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아레스, 바티스투타 우상화한 진짜 이유

  • 등록 2015-04-21 오후 6:03:04

    수정 2015-04-21 오후 7:56:34

[이데일리 e뉴스 박종민 기자]

△ 피오렌티나 시절 가브리엘 바티스투타(오른쪽). (사진=AFPBBNews)


파리 생제르맹(PSG)과 2014-2015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8강 2차전을 앞두고 있는 바르셀로나의 공격수 루이스 수아레스(28)가 아르헨티나 축구 전설 가브리엘 바티스투타(46)를 자신의 ‘우상(idol)’이라고 밝혔다.

20일(현지시간) 기자회견에서 수아레스는 “항상 말해왔다. 롤모델, 내가 닮고 싶은 선수는 바티스투타다”라고 말문을 열었다. 수아레스는 공격 진영에서의 활동성 등을 이유로 바티스투타가 여느 등번호 ‘9번’, 즉 스트라이커들과 달랐다고 설명했다.

수아레스는 피오렌티나 시절 바티스투타를 특별하게 기억했다. 그 시절 바티스투타를 최고라고 치켜세운 수아레스는 그러나 “그를 따라하거나, 그가 되고 싶지는 않다”고 말했다. 바티스투타의 플레이를 참고하고 그를 존경하지만, 자신의 플레이 스타일을 잃지는 않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바티스투타는 아르헨티나 원조 스트라이커로 통한다. 이탈리아 세리에A에서 318경기에 출전해 184골을 넣었다. 이는 세리에A 역대 최다득점 9위에 해당하는 기록이다. 피오렌티나 유니폼을 입고는 269경기에 나와 168골을 터뜨렸다. 그는 아르헨티나 대표팀 역대 최다 득점자라는 타이틀도 가지고 있다.

가끔 독단적인 플레이로 빈축을 산 경우는 있지만, 바티스투타는 축구계의 ‘로맨티시스트(romanticist)’였다. 그는 소속팀 피오렌티나에 대한 애정이 각별했다. 1993년 팀이 세리에B로 강등됐을 때 연봉삭감까지 하면서 잔류했다. 당시 그는 각 구단으로부터 무수한 이적 제안을 받았지만, 끝내 의리를 지키며 1년 만에 다시 팀을 승격시켰다.

바티스투타의 피오렌티나는 결국 1995년 코파 이탈리아 정상에 올랐다. 의리를 지키며 팀을 우승시킨 그를 위해 팬들은 훗날 동상을 세워주기도 했다.

2000년 구단은 재정난 해결의 일환으로 바티스투타를 AS로마로 보냈다. AS로마 유니폼을 입고 친정 피오렌티나와 마주하게 된 그는 결승골을 터뜨렸지만, 어떠한 세리머니도 하지 않고 눈물만 흘렸다. 피오렌티나와의 경기에 출전하고 싶지 않았다는 그의 소감은 피오렌티나 팬들에게 진한 감동을 선사했다.

수아레스가 뜬금없이 바티스투타를 언급한 까닭은 무엇일까. 최근 그는 유럽축구연맹(UEFA) 공식 홈페이지에 올라온 인터뷰 기사에서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위해 바르셀로나로 이적했다고 털어놨다. 분명한 것은 수아레스가 바티스투타처럼 ‘로맨티시스트’가 아니라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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