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인(52)이 간간이 작업실에 들른다. 그녀는 미술을 전공하지 않은 보통의 생활인이다. 그래도 강씨는 작품을 보는 부인의 표정을 슬쩍 읽고 "이 그림은 됐다" 혹은 "안 됐다"는 판단을 내리곤 한다. 그런 내심을 부인에게 일일이 털어놓진 않는다. 그는 눈썹이 짙고 볼이 우묵하며 웃음이 없고 말수가 적다. 눌변이다. 낱말과 낱말 사이가 띄엄띄엄 벌어지는 어눌하고 무거운 말투를 쓴다. 그는 "나는 싱싱한 그림, 쉽디쉬운 그림을 그리고 싶다"고 했다.
서울 소격동 학고재 화랑에서 열리는 개인전에 강씨는 '스침'이라는 제목을 달고 근작 20여 점을 걸었다. 그는 민중미술에서 출발했다. 지금은 추상에 육박하는 단순한 구도로 자연을 그린다. 미술 평론가 성완경(64) 인하대 교수는 그가 "추상에 근접한 지점까지 갔다가 다시 구상으로 돌아오는 왕복운동을 반복하고 있다"고 썼다. 강씨는 중년 이상 애호가 층을 두텁게 확보한 화가다. 그러나 한창 활발하게 활동하는 30~40대 평론가들의 관심에선 얼마간 비껴 서 있다. 시류와의 간극을 스스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묻자, 그는 짧고 무거운 침묵 끝에 간결하게 답했다.
"나는 '내 이름이 미술사의 어떤 대목에 올라가는가'에는 별 관심 없어요. 그런 것에서 의식적으로 거리를 뒀지요. 대신 '미술이 무엇이냐' 자꾸 생각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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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하러 뭍에 나간 아홉 살 터울인 형이 간간이 소포를 보내왔다. 누런 종이를 풀면 잡지에 실린 명화를 여러 장 반듯하게 오려 붙인 스케치북이 나왔다. 그 스케치북을 강씨는 화집(畵集)처럼 오래오래 들여다보곤 했다. 형은 10년 전 별세했다.
귀덕 1리는 들판 너머 바다가 물결치는 300호 규모의 소읍이다. 주민 중에 화가는 강씨 뿐이다. 부인을 빼면 아무하고도 한 마디 안 하고 지나가는 날이 있다. 강씨는 "적막을 견디는 것이 쉽지 않았다"고 했다.
"지나온 생애에 궂은일도 있고 좋은 일도 있었지요. 내 몸만 제주에 온 게 아니라, 오만 가지 상념도 나를 따라왔어요. 그걸 내 속에 풀어헤쳐 놓고 몸으론 김을 매지요. 그러자면 새 소리, 바람 소리, 파도 소리가 들리는데 그걸 묵묵히 듣기가 참 힘들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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