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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간 그린 캐나다 매뉴라이프 자산운용의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지난 달 파이낸셜타임스(FT) 칼럼을 통해 “1980년대 라틴 아메리카 부채 위기, 2010년대 유로존 부채위기는 해당 지역의 경제 성장을 망쳤다”며 “이제 신흥시장이 전염병에 대응과정에서 발생한 부채로 같은 길을 가게 될지가 핵심 질문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2008년 금융위기 때도 세계 경제가 한꺼번에 침체됐으나 살아날 때는 제각각이었다. 가장 먼저 경기가 일어선 미국은 2013년부터 긴축 신호를 내보냈고 당시 경상수지와 재정수지 적자를 동시에 겪고 있었던 취약한 신흥국들은 통화가치가 폭락하고 외국인 자금이 빠져나갔다. 2020년 코로나 위기에서도 같은 상황이 재현되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다. 신흥국의 자금 유출입은 그런 위기 징후를 살펴볼 수 있는 가장 빠르고 가시적인 지표다.
국제금융협회(IIF)에 따르면 3월 이머징마켓으로 101억달러의 자금이 순유입됐다. 주식엔 39억달러, 채권엔 62억달러가 들어왔다. 이는 작년 4월 171억달러의 자금이 유입된 이후 가장 적은 액수다. 작년 11월(765억달러) 이후 넉 달째 감소세다. 전달(234억달러) 대비로도 반토막 수준으로 감소했다.
신흥국 중에서도 경기가 가장 빠르게 회복되는 중국으론 88억달러(주식 38억달러, 채권 50억달러)가 유입됐다. 중국을 제외한 이머징 마켓 주식에는 2억달러가 유입됐고 채권으론 12억달러가 들어오는 데 그쳤다. 미국, 중국 경기에 영향을 받는 우리나라도 상대적으로 안정권이다. 주식에선 연초 이후 석 달 연속 자금이 빠지지만 채권은 순유입세다. 2월 외국인의 국내 채권 투자는 102억2000만달러 증가, 2007년 11월(110억4000만달러) 이후 역대 두 번째로 많았다. 3월에도 순투자(상장채권 기준 3조5800억원)가 유지되고 있다.
아직까진 미국 경기회복이 신흥국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단 분석이다. 국제통화기금(IMF)은 5일 보고서에서 “미국 경기가 좋아지면 신흥 시장으로의 수출 증가가 이어지고 경기 회복에도 도움이 된다”면서도 “그러나 미국에 수출을 적게하고 외부 차입 의존도가 큰 나라에선 금융시장이 위축될 수 있다”고 밝혔다. 터키, 러시아, 브라질 등에선 인플레이션 우려에 경기가 제대로 회복되지 않았음에도 금리를 올려야 했다. 이 과정에서 터키 중앙은행이 취임 넉 달만에 해고되는 등 정치 불안이 경제 불안까지 자극한 점도 악재로 꼽혔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2013년 테이터 텐트럼이 발생했을 때보다 이머징 마켓들의 경제 사정이 나아졌다는 점이다. IIF는 “2018년 이머징 마켓 자금 유출 또는 2013년의 테이퍼 텐트럼 때보다 자금 유출이 덜 할 것”이라고 밝혔다.
IMF “부채 만기 연장 등 재정 상황 개선하기 좋은 시점”
그러나 미국 경기가 빠른 속도로 회복될 경우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예상보다 금리를 더 빨리 올릴 것이란 불안감이 커질 수 있다. IMF 분석에 따르면 연준의 깜짝 금리 인상으로 미국 금리가 1%포인트 상승할 경우 이머징 마켓의 장기 금리는 3분의 1%포인트 오르고, 신용등급이 나쁜 이머징 마켓은 3분의 1%포인트 금리가 오르게 된다. 모든 조건이 동일하다면 신흥국에서 자본이 유출돼 미국으로 흘러갈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실제로 미국 경기는 빠르게 회복되고 있다. 3월 비농업 취업자수가 91만6000명 증가, 시장 예상치(64만7000명)를 훌쩍 뛰어넘었다. 아직까진 연준의 스탠스에 변화가 생길 만큼의 지표 개선은 아니란 게 대다수 의견이다. 그러나 백신 접종률(인구 100명당 50명 접종)이 높아 일상으로의 복귀 과정이 다른 나라보다 빠르기 때문에 연준의 스탠스는 경기 상황에 따라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
IMF는 “글로벌 금융시장이 아직까지 더 높은 위험을 허용하고 있고 앞으론 시장별로 차별화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현 시점은 이머징 마켓이 부채 만기를 연장하는 등 재정 상황을 개선하기 좋은 시기”라며 “외화를 제공하는 스왑라인, 다자간 대출 등 글로벌 금융안전망을 강화해야 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