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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 안나” “실무자가 알아서”…혐의·책임 전면 부인한 양승태
13일 검찰에 따르면 서울중앙지검 수사팀(팀장 한동훈 3차장검사)은 지난 11일 양 전 원장을 상대로 오전 9시30분부터 오후 8시40분까지 일제 강제징용자 손해배상소송 개입 의혹과 법관 사찰 및 인사불이익 의혹을 집중적으로 추궁했다. 양 전 원장은 대면조사가 끝나자 3시간 넘게 본인의 신문조서 내용을 확인한 뒤 오후 11시55분쯤 청사에서 나왔다.
이날 소환에서 검찰은 양 전 원장이 재판거래 등에 직접 개입한 의혹을 확인하는 데 집중했다. 검찰은 이를 위해 양 전 원장에게 이규진(57) 전 양형위원회 위원의 업무수첩과 법원행정처가 지난 2014~2017년 작성한 `물의야기 법관 인사조치` 보고서 등을 제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전 위원 수첩에는 양 전 원장의 지시가 빼곡히 적혀있다고 한다. 물의야기 법관 인사조치 보고서에는 양 전 원장이 특정 판사에 대해 직접 `브이(V)` 표시를 해 인사 불이익을 가한 정황이 담겨 있다. 또 양 전 원장이 강제징용 소송과 관련해 일본 전범기업을 대리한 김앤장 소속 한모 변호사를 수차례 독대한 내용이 담긴 김앤장 내부문건도 제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또 양 전 원장의 직접 개입을 뒷받침하는 다수 전·현직 법관 진술서 등으로 압박했다.
반면 양 전 원장은 혐의를 완강히 부인했다. 양 전 원장은 개별적 질문에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거나 `실무자가 알아서 해 자세한 건 모른다` 등 취지로 답변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는 본인이 직접 서명한 물의야기 법관 인사조치 문건에 대해서는 정당한 인사권한 행사로 죄가 되지 않는다는 취지의 진술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 관계자는 “범죄 혐의나 책임을 인정하는 취지는 아니다”고 설명했다. 앞서 그는 지난 11일 검찰청사 도착 전 대법원 앞에서 `부당한 인사개입이나 재판개입이 없었다는 입장인가`라는 취재진 질문에 대해서도 “그건 변함없는 사실이다”며 의혹을 부인했었다.
양 전 원장이 명확한 반박 증거 없이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하거나 실무 하급자에게 책임을 전가한 것은 사실상 진술을 거부하는 입장으로 해석된다. 앞서 박병대(62)·고영한(64) 전 법원행정처장(대법관)도 검찰 조사에서 `하급자가 알아서 했다` 등 자신의 책임을 부인하는 진술로 일관했다.
양 전 원장 변호인 최정숙(52·사법연수원 23기) 변호사는 이에 대해 “소명할 부분은 재판과정에서 하겠다는 입장”이라고 전했다. 검찰 기소를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법정에서 사실관계와 법리를 두고 다투겠다는 것이다. 이는 검찰 수사에 대한 불만을 표시하며 법정에서 방어전략을 펼쳐 승부를 보겠다는 의도로 해석된다. 양 전 원장은 입장표명에서 “편견이나 선입견 없는 공정한 시각에서 이 사건이 소명되기를 바란다”고 강조했다.
임종헌(60) 전 법원행정처 차장 역시 지난해 11월 구속기소된 이후 검찰 조사에서 줄곧 진술거부권(묵비권)을 행사하며 법정 다툼에 집중하고 있다. 이에 따라 양 전 원장이 △옛 통합진보당 의원 지위확인소송 개입 △헌법재판소 및 검찰 내부자료 유출 △3억원대 대법원 비자금 조성 등 다른 혐의를 인정할 가능성 역시 희박해 보인다.
이제 관건은 구속영장 청구 여부다. 검찰은 양 전 원장에 대해 40개가 넘는 구체적 범죄 혐의를 포착한 상태다. 검찰은 양 전 원장이 명백한 증거에도 전면 혐의를 부인하는 만큼 증거인멸 우려 등 이유로 영장을 청구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검찰은 이 사건을 조직적 범죄로 규정하고 양 전 원장과 공모관계인 임 전 차장과 박·고 전 대법관에게 모두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법원은 임 전 차장에게 영장을 발부했지만, 두 전직 대법관에 대한 영장은 기각했다.
검찰은 12~13일 휴식을 취한 양 전 원장을 이르면 14일 비공개로 다시 부를 방침이다. 양 전 원장 대면조사는 이번주 끝날 것으로 보인다. 양 전 원장 구속영장이 기각될 경우 검찰은 이 사건 연루자들을 일괄 기소할 가능성이 제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