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린고비도 밥 한그릇 ''뚝딱'' 어휴~ 군침 도네

[맛 다이어리] 3월의 제철음식 - 굴비
짭조름 굴비 한점에 입안이 아롱아롱
영광의 바람·온도가 최고의 맛 만들어
  • 등록 2008-03-27 오전 11:51:00

    수정 2008-03-27 오전 11:51:00

[조선일보 제공] 보기만 해도 군침이 돈다는 '밥도둑' 굴비. 그런데 굴비 맛이 예전만 못하단 어르신들이 많다. 과연 굴비 맛이 예전과 달라진 걸까? 굴비한테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답을 찾으러 '굴비의 고장' 전남 영광 법성포로 갔다. 법성포를 들어서는 순간 비릿하면서도 고소한 굴비 냄새가 하늬바람(북서풍)에 실려 솔솔 불어온다. 정말 굴비 많다. 여기도 굴비 저기도 굴비, 온통 굴비 세상이다.

"옛날처럼 굴비를 바짝 말리지 않아요. 예전에는 굴비에 소금을 쳐서(뿌려서) 몸통이 비틀어지도록 바짝 말렸지요. 요즘은 그렇게 하지 않아요. 소금을 덜 칠 뿐 아니라, 소금을 치고 난 다음 물기만 빠지면 씻고 말려서 냉동 보관합니다." 영광법성포굴비특품사업단 허광석 상무는 "굴비 맛이 옛날과 다른 것 같다는 느낌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사람들 입맛이 변했기 때문이다. 쌍용굴비유통 정명수 대표는 "서울 사람들은 덜 짜고 통통한 굴비를 더 쳐준다"면서 "우리 입에는 좀 싱겁지만, 그게 전국 평균 입맛 같다"고 했다.

굴비는 1~2㎝ 차이에도 가격이 크게 달라진다. 게다가 냉동·냉장시설이 발달해 바짝 말리지 않아도 장기보관이 가능해졌다. 그러다 보니 더 이상 굴비를 오래 바짝 말리지 않는다. 하지만 조기살 즉 단백질이 소금과 만나 숙성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감칠맛이 예전만 못하다.

그래도 원래 굴비 맛을 알고 찾는 이들이 아직 남아있다. 이런 소비자들을 위해 옛날 방식으로 만드는 조기가 있다. '마른굴비'라고 부른다. 영산해다올 박윤수 대표는 "요즘 굴비가 수분 약 68%에 염도 1.25~1.5%인 반면, 마른굴비는 수분 50% 미만이고 염도는 3~5%"라고 설명했다.

굴비가 이름을 얻은 건 900여 년 전 고려 17대 인종 때 일이다. 딸 셋을 왕에게 시집 보내던 세도가 이자겸(?~1126)이 인종을 독살하려다 실패하고 정주(靜州), 즉 지금의 영광으로 유배됐다. 이자겸은 이곳 굴비 맛에 반했다. 왕에게 굴비를 보내면서 '정주굴비(靜州屈非)'라고 써 올렸다 한다. '굽히거나 비굴하지 않고 태연자약하게 살고 있다'는 심경의 표현이었다.

그때까지 그저 소금에 절인 생선 중 하나였던 굴비는 이 사건으로 '전국구 스타'로 떴다. 그리고 영광은 굴비의 고장이 됐다. 단지 이자겸이 이곳에 유배됐기 때문만은 아니다.

제주 남서쪽 수심 30m 바다 밑 모래밭에서 겨울을 난 조기는 산란기에 맞춰 황해로 이동한다.

조기는 추자도와 흑산도를 지나 법성포 앞 칠산 바다를 지나는 음력 3월 중순 곡우사리 즈음 가장 맛이 든다. 산란을 앞두고 영양을 잔뜩 비축해 살이 통통하고 알이 꽉 차있다. 이때 잡은 조기로 만든 굴비를 특별히 '오사리 굴비'라 부르고 높게 친다. 요즘은 조기가 법성포에 접근하기 훨씬 전 잡아버려 오사리 굴비는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더러 나오더라도 다락같이 비싸다.

칠산 바다에서 잡지 않더라도 영광에서 말리면 '영광굴비'로 유통된다. '사기 아니냐'는 의혹도 있다. 영광 사람들은 심각한 표정으로 "영광에서 말려야만 특유의 맛을 가진 영광굴비가 된다"고 말한다. 봄 평균 온도가 섭씨 10.5도, 습도 평균 75.5%, 여기에 서해에서 하늬바람이 불어줘야만 조기가 알맞게 마른다는 주장이다. 프랑스 와인 명가들이 주장하는 '테루아(terroir)'가 굴비에도 적용되는 셈이다.

900년 굴비를 만들어온 노하우도 무시 못한다. "다른 지역에선 물에 소금을 타 조기를 담그는 '물간'을 하지만, 영광에서는 조기에 손으로 소금을 뿌리는 '섭간'을 합니다. 물간은 손이 덜 가고 편하지만 맛이 섭간만 못하죠. 살도 쉬 부서지고, 영양학적으로도 떨어집니다." 예전에는 항아리에 소금과 조기를 한꺼번에 넣는 '독간'도 했지만 워낙 짜서 요즘은 거의 없다.

