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원화 방어로 '1년치 일자리 예산' 부었는데…외환시장 선진화, 왜 지금인가

한은·기재부, 외환시장 구조 개선 방안 발표…내년 하반기 시행
"과거 외환위기 트라우마 벗어나야 할 때"
무역·주식 다 커질 때 외환시장만 못 자랐다
대외건전성 자신감 커졌고 기술력도 받쳐준다
김성욱 차관보 "2차선 비포장 도로, 4차선으로 확장·정비해야"
  • 등록 2023-02-07 오전 10:00:50

    수정 2023-02-07 오전 10:00:50

(사진=AFP)
[이데일리 최정희 기자] 외환당국은 원·달러 환율의 급등세를 막기 위해 작년 9월, 한 달 동안에만 1년치 일자리 예산에 해당하는, 30조원 가까운 외환보유액을 써야 했다. 원화 가치 급락을 막기 위한 조치였다. 외환보유액은 9월에만 196억6000만달러 줄어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였던 2008년 10월 이후(274억달러) 13년 11개월 만에 가장 큰 폭으로 쪼그라들었다.

환율 변동성에 외환당국이 수 차례 구두개입을 하고 미 국채를 팔아 달러를 팔아치우면서 원화 가치를 방어했다. 원화 가치 급락은 1997년 외환위기, 2008년 금융위기를 방불케 했다. 불과 6개월도 안 된 얘기다.

그런데 왜 지금 외환당국은 ‘과거 외환위기의 트라우마’를 잊자며 글로벌 금융기관을 국내 외환시장에 직접 참여할 수 있도록 하고 외환시장 거래 시간을 새벽 2시까지 연장하는 ‘외환시장 구조 개선방안’을 내놓게 된 것일까.

7일 한국은행·기획재정부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국내 외환시장은 외환위기 트라우마 등으로 인해 폐쇄·제한적 시장 구조를 20년 넘게 유지하고 있다. 김성욱 기재부 국제경제관리관(차관보)은 이날 관련 세미나 개회사에서 “외환시장이 과거 외환위기에 대한 트라우마로 인해 시장 안정을 정책의 최우선에 두면서 수십 년 동안 폐쇄적이고 제한적인 구조, 즉 낡고 좁은 도로체제를 계속 유지해왔다”며 “지금과 같은 낡은 도로로는 그간 비약적으로 확대된 이동 수요를 감당할 수도 없고 좁은 도로 때문에 안정성이 위협받을 수 있다”고 평가했다.

출처: 한국은행, 기획재정부
◇ 외환시장만 제대로 못 컸다


외환당국에 따르면 우리나라 무역규모는 작년 1조4150억달러로 1997년 2808억달러의 5배 가까운 성장을 이뤘다. 주식 거래량은 일평균 124억5000만달러로 97년 6억달러와는 비교도 안 된다. 그러나 원·달러 현물환 거래량은 은행간 기준으로 90억4000만달러로 1997년 18억3000만달러로 늘어나긴 했으나 2008년 78억1000만달러 대비 크게 성장하지 못했다. 외환시장 규모는 글로벌 금융위기 수준에 머물러 있는 셈이다.

현물환 시장이 정체된 사이 글로벌 외환시장과 역외 차액결제선물환(NDF·계약과 만기 시점간 차액만 달러화로 결제하는 선물환) 시장은 커지며 격차가 크게 확대됐다. 국제결제은행(BIS)에 따르면 현물환 거래 규모(은행간과 대고객 합산) 작년 351억달러로 전 세계의 1.6%에 불과, 16위를 기록하고 있으나 NDF는 498억달러로 19.5%를 차지, 1위를 기록하고 있다. 2010년대 이후 거래규모에서 NDF가 현물환을 뛰어넘었다는 평가다.

