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5일 오전 서울 동작구에 있는 농심 본사 주변에는 유독 ‘신라면’을 손에 든 이들이 많았다. 라면 주인은 농심 주주들이었고, 라면은 회사가 이날 주주총회를 찾은 주주에게 무상으로 제공한 것들이다. 농심은 창사 이래 매해 주총마다 이런 식으로 주주에게 보답했는데, 올해도 어김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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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주만 가져도 주주
30일 농심에 따르면, 이날 회사는 주총장을 찾은 모든 주주에게 ‘신라면 건면’ 20봉지를 제공했다. 주식이 많고 적고를 따지지 않고 지난해 주주명부를 폐쇄한 이후에 주주 명단에 오른 모든 이가 대상이었다. 소유주식이 단 1주이더라도 혜택을 받았다는 의미다.
이런 이유에서 농심 본사 주변에 라면을 든 이들이 유독 많이 보이는 날이면, ‘오늘이 농심 주총 날이구나’라고 짐작한다는 우스갯말도 있다고 한다. 농심 관계자는 “사실 라면만 받고서 주주총회는 참석하지 않은 채 떠나는 주주도 많다”며 “위임장을 받아서 다른 주주 몫의 라면까지 대리로 수령해가는 주주도 있다”고 말했다.
한국 자본시장은 1980년대를 전후해서 일본에서 이를 들여와 정착시켰다. 주주를 대상으로 △가전제품을 저렴하게 파는 전자회사 △상품권을 제공하는 백화점 △예금 금리를 더 쳐주는 은행 등이 주주우대제를 도입한 사례이다.
그러나 자본시장이 성숙기에 접어든 1990년대 이후로 이런 우대는 특혜 시비를 불렀다. 국내 증시를 외국인에게 개방한 것이 컸다. 한국인 주주에게 집중된 이런 혜택은 외인 투자자에게 차별이었기 때문이다. 아울러 주주에게 특별한 이유 없이 이익을 제공하면 안된다는 상법도 걸림돌이었다. 이제는 이런 훈훈한 풍경을 찾아보기란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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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품사서 명맥 잇는 ‘우리 주주님’
역사 뒷길로 사라져가는 주주우대제도가 식품회사를 통해 명맥을 유지하고 있어서 눈에 띈다. 올해 농심을 비롯해서 롯데제과는 과자꾸러미를, 롯데푸드는 햄과 식용류를 각각 주주에게 제공했다. 이들 회사는 수십 년째 이런 행사를 이어오고 있다. 회사 전통으로까지 자리매김한 모양새다.
매해 회사가 주력으로 제조 및 판매하거나 새로 출시한 상품 위주로 증정품을 마련한다고 한다. 주로 유통기한이 상대적으로 긴 제품을 만드는 회사 중심으로 이런 문화가 남아 있다. 신선식품이라면 제공 과정에서 탈이 날 염려가 있어서 꺼릴 수밖에 없다는 게 업계 설명이다.
롯데푸드 관계자는 “의결권 행사는 주주의 당연한 권리이지만, 이를 위해 주주총회장을 오가는 수고는 별개의 문제”라며 “이런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 주주에게 회사가 제공하는 최소한의 보답”이라고 말했다.
다만 이런 명맥도 전보다 옅어져 가고 있다. 올해는 코로나19로 사회적 거리두기가 만연하고 전자투표도 유행하면서 주주총회 참석 인원이 줄어든 측면이 있다. 주고 싶어도 줄 사람이 없는 셈이다. 한 식품사 관계자는 “올해는 감염 우려가 있어서 회사 제품 제공을 중단하기로 결정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