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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줄게, 전세다오”…집주인·세입자 ‘세일즈앤리스백’

매각 후 재임차로 전셋값 1억원이 ‘훌쩍’
“전세난 시장이 만들어낸 가격 부추김 현상”
전셋집 구하려고 제비뽑기·가위바위보까지
“정부가 졸속으로 정책을 쏟아낸 웃픈 현실”
  • 등록 2020-10-15 오전 11:01:00

    수정 2020-10-16 오전 11:02:23

집줄게..전세다오.. 집주인, 세입자 짬짜미 [그래픽=이데일리 이미나 기자]
[이데일리 정두리 기자] 직장인 김모씨(54)는 최근 투자대상으로 송파구 가락동 ‘헬리오시티’를 눈여겨봐왔지만 몇 개월 전까지만 해도 16억원대에 거래되던 전용 84㎡짜리가 최근 20억원대까지 치솟아 엄두가 나지 않는 상황이었다. 그러던 중 한 공인중개사무소에서 “집주인이 집을 판 뒤 살던 집은 전세로 눌러앉고 싶어 하는데, 시세보다 높게 전세보증금을 쳐주면 살 생각이 있느냐”고 제안을 해왔다. 집값이 많이 오른 것은 부담이지만 대출도 안되는 상황에서 훨씬 높은 전세보증금으로 매수자금을 줄일 수 있으니 김씨로서는 나쁠 게 없었다.

새 임대차법 시행 이후 전세시장에 퍼지는 충격파가 상상을 초월하고 있다. 전세가뭄 속 역대 최고가 거래가 속출하는 것은 예사다. 전세 매물이 나왔다는 소식에 10여명이 달라붙어 제비뽑기를 하는 웃지 못할 풍경이 연출되는가 하면, 집주인이 매수자에게 집을 판 동시에 시세보다 훨씬 높은 고가전세로 살게 해달라고 계약조건을 거는, 일명 ‘세일즈앤리스백’(부동산 매각 후 재임차) 사례까지 나오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매각 후 재임차’ 전셋값 급등 부르나

부동산 중개시장에 따르면 헬리오시티 전용 84㎡짜리 아파트는 현재 매매는 호가 20억원, 전세는 12억원 수준이다. 하지만 집주인이 김씨에게 제안한 전세가는 13억원. 김씨는 7억원의 차액만 있으면 이 집을 살 수 있다.

가락동 A공인중개사무소 관계자는 “집주인과 매수자 모두 시세가 아닌 호가에 맞춰 전세 거래를 하기 때문에 서로가 윈윈”이라며 “전세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인데, 사적 거래를 누가 뭐라 할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하지만 이러한 수법은 결국 전세 시세를 끌어올려 세입자들의 부담을 가중시키는 원인이 되고 있다. 전세 신고가가 이런 방식으로 계속 나오고 있다는 게 인근 주민들 설명이다. 새 임대차법 이후 전세난이 이어지는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전셋값 상승을 또 부추길 수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현상에 대해 저금리, 새 임대차법 등과 얽힌 전세난에서 빚어진 것으로, 정부가 엄중히 받아들여야 한다고 경고한다.

함영진 직방 빅데이터랩장 랩장은 “매수자 입장에서는 고가주택을 구매하려면 대출도 어렵고 매도자 측면에서는 집을 팔아도 갈 수 있는 전세가 없어 빚어진, 서로의 니즈가 맞물린 현상”이라면서도 “다만 임대차를 정상가격이 아닌 과도하게 높은 가격에 거래한다면 문제의 소지는 있다”고 했다.

윤지해 부동산114 수석연구원은 “전세 물건이 없고 거주할 곳이 없어서 발생하는 현상들로, 정부 정책에서 원인을 찾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서울 가양동 한 아파트 단지에 지난 13일 전세 매물로 나온 집을 보러 온 사람들이 줄을 서 있다. 사진=온라인 커뮤니티 캡처
전셋집 구하려고 제비뽑기하는 시대

현재 서울 일대에서 아파트 전세를 찾기란 정말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서대문구 홍제동에 위치한 홍제센트럴아이파크는 14개동에 1000가구에 달하는 브랜드 단지이지만 전세 매물은 고작 2채 뿐이다. 이 아파트 105동 84㎡짜리 전세는 현재 9억원에 호가가 올라와 있다. 이 면적형은 올해 5월 5억원에 실거래됐다. 몇 달만에 4억 넘게 뛴 것이다.

홍제동 문화촌현대아파트에 거주하는 세입자 이모씨(35)는 지난 4월 2억6000만원에 전세 계약을 연장했다. 반면 같은 단지에 같은 평형 세입자는 최근 5억원의 전세금을 내고 입주했다. 이모씨는 “전세 연장을 안했으면 정말 길거리에 나 앉을 뻔 했다”면서도 “다만 2년 뒤 최소 2억4000만원의 보증금을 더 올려줘야하는데, 어떻게 마련할지 걱정이 앞선다”고 하소연했다.

최근 서울 강서구 가양동의 한 아파트에는 전세 계약을 위해 10여명이 모였다. 전셋집 하나에 아홉팀이 줄을 선 것이다. 이 중 한팀만이 계약이 성사됐는데, 계약자를 정한 방식은 다름 아닌 ‘제비뽑기’다. 이 사실은 한 네티즌이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려 화제가 됐다. 이 단지는 1993년 입주한 1000가구 규모 아파트로, 올해 1월에는 전용 50㎡가 2억9000만원에 전세 계약됐지만 이달 초에는 3억3500만원에 계약이 체결됐다.

고준석 동국대 법무대학원 겸임교수는 “작금의 부동산시장 현실을 감안하면 이러한 촌극이 발생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라면서 “정부가 졸속으로 정책을 쏟아낸 결과가 아쉽기만 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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