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트체크]폐기물 쌓을 곳 없어 곧 원전가동 중단…사실일까?

한수원 “2021년 11월 포화…올 4월엔 증설 착공해야”
재검토위 “3호기 정비 길어지며 약 4개월 추가 여유”
여유 생긴 건 '팩트'…정책 수립 논의는 '산 넘어 산'
  • 등록 2020-02-17 오전 9:00:00

    수정 2020-02-17 오전 10:58:28

한국수력원자력 새울원자력발전본부의 신고리4호기의 사용 후 핵연료 저장조. 사진 속 물은 순수(demineralized water)에 붕산을 섞은 붕산수이다. 한수원 제공
[세종=이데일리 김형욱 김상윤 기자] “월성 3호기 정비일정이 길어지면서 월성 원자력발전소 내 사용 후 핵연료(고준위 방사성폐기물) 임시저장시설이 포화하는 시기도 약 4개월 정도의 여유가 생겼다.”

사용후핵연료 관리정책 재검토위원회 위원이자 대변인 역할을 맡고 있는 이윤석 서울시립대 도시사회학과 교수는 지난 12일 세종 산업통상자원부에서 기자들과 만나 이렇게 말했다. 정부와 재검토위의 사용 후 핵연료 관리정책 재수립 과정이 늦어지면서 멀쩡한 월성 원전 가동이 중단되는 것 아니냐는 일각의 우려에 대한 답변이다.

월성원전을 운영하는 한국수력원자력은 앞서 한국방사성폐기물학회의 연구용역 결과를 토대로 이곳 포화 시기를 2021년 11월로 전망했다. 또 임시저장시설 증설 건설기간이 통상 19개월인 만큼 올 4월에는 착공해야 월성 원전의 정상적인 발전 운전이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월성 원전 임시저장시설의 포화율은 지난해 말 94.18%에 이르렀다. 건식저장시설인 맥스터 기준으론 95.2%다. 이곳이 꽉 차버리면 2.1기가와트(GW) 규모 월성 2~4호기가 가동을 멈춰야 한다. 전력 수급에 차질을 빚을 수 밖에 없다. 반면 재검토위는 정비일정 지연 영향으로 착공 ‘골든타임’이 8월로 4개월로 늦춰진 만큼 아직 시간적 여유가 있다는 입장이다.

월성 원전 가동률 감소세…여유 생긴 건 ‘사실’

결론부터 얘기하면 당초 예상보다 시간적 여유가 생긴 건 ‘팩트’라는 게 대다수 전문가의 공통된 판단이다. 최근 2년 새 월성 원전 이용률이 줄었고 연료를 그만큼 덜 썼으니 폐기물도 예상보다 덜 나오는 게 당연하다는 설명이다.

한수원이 올 4월을 ‘데드라인’으로 본 근거는 방폐학회의 2018년 12월 연구용역이다. 방폐학회는 2007~2017년 11년 동안의 핵연료 사용량과 폐기물 발생량을 토대로 2018년 이후의 폐기물 발생량을 추정했고 이 결과 2021년 11월께 저장시설이 가득찬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러나 조사 이후 시점인 2018~2019년의 월성 원전 이용률은 이전보다 줄었다. 2007~2017년 평균 이용률은 81.5%였는데 2018년엔 80.0%, 2019년엔 78.2%로 떨어졌다.

월성3호기의 정비기간이 예상보다 길어진 영향이 컸다. 월성2호기와 월성4호기는 지난해 1~2개월의 정비기간 외에는 정상 가동한 반면 월성3호기는 지난해 9월10일 시작한 정비기간이 습분분리기 결함 때문에 예상보다 길어졌다. 연장된 정비기간은 오는 5월10일까지 총 8개월이다. 이 한 가지 변수만 감안해도 저장시설 포화 시기는 2.5개월가량 늦어진다는 게 재검토위의 계산이다.

