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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훈의 신경영 비전] 대량 개인화 서비스와 필터 버블

  • 등록 2020-09-18 오전 9:12:08

    수정 2020-09-18 오전 9:12:08

[이상훈 전 두산 사장·물리학 박사] 굳이 말을 하지 않아도 알아서 내가 원하는 스타일로 머리를 다듬어주는 헤어숍, 주문하지 않아도 늘 내가 시키는 메뉴를 가져다주는 단골 식당. 우리는 이렇게 나를 알아보고 알아서 맞춤 서비스를 제공하는 곳을 특별하게 생각하고 자주 찾게 된다. 개인화된 서비스의 힘이다.

그런데 데이터 분석 기술과 인공지능의 발달로 수천만 혹은 수억 명의 고객 하나하나에게 동네 단골 식당에서나 볼 수 있던 개인화된 서비스를 제공하는 일이 기능해졌다. 유튜브에서 동영상을 보고 있으면 내가 관심을 가질만한 동영상 목록이 제공된다. 친구가 동시에 같은 동영상을 보고 있다고 해도 그 친구에게 제공되는 추천 동영상 목록은 내 목록과 같지 않다.

한 달에 20억 명이 접속하는 유튜브에서 고객이 시청하는 동영상의 70%가 목록에서 추천된 동영상일 만큼 개개의 고객 취향에 맞춘 추천 목록을 만들어내는 일이 실제로 일어나고 있다. 개인화 서비스의 대량 생산이 가능해진 것이다.

유튜브 외에도 요즘 우리 주변에서 대량 개인화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음원 스트리밍 업체, 방송/영화 스트리밍 업체, 온라인 쇼핑몰 같은 온라인 업체뿐 아니라 스타벅스 같은 오프라인 업체에서도 방문 고객에 대한 개인 추천 서비스를 제공하기 시작했다. 개인화 서비스가 늘어날수록 무엇을 살지, 무엇을 볼지, 여가 시간을 어떻게 보낼지 같은 일에 신경 쓸 필요 없이 나보다 더 나를 잘 알고 있는 개인화 서비스가 추천해 주는 대로 사고, 보고, 살아가면 되는 편한 세상이 되어야 정상일 것이다.

그런데 실상은 꼭 그렇다고 할 수 없다. 언제부턴가 개인화 서비스에서 추천해 주는 음악, 방송, 책, 뉴스, 상품들이 이미 추천받아본 적 있는 식상한 것들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더 큰 문제는 이 식상한 추천 목록을 벗어날 방법이 마땅치 않다는 것이다. 과거의 소비 패턴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추천 목록 중 하나를 선택하면 알고리즘이 파악하고 있는 나의 소비 패턴이 더욱 강화될 뿐이고, 그렇다고 추천 목록 외에서 선택을 하려고 하면 모래밭에서 바늘 찾기 식으로 정보의 홍수에 파묻히기 십상이다. 추천 목록을 만들어내는 알고리즘이 사용하는 정보의 필터 속에 갇혀버리는 필터 버블 문제가 발생한 것이다.

필터 버블은 대량 개인화 알고리즘이 개발된 초기부터 제기된 문제로 개인의 다양성을 제한할 뿐 아니라 정치적 양극화를 부채질하는 주된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필터 버블은 정보를 찾는 소비자의 만족도를 떨어뜨려 결국은 대량 개인화 서비스를 제공하는 업체에도 도움이 안 된다.

기술 시장 전문 분석 기관인 가트너는 2025년까지 기업 마케팅 담당의 80%가 개인화 관련 투자의 수익성 저하로 개인화 노력을 포기하게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궁극의 마케팅 기법으로 기대를 모았던 대량 개인화가 채 피기도 전에 시드는 꽃이 될 신세가 된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개인화 자체가 아니라 필터 버블이라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방향성의 문제가 아니라 방법의 문제인 것이다. 이미 페이스북이나 구글, 음원 스트리밍 업체인 스포티파이 등은 추천 알고리즘을 개선하여 필터 버블 문제를 극복할 방법을 시도하고 있다. 페이스북의 트렌딩 뉴스 같은 것이 좋은 예이다.

우리는 이미 너무나 많은 정보에 파묻혀 있기 때문에 개인화 서비스 없이는 살아가기 쉽지 않다. 필터 버블 때문에 개인화를 포기할 것이 아니라 필터 버블 문제를 극복해서 늘 새롭고 도움이 되는 추천 목록을 제공하는 개인화 서비스를 만들려는 노력을 더 기울여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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