을 없애지 않는데. 우리 콩 먹어본 분이 '미원 넣었느냐'고 물어. 그러면 큰일 나게요?"

◆춘희된장 사려면

정보화마을 인빌쇼핑(www.invil.com)에서 1㎏ 1만5000원에 판매한다. 판매 단위는 최저 2㎏이며 택배비는 별도로 추가된다. 인근 5일장이나 행사에서는 1㎏당 1만2000원에 판매하기도 한다. 춘희식품 (033)433-2336

◆인빌쇼핑

인빌쇼핑은 전국 358개 농어촌 마을로 구성된 정보화마을의 온라인 상거래와 체험관광을 돕기 위해 만든 웹사이트이다. 마을별로 특색 있는 농수산물을 올려놓고 있고, 중간유통 없이 판매해 좋은 물건을 대형 마트보다 싸게 구매할 수도 있다. 춘희된장 외에 전국 된장 50여종과 쌀, 과일, 견과, 채소, 건어물, 해조류, 축산물, 김치, 젓갈, 음료 등 다양한 지역 특산품을 판매한다. 문의 080-725-1100

▲ 조선일보 DB
신라왕, 예물로 '메주' 보냈다

◆한국 된장 역사

한민족은 옛날부터 '장 잘 담그는 민족'으로 소문났다. 290년 중국에서 쓰여진 '삼국지 위지동이전'을 보면 '고구려인은 장 담그고 술 빚는 솜씨가 훌륭하다'고 적혔다.

장(醬)은 원래 간장을 말한다. 하지만 넓은 의미로는 된장과 청국장, 막장, 고추장을 아우른다. 장류(醬類)라고도 한다. 메주가 문헌에 처음 나온 건 '삼국사기'이다. 신라 신문왕 3년 왕이 김흠운의 딸을 왕비로 삼을 때 보낸 예물 중 '시(�f)'를 보냈다는 내용이 있다. 시가 바로 메주를 말한다. 고려 현종 9년(1018년)과 문종 6년(1052년)에는 '굶주린 백성에게 구황식품으로 장을 배급했다'는 기록이 있다. 조선시대에는 고추를 이용한 만초장(고추장) 제조법이 등장한다. 1930년대 일본사람들에 의해 장류의 공업화가 시작됐고, 최근에는 재래식 메주 대신 개량 메주를 이용한 '개량된장'이 주를 이루고 있다.

◆한국된장 VS. 일본된장(미소)

한국 전통 된장은 '바실러스 서브틸러스'라는 세균과 자연계 국균을 이용한다. 일본 된장인 미소는 '아스퍼질러스 오리제'라는 순수한 국균만 사용한다. 기후가 습한 일본에서는 우리나라처럼 자연발효되도록 두면 부패한다. 그래서 곰팡이의 일종인 '코지균'을 쌀에 미리 길러 콩과 섞어서 미소를 만든다. 미소는 이처럼 쌀이나 보리, 밀가루 등이 첨가된다. 한국 된장은 곰팡이와 효소 등 복합균이 작용해 혈전용해능력이나 항암효과 등 효능이 미소보다 뛰어나다. 하지만 자연발효에 의존하다 보니 균일한 제품 만들기가 어렵고 만드는 시기가 한정된다. 미소는 효능이 한국 된장만 못하지만, 언제나 균일한 품질을 유지할 수 있어 한국 된장보다 일찍 산업화할 수 있었다. 맛도 다를 수밖에 없다. 우리 된장이 구수하고 짜다면, 미소는 달고 담백하다.

◆전통 된장 VS. 개량 된장

우리가 쉽게 사먹는 된장은 '개량 된장'이다. 콩에 쌀과 밀가루 따위를 섞어 메주를 만들고 코지균을 접종해 발효시킨다. 재래식 전통 된장과 미소를 섞은 것이다. 깊고 구수한 맛이나 영양은 콩만 사용하는 전통 된장이 우수하다. 하지만 개량 된장은 제조기간이 짧고, 잡균이 섞이지 않아 위생상 안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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