외환당국 관계자는 “역외 NDF 시장이 기형적으로 성장, 시장 불안시 원화에 대한 투기적 경로로 활용되고 있다”며 “그로 인해 꼬리가 몸통을 움직이는 ‘웩더독(Wag the Dog)’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밝혔다.

외국인이 NDF를 순매도하게 되면 국내 외국환은행들은 해당 거래를 받아주면서 선물환을 매수하고 현물환을 매도하는 ‘바이앤셀(Buy&Sell)’을 해, 환율 하락에 영향을 주게 된다. 만약 외국인이 NDF를 순매수하게 되면 현물환 시장엔 반대로 환율 상승을 자극하는 것이다. 규모가 더 큰 선물시장이 현물시장의 방향성을 좌우하는 일이 빈번했다.

또 환율 쏠림 현상이 자주 일어난다는 게 외환당국의 설명이다. 김 차관보는 “외환시장 성장보다 더 중요한 문제는 현재의 시장 구조가 오히려 시장 안정을 저해하고 있다”며 “과거 선박 수주 호황시기에는 조선사가, 최근 해외투자를 확대 중인 개인·기관 등 한 방향의 거래 유인을 가진 일부 수급 주체가 환율에 미치는 영향이 확대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조선사 수주가 늘어나면 환율이 하락 압력을 받고 거주자의 해외 투자가 늘어나면 상승 압력을 키우는 식이다.

*외환위기는 1997년 10월 1일 대비, 금융위기는 2008년 6월 1일 대비, 작년은 2021년말 대비 출처: 한국은행, 기획재정부


◇ 문 열 준비 됐나…“대외안전성에 자신감 확보”


그렇다면 외환시장은 문을 열 준비가 됐을까. 이에 외환당국은 단기외채 비율이 작년 9월말 41%에 불과하고 2014년부터 순대외채권 국가로 전환된 만큼 대외 부문 취약성이 크게 완화됐다고 평가했다. 단기외채 비율은 1997년 외환위기때는 657.0%, 2008년 금융위기 때는 72.4%에 달했다. 외환보유액도 작년말 4232억달러로 충분하다는 평가다.

작년 환율 변동성이 컸지만 과거 위기와는 달랐다는 게 외환당국의 평가다. 외환위기, 금융위기 때는 달러화가 5.1%, 22.2% 오르면 원화는 53.6%, 34.9%나 급락하며 유로화, 엔화 등 다른 통화 대비 급격한 추락세를 보였다. 그러나 작년엔 달러화가 19.3% 올랐는데 원화는 17.4% 하락하는 등 달러화와 비슷하게 추락했다. 유로화, 엔화는 각각 15.6%, 23.4% 떨어져 엔화는 원화보다 더 떨어졌다.

기술적 여건도 성숙해졌다는 평가다. 과거에는 외국계 금융기관한테 원화 거래를 허용하는 방식은 ‘역외 원화시장’을 개설하는 것밖에는 답이 없었는데 ‘역외 원화시장’을 개설할 경우 외환당국의 모니터링이 어렵고 역외 환투기에 대해서도 조절할 수 있는 여력이 없게 된다.

그런데 전자거래 인프라(API) 등이 보편화되면서 실시간으로 가격확인·주문·거래가 확인이 되기 때문에 역외 원화시장 개설 없이 외국계 금융기관이 국내 외환시장에 직접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방식이 가능해졌다. 외환당국은 글로벌 은행·증권사를 대상으로 ‘RFI’ 인가를 허용, RFI가 국내 외환시장에 직접 참여하도록 하는 방안을 추진한다.

김 차관보는 “이제는 과거 트라우마에서 벗어나 한걸음 나아가야 할 때”라며 “지난 20년간 우리는 수 많은 크고 작은 위기를 겪으며 충분한 경험과 역량을 쌓아왔다”고 설명했다. 이어 “나라 밖에 연결되는 수십년 된 낡은 2차선의 비포장 도로를 4차선이 매끄러운 포장 도로로 확장하고 정비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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