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트체크]서민형 안심전환대출, 세입자가 낸 세금으로 부자 집주인 지원?

  • 등록 2019-11-16 오후 5:00:00

    수정 2019-11-16 오후 7:07:04

서울 중구 명동의 한 은행 벽면에 대출 상품 홍보 전단이 붙어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데일리 박종오 기자] “서민형 안심전환대출은 정부가 직접적인 재정 지원을 하지 않습니다.”

서민형 안심전환대출은 집주인이 기존 변동금리·준고정금리 주택담보대출을 정부 지원을 받아 최저 연 1%대 고정금리로 갈아탈 수 있는 정책 상품이다. 이 상품을 두고 “집 없는 무주택 세입자가 부담하는 세금으로 왜 집 있는 사람을 지원하느냐”는 형평성 논란이 일 때마다 정부는 이같이 설명한다. “안심대출은 정부가 시장에서 조달한 자금을 재원으로 사용하기 때문에 세금을 쓰지 않습니다.”

정부 “안심대출 지원에 나랏돈 안 써”

정말일까? 결론부터 말하면 아니다.

서민형 안심대출은 집주인이 은행에서 받은 기존 주택담보대출을 금융 공공기관인 주택금융공사(주금공)의 저금리 대출로 갈아타는 것이다. 다만 주금공이 집주인에게 저금리 대출을 해줄 돈을 직접 마련하진 않는다. 안심대출이 은행이 가진 ‘고금리 채권’을 ‘저금리 증권’으로 바꾸는 구조라서다.

주금공은 은행이 보유한 주택담보대출의 채권(대출 원금과 이자를 받을 권리)을 넘겨받아 집주인의 이자 부담을 낮추고, 다시 이 채권을 기초자산으로 하는 주택저당증권(MBS)을 발행해 은행에 준다. 은행으로선 현재 연 3~4%대의 이자를 받는 주택담보대출 채권을 주금공에 넘기고, 그 대가로 주금공으로부터 연 1~2%대 이자를 지급받는 안심대출 증권을 받는 셈이다.

이 구조대로라면 안심대출에 나랏돈을 쓰지 않는다는 정부 얘기가 맞는다. 은행만 대출 이자 수입이 일부 줄어드는 손해를 볼 뿐이다.

대출심사 부담 커지자 추가 인건비 생겨

자료=금융위원회


그러나 문제는 정부가 예상하지 못한 추가 비용이 발생했다는 점이다.

총 20조원 한도로 공급하는 서민형 안심전환대출의 지원 신청 접수에 지난 9월 63만여 명(지원 신청액 약 74조원)이 몰렸다. 전체 접수자의 약 88%(56만여 명)는 인터넷·모바일 등 온라인에서 대출을 신청했다. 정부가 온라인 신청자에게 대출 금리를 0.1%포인트 낮춰주는 혜택을 제공하기로 해서다. 온라인은 은행 창구에서 대출을 신청할 때보다 서류 작성 등에 들어가는 비용이 적은 만큼 이자를 덜 받기로 한 것이다.

하지만 실제론 또 다른 비용이 생겼다. 온라인 대출 신청자가 너무 많다 보니 이를 직접 처리해야 하는 주금공 직원들의 대출 심사 부담이 커진 것이다. “주금공이 ‘죽음공’됐다”는 웃지 못할 말이 나온 배경이다.

결국 주금공은 지난 10월 서민형 안심대출 심사 업무를 지원할 계약직 직원을 두 차례에 걸쳐 122명 추가로 채용했다. 대출 심사 비용을 아껴서 집주인의 이자 부담을 줄여주려다가 되려 인건비를 더 쓰게 된 셈이다.

공사가 계약직 직원에게 지급하는 인건비는 1명당 월 178만원씩 2개월간 모두 4억3000여만원이다. 주금공 관계자는 “당초 예상치 못한 비용이 발생한 것은 맞는다”면서도 “이들에게 지급하는 인건비는 안심대출 온라인 신청자가 받는 이자 감면 혜택에 비하면 매우 적은 금액”이라고 말했다.