엄재영 사용후핵연료 관리정책 재검토지원단 부단장은 “한수원이 분기·월별로 발표하는 사용 후 핵연료 발생 실적과 내년 5월까지로 잡힌 월성 3호기 정비 일정 등 변수를 방폐학회 용역 당시 계산 모델에 대입하면 포화 시점이 4개월 정도 늦어진다”고 설명했다.

정범진 경희대 원자력공학과 교수는 “4개월이 딱 맞는지는 따져봐야하지만 월성 1호기 조기 종료와 월성 3~4호기 가동률 저하 등으로 여유가 생긴 건 분명하다”고 말했다.

시간 벌었지만 공론화 논의 과정은 ‘산 넘어 산’

그러나 재검토위 게산대로 시간을 좀더 벌었다고 해서 안심할 일은 아니다. 사용 후 핵연료를 어떻게 처리할지에 대한 대국민 의견수렴과 이를 토대로 한 정책 수립 과정은 첩첩산중이다.

원전 자체를 반대하는 시민사회단체는 ‘데드라인’을 정해놓고 공론화를 추진하는 것 자체가 바람직하지 않다고 보고 있다. 국민과 지역 주민에 대한 공론화에만 집중해도 제대로 된 사회적 합의를 이끌기 쉽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이들은 또 월성 원전 2~4호기의 전력설비 규모가 2.1GW로 전체(약 124GW)의 1.7%에 그치는데다 지난해 재생에너지 발전설비 보급량만 해도 3.4GW에 이르는 만큼 만약의 경우 가동중단 사태가 벌어져도 전력수급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양이원영 에너지전환포럼 사무처장은 “4개월이란 시간이 더 주어진 것은 중요한 요소가 아니다”라며 “월성 원전 가동률이 떨어져도 당장 전력수급에 미치는 영향이 적은 만큼 시간을 충분히 두고 제대로 된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원전업계에서는 시민사회단체가 공론화를 명분 삼아 원전의 정상 가동을 막으려 한다는 비판도 있다. 이전 정부가 공론화 과정을 거쳐 수립한 사용후핵연료 관리정책을 지역주민 의견 수렴이 부족했다는 이유로 재검토하는 것 자체가 문제라는 것이다. .

정범진 교수는 “정부는 앞선 공론화의 문제점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적시하지 않고 있는데다 위원 선정 등 중요하지 않은 일에 대부분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우리나라에는 24기의 원전이 있고 전체 발전량의 23.4%(2018년)을 담당하고 있다. 그러나 여기서 쓰고 남은 사용 후 핵연료, 즉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리법은 난제로 남아 있다. 대부분 원전 내 임시저장시설에 보관하고 있는데 포화 시점이 다가오고 있고 영구·중간저장시설은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다. 정부는 1983년 이후 2015년까지 관련 정책을 마련해 추진했으나 매번 지역민 반대 등에 부딪혀 제자리걸음을 걷고 있다.

사용 후 핵연료 저장시설 설치 문제는 전 세계적인 난제이기도 하다. 현재 영구저장시설 건설을 확정해 짓고 있는 나라는 핀란드 한 곳뿐이다.

정부는 이에 관리정책 수립에 앞서 전국·지역 주민의 의견을 묻는 충분한 공론화 과정이 관련 정책을 원활히 추진할 수 있는 핵심이라고 보고 원자력계와 시민사회계, 지역 주민과의 논의 끝에 지난해 5월 15명의 민간 전문위원으로 이뤄진 재검토위를 구성하고 이들을 통해 의견수렴 방법을 논의해 왔다.

이윤석 교수는 “공정한 공론화 과정을 토대로 국민적 수용성을 높이는 게 가장 중요하다. 예상 추진 시점을 말하기는 조심스럽지만 공론화와 관리정책 수립 과정이 원전 운영에 영향을 주지 않도록 할 것”이라며 “관리정책을 제때 마련할 수 있도록 온 힘을 기울이겠다”고 말했다.

국내 원전 모습. 한수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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