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 오후에)그 사람이 보고싶다

  • 등록 2005-09-16 오후 3:48:04

    수정 2005-09-16 오후 3:50:38

[이데일리 문주용 경제부장] 추석이다. 경제가 쌩쌩 돌지 않아서인지 마음은 무겁지만, 보고싶은 사람들로 한편으론 들뜬다. 벌써 시골 아파트앞 벤치에서 친구와 만나고 있는 기분이다.

이럴땐 고향 사람이 아니래도 특별히 보고싶은 사람이 있기 마련이다. 최근 어떤 사석에서 이런저런 얘길하다 불연듯 생각난 사람이 있다. 같이 자리했던 사람들은 `한번 찾아보지, 그러냐`고 권하기도 했다.

90년 여름. 기자의 첫 출입처는 서울의 서부경찰서였다. 그 한해전인가 소위 `화염병 처벌법`이 만들어졌으나, 학생들의 시위는 좀체 과격양상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많은 명지대생들이 초여름 가두시위에 나서 대치하던 전경들중 상당수가 얼굴에 화상을 입거나 돌에 맞아 다쳤다. 시위가 끝나고 병원 치료를 받은 전경들이 경찰서로 복귀했을 때쯤, 갑자기 전경들사이에 활기가 돌았다.

30~40명 가량의 시위학생들이 잡혔는데 사진 대조하는 과정에서 한 학생이 그대로 `화염병 처벌법` 구속대상이 될 정도로 사진증거가 제대로 포착됐다.

아니나 다를까. 그 학생이 잡혀있는 곳을 찾았더니 전경들에 한참 얻어터진 뒤였다. 눈 주위가 시퍼렇게 멍들어 있었고 고개를 떨군채 불안해했다.

기자에게도 경계심을 보였다. 몇마디 물었다. "괜찮으냐. 많이 맞았느냐. 어쩌다 잡혔나. 눈은 괜찮으냐. 니가 어찌 될 걸로 생각하느냐"

띄엄띄엄 하는 대답에는 무저항이 배어나왔다. 그에겐 저항할 보루가 없었다. 경찰들이 정상적으로 일처리하면 구속될 게 뻔했다. 화염병 처벌법은 바로 이런 학생을 정확히 타깃하고 있었다. 그는 내가 자리를 떠난 후에도 더 얻어 터지는 것같았다. 말리지 않았다.

나도 이런 기억이 있었다. 시위로 어느 경찰서 유치장에 갇혀있었는데, 그때 경찰서를 출입하던 기자는 나에게 아무 도움이 되지 않았다.

판단을 내려야했다. 기사로 쓸 것인가, 말 것인가. 이것은 그냥 사건에 대한 객관적 보도일 뿐이다. 그런데 쓴다면 그는 필히 구속될 것이다. 사례가 많지 않던 터에 화염병 처벌법 적용사례로 주목받게 될 것이다.

반대로 개입해서 그를 빼낼 것인가. 사회의 현상에 개입해서 법을 흐트려놓을 것인가.

그 학생을 다시 찾아갔다. 당시 사회의 갈등을 지켜보기엔 기자도 어렸지만 그 학생은 더 어렸다. 그에게 구속은 너무 결정적인 운명이 될 것 같았다.

기사를 쓰는 대신, 개입하기로 결심하고 꾀를 냈다. 그 학생에게 "니가 여기서 걸어나갈 수 있는 방법은 하나밖에 없어 보인다. 무조건 날 믿어볼테냐. 얻어맞아서 실명된 것처럼 굴어라."

그는 믿으려하지 않았다. "다른 대안이 없지 않나. 넌 지금 상태로는 무조건 구속이다. 화염병 처벌법 잘 알지 않느냐. 네가 던진 화염병에 맞은 전경이 저기 있는데."