대출신청·재원마련 시차 탓에 ‘금리 역마진’ 우려도 커

더 큰 비용이 추가로 발생할 가능성도 있다. ‘금리 역마진’ 우려 때문이다.

정부는 안심대출의 재원인 MBS를 다음달부터 오는 2~3월까지 여러 차례로 나눠서 발행할 예정이다. 이 MBS 금리는 정부가 발행하는 국고채 금리에 가산금리를 더해서 정한다. 은행은 별도의 입찰을 거치지 않고 주금공에 넘겨준 주택담보대출 채권 금액만큼 MBS를 할당받는다.

문제는 최근 시장 금리가 껑충 뛰어오르며 주금공이 안심대출 이용자에게 받는 이자보다 MBS 투자자(은행)에게 줘야 할 이자가 더 많아지는 ‘이자 손실’을 볼 수 있다는 점이다.

서민형 안심전환대출의 대출 금리는 연 1.85~2.2%다. 정부는 지난 9월 안심대출 지원 접수를 시작하며 일찌감치 대출 금리를 확정했다. 한 달이면 대출 심사를 끝내고 바로 대출 갈아타기를 시작할 수 있다고 보고 당시의 시장 금리 수준에서 대출 금리를 낮게 정한 것이다.

하지만 주금공의 대출 심사가 장기화하면서 문제가 생겼다. MBS 금리는 일반적으로 발행 시점에 결정하는데, 정부가 안심대출 금리를 먼저 확정해 놓고 정작 MBS 발행이 늦어지면서 대출 금리와 조달 금리 결정의 ‘시차’가 생긴 것이다. 9월 이후 시장 금리가 뜀박질하면서 앞으로 주금공이 안심대출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발행해야 하는 MBS 금리도 덩달아 올라가게 됐다는 이야기다.

이자 적자나면 공공기관 돈으로 부담해야



안심대출 MBS의 기준금리가 되는 국고채 5년물 금리는 안심대출 출시일인 지난 9월 16일 1.39%에서 이달 15일 현재 1.6%로 0.21%포인트나 상승했다. 금리 오름세가 계속 이어지면 주금공이 은행에 찍어서 공급해야 하는 MBS 금리도 함께 올라갈 수밖에 없다.

만약 주금공이 안심대출 이용자에게 연평균 2% 이자를 받고 안심대출 MBS를 보유한 은행에는 2%가 넘는 이자를 줘야 한다면 그 적자액(주금공의 MBS 이자 지급액-안심대출 이자 수입)은 주금공이 자기 돈으로 감당해야 한다.

공공기관의 예산 즉 넓은 의미에서 정부 재정이 들어갈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다. 현 정부 들어 정부가 주금공에 각종 사업 명목으로 출자한 금액은 1800억원에 이른다.

주금공 관계자는 “안심대출의 금리 위험이 있는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향후 시장 금리의 움직임을 예측하기 어려운 만큼 지금 금리 역마진 여부를 얘기하는 것은 성급하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자 손실이 일부 발생하더라도 정책 수행기관으로서 공사가 자체 순이익을 활용해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라고 추정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집주인이라도 다 부자는 아냐

한가지 생각해볼 것은 안심대출의 지원 대상이 집주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상대적으로 사정이 어려운 세입자가 낸 세금으로 집 가진 부자를 지원한다”고 단정해서 비판하긴 어렵다는 점이다.

서민형 안심전환대출은 대출 신청자가 가진 집값이 낮은 순으로 지원 대상으로 우선 선정하는데, 이번 20조원 공급의 커트라인은 집값 2억1000만원이 될 것으로 정부는 예상하고 있다. 보유 주택 가격이 2억1000만원을 넘는 집주인은 이용이 어렵다는 얘기다.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지난 10월 기준 서울·수도권의 아파트를 포함한 주택의 평균 전셋값은 2억5737만원, 중위가격(가격이 높은 순서대로 줄 세웠을 때 한가운데에 있는 집)은 2억4327만원에 이른다. 수도권에서 전세 사는 세입자가 정부의 안심대출 지원을 받는 집주인보다 부자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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