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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용후핵연료 관리정책 재검토위원회 위원이자 대변인 역할을 맡고 있는 이윤석 서울시립대 도시사회학과 교수는 지난 12일 세종 산업통상자원부에서 기자들과 만나 이렇게 말했다. 정부와 재검토위의 사용 후 핵연료 관리정책 재수립 과정이 늦어지면서 멀쩡한 월성 원전 가동이 중단되는 것 아니냐는 일각의 우려에 대한 답변이다.
월성원전을 운영하는 한국수력원자력은 앞서 한국방사성폐기물학회의 연구용역 결과를 토대로 이곳 포화 시기를 2021년 11월로 전망했다. 또 임시저장시설 증설 건설기간이 통상 19개월인 만큼 올 4월에는 착공해야 월성 원전의 정상적인 발전 운전이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월성 원전 임시저장시설의 포화율은 지난해 말 94.18%에 이르렀다. 건식저장시설인 맥스터 기준으론 95.2%다. 이곳이 꽉 차버리면 2.1기가와트(GW) 규모 월성 2~4호기가 가동을 멈춰야 한다. 전력 수급에 차질을 빚을 수 밖에 없다. 반면 재검토위는 정비일정 지연 영향으로 착공 ‘골든타임’이 8월로 4개월로 늦춰진 만큼 아직 시간적 여유가 있다는 입장이다.
월성 원전 가동률 감소세…여유 생긴 건 ‘사실’
결론부터 얘기하면 당초 예상보다 시간적 여유가 생긴 건 ‘팩트’라는 게 대다수 전문가의 공통된 판단이다. 최근 2년 새 월성 원전 이용률이 줄었고 연료를 그만큼 덜 썼으니 폐기물도 예상보다 덜 나오는 게 당연하다는 설명이다.
한수원이 올 4월을 ‘데드라인’으로 본 근거는 방폐학회의 2018년 12월 연구용역이다. 방폐학회는 2007~2017년 11년 동안의 핵연료 사용량과 폐기물 발생량을 토대로 2018년 이후의 폐기물 발생량을 추정했고 이 결과 2021년 11월께 저장시설이 가득찬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러나 조사 이후 시점인 2018~2019년의 월성 원전 이용률은 이전보다 줄었다. 2007~2017년 평균 이용률은 81.5%였는데 2018년엔 80.0%, 2019년엔 78.2%로 떨어졌다.
엄재영 사용후핵연료 관리정책 재검토지원단 부단장은 “한수원이 분기·월별로 발표하는 사용 후 핵연료 발생 실적과 내년 5월까지로 잡힌 월성 3호기 정비 일정 등 변수를 방폐학회 용역 당시 계산 모델에 대입하면 포화 시점이 4개월 정도 늦어진다”고 설명했다.
정범진 경희대 원자력공학과 교수는 “4개월이 딱 맞는지는 따져봐야하지만 월성 1호기 조기 종료와 월성 3~4호기 가동률 저하 등으로 여유가 생긴 건 분명하다”고 말했다.
시간 벌었지만 공론화 논의 과정은 ‘산 넘어 산’
그러나 재검토위 게산대로 시간을 좀더 벌었다고 해서 안심할 일은 아니다. 사용 후 핵연료를 어떻게 처리할지에 대한 대국민 의견수렴과 이를 토대로 한 정책 수립 과정은 첩첩산중이다.
원전 자체를 반대하는 시민사회단체는 ‘데드라인’을 정해놓고 공론화를 추진하는 것 자체가 바람직하지 않다고 보고 있다. 국민과 지역 주민에 대한 공론화에만 집중해도 제대로 된 사회적 합의를 이끌기 쉽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이들은 또 월성 원전 2~4호기의 전력설비 규모가 2.1GW로 전체(약 124GW)의 1.7%에 그치는데다 지난해 재생에너지 발전설비 보급량만 해도 3.4GW에 이르는 만큼 만약의 경우 가동중단 사태가 벌어져도 전력수급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양이원영 에너지전환포럼 사무처장은 “4개월이란 시간이 더 주어진 것은 중요한 요소가 아니다”라며 “월성 원전 가동률이 떨어져도 당장 전력수급에 미치는 영향이 적은 만큼 시간을 충분히 두고 제대로 된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원전업계에서는 시민사회단체가 공론화를 명분 삼아 원전의 정상 가동을 막으려 한다는 비판도 있다. 이전 정부가 공론화 과정을 거쳐 수립한 사용후핵연료 관리정책을 지역주민 의견 수렴이 부족했다는 이유로 재검토하는 것 자체가 문제라는 것이다. .
정범진 교수는 “정부는 앞선 공론화의 문제점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적시하지 않고 있는데다 위원 선정 등 중요하지 않은 일에 대부분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우리나라에는 24기의 원전이 있고 전체 발전량의 23.4%(2018년)을 담당하고 있다. 그러나 여기서 쓰고 남은 사용 후 핵연료, 즉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리법은 난제로 남아 있다. 대부분 원전 내 임시저장시설에 보관하고 있는데 포화 시점이 다가오고 있고 영구·중간저장시설은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다. 정부는 1983년 이후 2015년까지 관련 정책을 마련해 추진했으나 매번 지역민 반대 등에 부딪혀 제자리걸음을 걷고 있다.
사용 후 핵연료 저장시설 설치 문제는 전 세계적인 난제이기도 하다. 현재 영구저장시설 건설을 확정해 짓고 있는 나라는 핀란드 한 곳뿐이다.
이윤석 교수는 “공정한 공론화 과정을 토대로 국민적 수용성을 높이는 게 가장 중요하다. 예상 추진 시점을 말하기는 조심스럽지만 공론화와 관리정책 수립 과정이 원전 운영에 영향을 주지 않도록 할 것”이라며 “관리정책을 제때 마련할 수 있도록 온 힘을 기울이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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