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넉넉한 품 같은 한반도의 배꼽 철원

  • 등록 2009-03-24 오전 11:43:00

    수정 2009-03-24 오전 11:43:00

[경향닷컴 제공] 철원은 마치 어머니의 포근한 품 같다. 어머니산(오리산)의 자궁 같은 평야와 탯줄 같은 강(한탄강)이 엮어낸 조화이겠지. 온갖 세상 시름에 젖어 녹초가 된 사람이라면 철원의 품에 안겨보라.

‘철의 삼각지대’. 어릴 적부터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던 한국전쟁의 상징어가 바로 ‘철의 삼각지대’이다. 한국전쟁 당시 벤플리트 장군이 “적의 생명줄인 철원-평강-김화의 ‘철의 삼각지대(Iron Triangle Zone)’를 반드시 차지해야 한다”며 결연한 의지를 밝힌 후 얻은 이름이다.

‘악마의 혓바닥’

395m 야트막한 야산을 두고 피아간 1만7000여 명의 사상자를 냈고 수없이 고지의 주인이 바뀌었다는 백마고지 전투의 이야기가 있지 않은가. 이밖에도 피의 500능선, 김일성고지(고암산·780m), 오성산, 저격능선, 낙타고지, 아이스크림고지 등 피어린 전투의 상황을 짐작하는 각종 접전지가 모여 있다. 철의 삼각지대 꼭짓점에 해당하는 평강고원(북한 땅)은 미군이 핵무기 가상 표적으로 삼았던 곳이다.

백마고지 한국전쟁 때 피아간 혈투를 벌인 백마고지. 오른쪽에 김일성고지, 피의 500능선이 보인다.

지금도 철원을 답사하다 보면 어디에선가 훈련장에서 쏘아대는 총포 소리가 농촌의 적막을 깨버린다. 민통선의 북상으로 지금은 한결 나아졌다지만 여전히 도로 곳곳마다 군 초소가 민간인들의 출입을 막고 있다. 시원스레 뚫린 도로 양 옆에 아무렇게나 넘어진 아름드리나무가 즐비한 울창한 숲은 실은 ‘악마의 혓바닥’이다. ‘지뢰’라고 쓴 빨간 표식과 철망은 이곳이 계획 지뢰지대 또는 미확인 지뢰지대임을 알려준다.

공산 치하의 산물이라는 노동당사와, 남과 북의 공법이 함께 조화를 이룬 승일교, 금강산 전기철도의 시발점인 철원역, 그리고 끊어진 금강산철교 등은 흔히 알려진 분단-전쟁-냉전의 산물이다.

휴전선을 반으로 가른 태봉국 도성의 흔적

전쟁과 분단의 아픔을 제대로 맛보려면 평화 전망대에 올라보라. 전망대 왼쪽으로 나무를 따라 쭉 이어진 윤곽이 어렴풋 보인다. 그것은 1100년 전 대동방국의 기치를 내세운 궁예의 태봉국 도성 흔적이다.

“외성 12.5㎞, 내성 7.7㎞에 이르는 저 태봉국 도성은 군사분계선을 딱 반으로 가르고 있어요. 거기에 서울~원산을 잇는 경원선 철도가 도성의 동서를 가르고 있고….”(이우형 한국국방문화재연구원 연구원)

하지만 철원을 두고 단순히 분단과 전쟁의 아픔만을 떠올린다면 그것은 좁은 소견이다. 다시 철원 평화전망대에 올라보자. 우선 선입견을 깨자. 흔히 최전방 철책선이라 하면 첩첩산중에 놓인 고지일 것이라는….

“한국전쟁 때 왜 양측이 저렇게 얕은 고지(백마고지)를 놓고 사생결단을 벌였을까요. 주요 병참선인 3번국도와 경원선 철로를 확보하려는 뜻도 있지만, 무엇보다 서울면적(605㎢)보다 훨씬 넓은 약 650㎢(2억 평)에 달하는 거대한 철원평야를 차지하려 했던 겁니다.”(이우형씨)

호연지기를 맛보려면…

그렇다. 누구든 세파에 찌든 가슴을 단번에 풀고 호연지기(浩然之氣)를 맛보려면 철원으로 오라. 그리곤 평화전망대나 승리전망대에 올라보라. 분단-전쟁이라는 선입견은 그저 양념으로만 맛보고….

“저 너머 북쪽을 보면 끊임없이 펼쳐지는 평강고원이 보입니다. 철원평야는 해발 220m 정도인데, 저쪽 평강고원은 330m 정도니까 까마득한 곳에서 조금 높게 보입니다.”(이우형씨)

그 밑으로 펼쳐지는 광활한 대평원, 즉 철원 홍원리와 월정리, 평강 가곡리를 아우르는 풍천원 들판이 바로 905년 궁예가 대동방국의 기치를 들며 도읍지로 삼은 곳이다. 철원평야의 남동부는 대성산(1175m)·오성산(1062m)·백암산(1179m)·금학산(947m)·명성산(923m)의 험준한 산악지대가 받치고 있다. 그 밑에 펼쳐진 2억평의 용암대지는 무엇을 말해주는가. 필자는 다시 철원평야 한 가운데 버티고 있는 북관정지(北寬亭址)에 올라 그 수수께끼를 풀어본다.

