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아무도 모르는 죽음"…'마지막 흔적'을 닦는 사람들

고독사 현장 전문 청소하는 '특수청소업체’
코로나19에 1인 가구 증가로 의뢰 횟수 많아져
"고독사 막으려면 주변인들에 관심 가져야'
  • 등록 2021-04-28 오전 11:00:10

    수정 2021-04-29 오전 7:38:41

[이데일리 이용성 김대연 기자] 이 기사는 이데일리 홈페이지에서 하루 먼저 볼 수 있는 이뉴스플러스 기사입니다.

문을 열자마자 역한 냄새가 마스크를 뚫고 들어와 콧속을 찔렀다. 머리가 순간 멍해졌다. “타이레놀 챙겨와요. 처음이신 분은 토할 수도 있고, 두통도 올 수 있어요.” 주의사항을 가볍게 넘긴 것을 후회했다. 피비린내·각종 썩은 음식물 쓰레기 냄새·오물 냄새 등이 골고루 섞여 매캐한 냄새가 났다. 현관까지 마중 나온 역한 냄새에 정신을 못 차리고 있던 기자에게 안완진 특수청소전문팀 ESC 대표는 “힘들면 써도 된다”며 방독면을 건넸다.

(그래픽= 김정훈 기자)


유품부터 시신흔적까지…‘마지막 흔적’을 정리하는 ‘특수청소업체’

지난 21일 경기 부천시에 있는 한 주택. 3평 남짓한 조그만 방 한가운데 꾸덕꾸덕해진 검붉은 얼룩이 시선을 뺏었다. 홀로 살던 노인의 고독사 흔적이었다. 그 흔적으로부터 악취가 풍겨왔다. 안 대표는 “사람이 죽으면 몸에 있던 근육이 다 풀리면서 대소변·혈흔 등 온갖 노폐물이 몸에서 빠져나가 냄새가 심하다”고 말했다.

그 흔적 위로는 파리 10여 마리 정도가 왱왱거리며 원을 그리고 있었다. 안 대표는 “파리가 있을 정도면 시신이 굉장히 부패한 것”이라며 “구더기들이 부패물을 먹고 자라 파리가 되기까지 시신이 방치된 것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실제 노인은 사망 후 약 한 달 가까이 돼서야 발견됐다고 안 대표는 귀띔했다.

방안과 거실에는 탄산음료 페트병이 어지러이 펼쳐져 있었다. 한쪽 구석에는 그와 세트였던 듯한 피자박스와 치킨의 뼛조각, 즉석식품들이 보였다. 쌀 10kg도 있었지만 뜯지 않은 상태였다.

안 대표와 직원들은 들어가기 전 비닐봉지, 마대자루를 미리 준비하고 입구를 벌려놨다. 빠르게 유품들을 정리할 수 있게 하기 위함이었다. “물건을 걷어내고 치우는 순간에 냄새가 삽시간 퍼져서 이웃집에서 민원이 많이 들어와요. 속전속결로 치워야 합니다” 안 대표는 설명을 덧붙였다. 한번은 이웃집까지 냄새가 퍼져 민원이 들어왔다고 언급한 그는 “현장을 청소하는 것보다 주변 사람들로부터 민원이 들어와 처리하는 것이 더 힘들다”고 말했다.

방호복과 고무장갑을 끼자마자 바로 현장 작업에 들어갔다. 고독사 현장 청소 작업은 신속하지만, 섬세해야 한다. 빠르게 처리하려다 자칫 오염물질이 사방으로 튈 수 있기 때문이다. 한번은 피부에 오염물질이 튀어 며칠간 병원 치료를 받으며 고생했다며 안 대표는 쓴웃음을 지었다.

지난 21일 특수청소전문팀ESC의 직원들이 고독사 현장을 수습하고 있다.(사진=이용성 기자)


고독사 꾸준히 증가 추세…특수청소업체도 ‘우후죽순’ 늘어나

작업하는 도중에도 안 대표의 전화는 쉬지 않고 울렸다. 대부분 고독사 현장 처리를 의뢰하는 전화였다. 그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가 시작되고 현장 의뢰가 거의 두배 가까이 늘면서 인력난까지 겪고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 고독사 사망률을 단적으로 알 수 있는 무연고 사망률도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지난달 28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고영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보건복지부로부터 제출받은 ‘2020년 무연고 시신 처리 현황’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의 무연고 사망자는 총 2880명이었다. 이는 조사가 시작된 2016년(1820명)에 비해 58.2%나 크게 증가한 셈이다.

안 대표에 따르면 들어오는 의뢰의 반은 20~30대 고독사 현장이고 자살 현장 의뢰도 특히 많아졌다고 그는 덧붙였다. 그는 “1인 가구가 늘어서 그런지 이와 더불어 청년 고독사 의뢰도 늘고 있다”고 말했다. 통계청이 지난해 12월 발표한 ‘2020 통계로 보는 1인가구’에 따르면 2019년 기준 전체 가구 중 약 30.2%를 차지했다. 10가구 중 3가구가 1인 가구인 셈이다. 이는 2015년(27.2%)·2016년(27.9%)·2017년(28.6%)·2018년(29.3%)·2019년(30.2%)로 해마다 증가했다.

수요가 증가하면 공급도 늘어나는 법이다. 특수청소업계에 5년째 몸담고 있다던 안 대표는 최근 특수청소업체가 우후죽순으로 늘어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주변 업계 얘기를 들어보면 4년 동안 매년 특수청소업체가 늘고 있다”며 “고독사율, 자살률이 계속 늘고있는데다가 ‘흔히 돈 잘번다’는 소리를 듣고 너도나도 업체를 만드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난 21일 이데일리 취재진이 방문한 고독사 현장. 바닥에 패트병들이 펼쳐져 있다.(사진=이용성 기자)


‘고독사 예방법’ 시행 여전히 갈 길 멀어

현실에 비해 비교적 속도가 더딘 제도와 법률도 조금씩 다듬어지고 있다. 늘어나는 고독사를 국가 차원에서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예방하기 위한 ‘고독사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룰’(고독사 예방법)이 지난 1일 시행됐다

그러나 1인 가구가 증가·저출산·고령화가 맞물리면서 고독사를 막기 위해서는 아직 갈 길을 멀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김범중 중앙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도움이 필요하든 필요하지 않는 사람이든 서비스를 전달하는 게 중요하다”며 “대면 서비스나 1:1 서비스를 통해 사각지대를 발굴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지역사회에 있는 사회복지사들 인력 활용하는 등 사용 가능한 네트워크 이용해서 고독사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정익중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도 “코로나19 이후 고독사가 가속화됐지만, 어떻게 도와드려야 할지 아직 매뉴얼적으로 명확하지 않다”며 “기본적으로 ‘방문’하는 구조가 만들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더 쉬운 답변은 가까이에 있었다. 현장을 바라보던 기자에게 안 대표는 대뜸 “옆집에 누가 사는지 아느냐”고 물었다. 그는 “의뢰가 가장 많은 시기 중 하나가 오랜만에 가족을 찾아뵙는 명절”이라며 “가족·이웃 등 주변인들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신경을 쓰면 고독사도 그만큼 많이 줄어들 것”이라고 명쾌한 답변을 내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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