실명한 듯한 연기는 제대로 효과를 발휘했다. "이 경찰서를 나갈때까지 이렇게 밀고 나가자. 혹시 엄살이라며 경찰들이 더 때릴지 모른다. 그래도 끝까지 밀고가라. 널 병원에는 못데려갈 거야. 자기들이 때린 걸 털어놓지 못할테니."

한편으론 경찰서장 방을 들락날락했다. "서장님, 지금 잡아놓고 있는 학생. 거의 실명위기인 걸로 압니다. 실명되면 기사를 쓸 생각입니다. 이유야 어쨌든 전경들이 애를 패서 실명까지 이르게 하면 안쓸수 없는 거죠"

경찰서장은 처음엔 화염병 투척한 학생을 두둔한다며 흥분했다. 하지만 이런 일의 결과는 뻔했다. 자신이 다칠 수도 있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병원에 데려가서 치료를 시켜야지, 왜 계속 잡아두고 있습니까. 정말 실명시키려 합니까"
"조금 생각할 말미를 주세요. 아직 실명은 아닌것같던데"
"저 학생이 안보인다고 계속 하지않습니까. 3일이 지나도 저리니 실명이 틀림없습니다. 쓰겠습니다"
"기자가 왜 이러는거 압니다. 빼내고 싶은거죠. 내일 내보내겠습니다. 기사 쓰지도 말고, 다른 사람에게 말하지도 마세요. 없었던 일로 하죠"

개입의 결과는 달콤했다. 그 학생에게 다시 갔다. "내일 나갈거야. 경찰서 문앞을 나설때까지 계속 가는거야. 끝까지 실수하지 마라"

그 다음날. 형사계에 형사들과 노닥대고 있을때 전화가 걸려왔다. 경찰서 밖에서 풀려난 그 학생과 어머니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 학생은 주위 눈치를 살피며 물었다.

"완전히 끝난 건가요? 혹시 나중에 다시 불려올까요"
"그럴 일은 없을거야. 혹시 불러도 오지마. 잠시 다른데 가있든지"

언론이 현실에 얼마만큼 개입하는 게 옳을까 고민한다. 기자 첫해에 이런 일을 겪었지만 초년시절에는 언론이 제3자적, 중립적 입장이어야 한다며 `불개입` 원칙을 지지했다. 대부분의 선배들도 이와 비슷해서 `부편부당의 원칙`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나 요즘은 언론이 달라졌다. 아예 당사자가 되었다. 언론은 이념개발의 연구소가 되기도 하고, 정부와는 정면 대립의 첨병이 되기도 한다. 잘못을 지적하는 비판의 수준을 넘어서서 투사가 되기도 한다.

사실 이런 정보홍수시대에 객관적 보도가 옳은지, 그 이전에 객관적 보도가 가능한지가 의문이 되고 있다. 때문에 언론의 현실참여는 불가피한 것인지 모른다는 생각이다. 문제는 방향이 틀릴 때 생긴다. 그러나 요즘의 언론의 `공익적` 개입엔 뭔가 느낌이 다르다. `악의`가 느껴진다.

그때 초년 기자의 사사로운 개입은 옳은 것이었을까 하고 가끔 떠올려본다. 이런 개입 자세가 행여 당시의 현실에 어떤 영향을 끼치지 않았을지 염려도 해본다. 예컨대 법적용을 방해함으로써 화염병 투척이라는 과격시위현상이 오래 지속되게 한 게 잘못은 아닐까.

개입이 옳았는지의 판단을 그 청년이 지금 어떻게 됐는지에 따르고 싶다. `구속`이라는 고비를 빗겨간 그 학생이 사회의 건장한 장년이 되었다면, 개입이 옳았다고 믿을테다. 설사 사회의 모범생이 되지 않았다 하더라도 말이다.

추석이 지나면 그 학생을 수소문해볼 작정이다. 그래서 이렇게 먼저 개인 편지 같은 글을 올린다. 15년전 그 학생이 보고 싶다. 잊었던 사람들을 되돌아보는 추석이 되었으면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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