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김일성 주석의 항일무장투쟁사가 담긴 것으로 알려진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가 국내에서 원전 그대로 출간되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책은 2011년 대법원에서 ‘이적 표현물’로 판결 낸 바 있어 책을 출간하는 것은 국가보안법 위반 소지가 있다. 교보문고는 지난 23일 대책회의를 열고 책 신규 판매를 중단했다. 일부 시민단체와 개인들이 법원에 ‘세기와 더불어’의 판매·배포를 금지해달라는 가처분 신청을 내기도 했다.
하지만 출판계 일각에서는 10년 전과는 시대가 변한 만큼 출판의 자유로 인정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이 같은 상황에서 간행물윤리위원회는 오는 28일 임시위원회를 열고 ‘세기와 더불어’에 대한 심의를 할지 여부를 결정한다는 계획이어서 결과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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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책도 출판의 자유 인정해야”vs“무조건 허용 안돼”
위원회가 이 책을 유해간행물로 결정할 경우 출판사 측은 해당 시군구청에서 과태료 처분을 받고, 책은 사법기관에 의한 수거, 폐기 절차를 밟게 된다.
출판계에서도 이 책의 출간에 대한 견해는 엇갈리고 있다. 출판계 한 관계자는 “이미 마지막 판결도 10년 전에 난 것이고, 최근에는 이적 표현물 자체가 위헌이라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며 “유권해석도 예민한 사안이어서 현 정권 아래서는 다른 판결의 소지도 분명 있다”고 말했다. 출판 평론가 A씨는 “지금의 독자들은 이념에 대해서도 나름대로 판단력을 가지고 있는데 단순히 김일성 찬양 책을 읽었다는 이유로 홀딱 넘어갈 사람이 얼마나 있겠느냐”며 “‘금서’라고 못 박아두는 것 자체가 오히려 궁금증을 자극하는 효과도 있다”고 지적했다.
여전히 북한과 관련한 서적들에 있어서는 “표현의 자유를 무조건 허용할 수 없다”는 주장도 만만치 않다. 또 다른 출판 평론가 B씨는 “국가 안보를 떠나서 6.25전쟁을 겪은 전쟁 세대가 여전히 살아 있는데 학술적 목적의 책도 아니고, 북한에서 쓴 찬양 글이 국내에서 판매된다는 것은 극심한 대립의 소지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해외 사례를 들며 “독일에서도 히틀러의 자서전 ‘나의 투쟁’을 금서로 두고 국립도서관에서 일부 전문가들만 연구 목적으로 읽을 수 있도록 했다”며 “그만큼 사회적 해악이 되는 책에 대해서는 국가에서 제재를 가하는 것이 맞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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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기와 더불어’는 김일성 주석의 80세 생일인 1992년 북한 노동당 출판사가 김일성 주석의 회고록 형식으로 북한에서 발간한 책이다. 평양 조선노동당 출판사에서 대외선전용으로 발간해, 김 주석의 출생부터 1945년 해방 때까지 항일무장투쟁 활동이 담겨 있다. 대법원은 2011년 8월 “북한이 대외 선전용으로 발간한 김일성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 등은 이적 표현물에 해당한다”고 판결한 바 있다.
현행 국가보안법상 이적표현물로 판결받은 책을 제작·수입·복사·소지·운반하는 경우 7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고 규정돼 있다. 남북교류협력법에서는 북한의 물품을 반출·반입할 경우 통일부 장관에게 사전 허가를 받도록 규정하고 있다. 통일부에서 사전 판매 승인을 받은 후에는 출간할 수 있다.
그러나 통일부에 따르면 해당 책은 통일부로부터 반입 승인을 받은 바 없다. 통일부 측은 “출판 경위 등을 파악해보면서 통일부 차원에서 취해야 할, 취할 수 있는 조치가 있는지 검토할 것”이라고 밝혔다. 경찰에서도 책의 판매 경위 등을 조사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출판계에 따르면 책은 800여 개의 국내 출판사가 가입한 한국출판협동조합을 통해 온·오프라인 서점에서 8권에 28만원에 판매 중이다. 조합 관계자는 “민족사랑방이 조합원은 아니고 조합에서 책 유통만 담당하고 있다”며 “아직 책이 판매 중지된 상태는 아닌 만큼 주문이 들어오면 책 판매를 하고 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