오리산이 품고 있는 비밀

한반도의 배꼽 오리산 송강 정철이 관동별곡을 지었다는 북관정지에서 바라본 오리산.

“저 멀리 어렴풋이 낙타고지(432.3m)와 그 뒤에 있는 장암산(1052m)이 보입니다. 그런데 바로 그 왼쪽 옆에 보일 듯 말 듯한 야트막한 야산이 바로 오리산(鴨山)입니다.”(이우형씨)

그랬다. 바로 저 작은 산이 광활한 철원평야를 낳았고, 또한 고인류를 탄생시킨 ‘한반도의 배꼽산’인 것이니. 해발 453m에 불과한 저 오리산이 담고 있는 수수께끼는? 제4기 홍적세(200만 년 전~1만 년 전) 사이 땅속 깊숙한 곳에서 끓고 있던 용암이 철원에서 북쪽으로 5㎞ 정도 떨어진 오리산(평강)에서 분출하기 시작한다. 분출은 최소한 10번 이상 계속되었다.

꿀렁꿀렁 흐르는 오리산의 용암은 대지를 메우고, 추가령구조대의 낮은 골짜기를 따라 흐르기 시작한다. 용암은 전곡 도감포~파주 화석정까지 97㎞나 여행한다. 철원과 평강, 이천, 김화, 회양 등 2억 평이 용암의 바다가 된다. 용암이 식자 그곳은 끝없이 펼쳐지는 용암대지가 되었다. 진원지 오리산 인근지역의 분출이 많은 것은 당연지사. 철원(해발 220m)보다 높은 평강고원(330m)이 생긴 연유이다.

문명의 젖줄을 낳다

액체 상태의 용암이 고체인 현무암으로 식자 수축작용이 일어났고, 흐르는 용암과 맞닿았던 원래의 지형과 수축해버린 현무암 대지와는 틈이 생긴다. 빙하기를 지나 간빙기에 이르자 높은 평강·철원에서 녹은 빙하는 그 틈을 찾아 낮은 곳으로 흘러간다. 이것이 바로 한탄강이다. 물은 문명의 젖줄이 된다. 27만~30만 년 전 경기 연천 전곡리에서는 아슐리안형 주먹도끼를 쓰는 고인류가 둥지를 튼다.

대교천 현무암 협곡

“현무암 덩어리(塊) 한번 볼까요?” 비무장지대 일원을 손바닥처럼 볼 수 있는 이우형씨의 손에 이끌려 찾아간 동송읍 오덕리. 갈대밭을 헤치고 다가서자 새까만 현무암 덩어리가 켜켜이 쌓여 있다. 아마도 흘러온 용암이 휘돌아가는 굴곡에 막혀 그대로 쌓인 곳이리라. 용암은 또 태고의 절경을 빚어낸다.

원래 취약한 현무암은 더 취약한 부분부터 차별침식이 일어나는데, 수직절리 현상이 빚어지면 그야말로 직각에 가까운 절벽, 즉 수직단애와 주상절리를 만든다. 동송읍 장흥리 송대소와, 신라 진평왕과 고려 충숙왕이 노닐었다는 고석정 일대 수직단애, 대교천 주상절리에 내려가면 태고적 막연한 두려운 기운이 엄습해온다.

궁예의 한 담긴 한반도의 중심

철원을 노래한 문인들은 한결같이 궁예의 흥망을 애수(哀愁)에 가득찬 시구로 노래했다. 아마도 풍천원 벌판에 방치된 궁전의 흔적을 보고는 폐허가 된 은허(殷墟)의 모습에 슬피 울었다는 은(상)나라 성인 기자(箕子)의 ‘맥수지탄(麥秀之嘆)’을 떠올렸겠지. 태봉국 궁예와 은(상) 주(紂)왕의 난행과 망국, 그리고 폐허로 변한 도읍지의 황량한 모습을…. 그러고 보니 은의 은허와 태봉국의 철원은 닮은꼴이다.

“나라가 깨어져 한 고을이 되었구나. 태봉의 끼친 자취에 사람은 수심에 가득 차네. 지금은 미록(고라니와 사슴)이 노는 곳. 가소롭다 궁예왕은 제멋대로 놀기만 일삼았으니…”(서거정의 시) “(파괴된 궁실 자리에서) 보리는 잘 자랐고, 벼와 기장은 싹이 올라 파릇하구나. 개구쟁이 어린애(주왕)야! 나하고 사이좋게 지냈더라면….”(기자의 ‘맥수지가’)

역사는 은의 마지막 왕인 주왕처럼, 태봉국왕 궁예를 ‘천하의 패륜아’로 매도한다. 하지만 고구려 재건의 기치를 높이 들고 평화의 염원이 깃든 영원한 평등세계를 꿈꾼 궁예를 마냥 욕할 수는 없다. 그리고 철원은 바로 미륵불의 출현을 꿈꾼 궁예가 14년 간이나 큰 뜻을 펼쳤던 한반도의 중심이었다.

