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음주운전 부추기는 솜방망이 처벌

  • 등록 2020-11-08 오후 1:49:10

    수정 2020-11-08 오후 9:58:01

[이데일리 이용성 기자] “동생을 데리고 피했어야 했는데 나만 피했어요. 잘못했어요.”

지난 9월6일 낮 서울 서대문구의 한 햄버거가게 앞, 김모(58·남)씨가 만취 상태로 승용차를 몰다 가로등을 들이받았다. 가로등이 쓰러지며 옆에 있던 이모(6)군을 덮쳤고 이군은 사망했다. 지난 5일 서울서부지법에서 열린 김씨에 대한 첫 재판에 참석한 이군의 아홉살 형은 동생을 구하지 못했다며 울먹였다.
부산 부산진경찰서는 지난 9월27일 도로교통법, 특정범죄가중처벌법(도주치상) 위반 혐의로 20대 운전자를 현행범 체포했다고 9월27일 밝혔다. (사진=부산경찰청)


같은 날 인천지방법원에서는 지난 9월9일 을왕리해수욕장 인근 도로에서 배달 중인 치킨집 사장 A(54)씨를 음주 상태에서 치어 숨지게 한 임모(33·여)씨의 첫 재판도 열렸다. A씨 딸은 “일평생 열심히 사신 아버지를 위해 가해자가 법을 악용해 빠져나가지 않게 부탁 드린다”고 호소했다.

한 순간에 무고한 사람을 죽게 하고 일가족을 참담한 비극적 현실에 빠뜨리는 음주운전이 좀처럼 줄어들지 않는다. 음주운전 처벌 수위를 강화한 이른바 `윤창호법(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도로교통법 개정안)`이 시행된 작년에는 잠시 주춤했지만 올 들어 다시 늘어나고 있다. 삼성교통안전문화연구소에 따르면 올해 1~8월 삼성화재 자동차보험에 접수된 음주운전 교통사고 건수는 4627건으로 작년 같은 기간 건수(3787건)를 훌쩍 넘어섰다.

올해엔 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해 음주운전 단속이 뜸해진 탓도 있지만, 처벌 강화에도 불구하고 단속에 걸려 봤자 `웬만하면 집행유예`라는 인식이 만연하기 때문으로 보인다. 실제 대법원에 따르면 지난해 음주운전으로 재판에 넘겨진 이들 중 76%가 집행유예를 받았다. 음주운전을 하다 적발돼도 10명 중 8명은 일상 생활에 큰 지장이 없는 셈이다.

`6세 이군`과 `을왕리 사건` 재판이 진행된 5일, 공교롭게도 서울남부지법에서는 지난 7월 음주운전을 하다 들킨 개그맨 노우진(40)씨에 대한 판결이 내려졌다. 적발 당시 만취 상태로 도주하다 붙잡힌 노씨에게 법원은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이군 아버지는 법정에서 “무거운 판결이 나오지 않으면 더 많은 피해자가 생겨날 것이고 첫째 아이는 동생을 못 지켰다는 죄책감을 안고 평생을 살아갈 것입니다”라고 비통해했다. 음주운전 처벌이 이대로 솜방망이에 그친다면 억울한 죽음을 당하는 사람과 남겨진 고통을 안고 살아야 하는 가족들은 계속 생겨날 것이다. 또 그 대상은 언제든 우리 자신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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