조기를 엮는 기술도 쉽지 않다. 섭간한 조기는 한 두름(큰 것 10마리, 작은 것 20마리)씩 엮는다. 너무 꽉 엮으면 조기가 뒤틀어지고, 헐거우면 빠진다. 힘 조절과 매듭법이 비결이다. 과거에는 짚으로만 엮다가 요즘은 짚과 비닐 노끈으로 함께 엮는다. 이 비닐 끈은 그리 고급스러운 느낌을 주지 않는다.

박윤수씨가 지푸라기처럼 보이는 비닐 끈을 최근 개발해 특허 출원했다. 특허를 받으면 영광굴비에만 독점적으로 사용할 계획이다.

엮은 굴비는 일반적으로 일주일~보름 말린 뒤 물에 씻고 걸대에 널었다 마르면 냉동 보관한다. 마른굴비는 섭간하고 엮는 과정까지는 같지만 걸대에 삼 개월 정도 건조시킨다.
바싹 마른 굴비는 굽지 말고 그대로 쪽쪽 찢어 먹어야 제 맛이다.

짙은 황갈색으로 변한 굴비살은 참기름을 바르기라도 한 듯 기름이 좔좔 흐른다. 따끈한 물에 만 밥에 한 점 올려 입에 넣으면 그야말로 천국이다. 짜고 고소하고 기름지다. 쌀뜨물에 담갔다가 쪄 먹어도 기막히다. 굴비가 왜 밥도둑인지, 직접 경험해 보시라.

▲ 영광 법성포. 굴비 천지다.
::: 굴비·마른굴비 사려면 

굴비는 크기에 따라 가격이 크게 차이 난다. 1㎝ 차이에도 훨씬 더 통통하기 때문이다. 대부분 굴비도매상에서 굴비 20마리 기준 17~18㎝ 1만원, 18~19㎝ 2만원, 19~20㎝ 3만원, 20~22㎝ 5만원에 판다. 1~1.5㎝ 커질 때마다 대략 1만원씩 오른다. 3만~5만원 짜리가 주로 나간다. 25~26㎝ 이상부터는 10마리 단위로 판다. 25~26㎝ 10마리 10만원. 32㎝가 넘으면 10마리에 100만원을 호가하기도 한다. 마른굴비도 크기 당 가격은 같지만, 일반 굴비보다 더 말려 크기 훨씬 작아진다는 점을 감안하면 더 비싼 셈이다. 법성포에 지천인 굴비도매상에서 구매 가능하다. 영산해다올 (061)356-2019, 쌍용굴비유통 (061)356-3060 www.sygulbi.com

::: 굴비정식 맛보려면

법성포에도 마른굴비를 내는 식당은 없다. 굴비백반집은 즐비하다. 백반이라지만 반찬 30여 가지가 딸려 나오는 한정식이다. 대개 사람 숫자대로 음식값을 받지 않고 '한 상' 단위로 받는다. 한 상이면 3~4명쯤 먹으니까, 1인분 2만원쯤 잡으면 된다. 솜씨는 엇비슷하나 일번지식당(061-356-2268, 6만·8만원), 동원정(061-356-3323, 6만·8만원), 명가어찬(061-356-5353, 8만·12만·20만원) 등이 이름 났다.

::: 그밖에 영광 즐길거리

'백수해안도로'는 서해안 최고 드라이브 코스로 꼽힌다. 영광군 백수읍 대전리에서 구수리까지 칠산도 앞바다를 끼고 해안 절벽 산허리를 19㎞ 가량 감고 돈다. 가파른 절벽이 동해안 같다. 백수해안도로가 통과하는 백암리 동백마을은 영화 '마파도' 촬영지로 유명세를 탔다. 영화 세트장으로 지어진 집과 우물, 절구 등이 남아있다.

작년 개통한 덕산~대치미 군도 14호선은 건설교통부가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 중 9위에 올랐다. 불갑사는 백제에 불교가 처음 전해진 곳으로 알려졌다. 침류왕 원년(384년) 중국 동진에서 인도 승려 아라난타가 건너와 창건했다 한다. 절집보단 주변 경관이 낫다. 염산면과 백수읍 해안에는 염전이 많다. 굴비 생산에 꼭 필요한 질 좋은 천일염이 여기서 나온다.

늦은 오후 햇볕에 반짝거리는 소금꽃이 볼 만하다. 일부 염전은 관광객을 위한 무료 염전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매년 음력 5월 5일 무렵에는 '영광 법성포 단오제'가 열린다. 1637년부터 했다니 역사가 길다. 창포 머리감기, 풍어제, 용왕제, 그네뛰기, 국악경연대회 따위가 굴비 시식·판매행사와 함께 마련된다. 법성포단오보존회 (061)356-4331 www.danoje.co.kr

서해안고속도로를 달리다 영광IC에서 나와 23번 국도를 탄다. 영광읍 우회도로를 지나 22번 국도를 따라 가면 법성포다. 고창IC에서 빠져 아산-무산-공음을 지나도 법성포에 닿는다. 차가 밀리지 않으면 서울에서 4시간쯤 걸리지만, 도로 상황 따라 다르다.

영광문화관광과 (061)350-5752 www.yeonggwang.jeon nam.kr/tour 영광법성포굴비특품사업단 (061)356-5657, 4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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