어머니의 품 같은 포근한 도시

철원평야 금학산 앞에 펼쳐진 광활한 철원평야.

2009년 3월, 민북마을인 갈말읍 정연리를 찾았다. 30년 남짓 이 마을에 살고 있는 황달현씨는 “민통선 초소 앞에 줄을 기다랗게 서서 출입증을 받아야 했던 예전과 달리 요즘은 출입이 한결 자유로워졌다”고 말한다. 하지만 군부대와 부대끼고 살아야 하는 약간은 불편한 삶은 여전하다. 1996년 큰 수해로 양지 바른 곳에 새로운 마을, 즉 ‘신도시’가 생겼다.

드넓은 철원평야 사이로 뚫린 464번 도로엔 가끔씩 등장하는 군부대 차량 외엔 오가는 차량을 볼 수 없다. 그야말로 세상의 시름을 곱게 뻗은 도로에 모두 내려놓고 달릴 수 있다. 십년 묵은 체증이 확 뚫린다.

한탄강엔 여름철이면 사람의 땀이 적셔든다. 1992년부터 시작된 래프팅 인파다. 이중석씨(한솔레포츠)에 따르면 해마다 40만~50만 명이 한탄강의 빠른 물결에 몸을 싣고, 오리산이 빚어낸 주상절리와 수직단애의 역사를 만끽한다. 가마솥 같이 생긴 연못인 삼부연 폭포, 몰락한 궁예왕을 보고 부하들이 슬피 울었다 해서 이름붙은 명성산, 병자호란 당시 공을 세운 유림과 홍명구의 혼이 담긴 충렬사…. 물론 두루미와 같은 철새 도래지로서, 철원평야가 낳는 유명한 철원 오대쌀은 말할 것도 없고….

철원은 왠지 푸근한 어머니 품 같다. 세상의 모든 시름을 다 풀어헤치며 응석을 부릴 수 있을 것 같은…. 어머니(오리산)의 자궁 같은 그런 땅과 탯줄과 같은 그런 강이 있어서인가.



가는 길/
서울에서 가는 길은 대략 두 코스다. 동부간선도로나 43번 국도를 이용한 의정부·포천→운천→검문소→신철원 길과, 올림픽대로→구리 톨게이트→퇴계원·일동방면(47번 국도)→포천·운천 방면(43번 국도)검문소→신철원 길이 있다. 버스는 동서울 터미널(2시간 30분)과 수유리 터미널(1시간 30분)에서 탈 수 있다.

연락처/
철원군청 관광문화과 033-450-5365
한탄강관광사업소 033-450-5558
신철원터미널 033-452-2551
동송터미널 033-455-2339
와수터미널 033-458-3555

맛집/
전선휴게소/ 김화읍 도창리 금강산철교 옆에 있다. 민통선 이북이지만 간단한 신분확인을 하면 출입할 수 있다. 한탄강에서 잡히는 메기매운탕이 일품이다. 삼지구엽초와 꿀도 판다. 033-458-6068
궁예도성/ 동송읍 장흥리에 있다. 한우생고기와 연된장 삼겹살 등을 내놓는 깔끔한 집이다. 특히나 한탄강 수직단애와 그 속에 어우러진 고석정을 내려다 볼 수 있다. 033-455-1944
정일품/ 갈말읍 신철원리에 있다. 제비추리와 안창, 토시 등 특수 부위만을 엄선한다. 주변 절경인 삼부연 폭포를 감상한 뒤 들를 수 있는 곳. 033-452-1410
솔나리코티지/ 김화읍 청양리에 있다. 막국수가 대표 메뉴이며, 닭백숙도 있다. 033-458-5636
폭포가든/ 동송읍 장흥리 직탕폭포 바로 앞에 있다. 자체개발한 소스를 이용한 장어구이와 쏘가리 매운탕이 좋다. 033-455-3546

숙박/
래프팅 인구가 폭발적으로 늘어나 장흥리·오덕리·상사리 등의 한탄강 주변에 많은 펜션과 모텔이 생겼다. 한탄강 주상절리와 수직단애를 감상할 수 있는 숙박업소가 많다. 전반적인 숙박 문의는 철원군청 홈페이지(http://tour.cwg.go.kr/open_contents/content_01.asp?Mcode=10302)와 군청 관광문화과(033-450-5365)
한강리버 게르마늄 온천호텔/ 동송읍 장흥리에 있다. 카페와 헬스클럽, 테니스장, 찜질방 등 부대시설이 있다. 033-455-1234
박스도로시/ 갈말읍 지포리에 있다. 새 모텔이라 시설이 좋다는 평. 033-452-4116
한솔캐슬/ 갈말읍 군탄리에 있다. 래프팅의 도착지이며 한탄강 수직단애를 감상할 수 있다. 033-452-9925
노스텔지아/ 동송읍 장흥리에 있다. 주인이 직접 농사를 짓고, 그 농산물로 음식을 만든다. 연못을 파놓고 낚시를 할 수 있게 했다. 033-455-1497
그린밸리/ 동송읍 장흥리에 있다. 선생님 출신인 주인이 좋단다. 033-455-1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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