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훈의 신경영 비전] 캄브리아기 대폭발과 오늘의 벤처

  • 등록 2021-07-23 오후 2:49:53

    수정 2021-07-23 오후 2:49:53

[이상훈 전 두산 사장·물리학 박사] 캄브리아기란 약 5억 4천만 년 전부터 4억 9천만 년 전까지 5천만 년 동안 이어진 고생대 최초의 시기이다. 이 시기는 생물의 다양성이 급격히 증가하여 현존하는 생물의 기원이 된 생물종의 대부분이 갑자기 출현한 캄브리아기 대폭발로 유명한 시기이기도 하다.

지구에 30억 년 전 처음 생명체가 출현한 이후 캄브리아기까지 지구상에는 매우 단순한 생물종만이 존재했다. 대부분 단세포 동물이거나 다세포라 하더라도 해저를 기어 다니거나 수중을 부유하면서 주변의 유기물을 흡수하는 게 전부였다. 그렇게 25억년 동안 잠잠하던 지구상에 5억 4천만 년 전 갑작스러운 대변화가 일어났다. 수만 종의 새로운 생명체가 예고도 없이 갑자기 출현한 것이다. 더구나 당시 번성했던 생물종의 모습은 오늘날의 생물종과 너무 달라 분류조차 어려운 경우가 많다.

눈이 다섯 개 달리고 코끼리 코처럼 생긴 촉수 끝에 달린 집게로 먹이를 잡던 오파비니아나 새우처럼 생긴 촉수와 해파리처럼 생긴 입으로 삼엽충을 잡아먹던 당시 최고의 포식자 아노말로카리스는 현존하는 어떤 생물종과도 닮은 점이 없다. 마치 누군가가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조합을 총동원하여 생물종을 만들어낸 것처럼 기기묘묘한 생물종이 출현했다. 그래서 이 시기를 위대한 실험의 시기라고도 한다. 수많은 새로운 생물종을 실험적으로 만들어보고 어느 종이 생존에 적합한지 테스트해보았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런데 캄브리아기 대폭발을 일으킨 원인에 대해서는 아직 명확하게 정리된 것이 없다. 기후변화부터 외계 생명의 지구 불시착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가설이 제기됐지만 현재 어느 정도 학계의 인정을 받고 있는 것은 수중의 산소량 증가와 시각의 발달 정도이다.

복잡한 생물체가 출현하려면 산소호흡이 반드시 필요하다. 음식물 소화에 산소를 쓰면 이산화탄소나 황을 쓰는 것보다 8배 이상 많은 에너지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산소호흡을 통해 만들어낸 에너지가 있어야 단단한 골격을 만드는데 필요한 단백질 생성도 가능하고 빠르게 헤엄치는데 필요한 근육, 주변을 인식하는데 필요한 신경의 기능도 가능하다. 초기 지구 대기에는 산소가 거의 없었다. 수십억 년의 세월동안 바다의 미생물이 광합성을 통해 산소를 만들어낸 결과 캄브리아기의 대기 중에는 오늘날의 약 절반 정도에 해당하는 수준의 산소가 있었다고 한다. 오늘날의 생물 대부분은 질식사할 정도로 희박한 산소량이지만 캄브리아기의 다양한 생물종을 출현시키기에는 충분한 양이었던 모양이다. 물론 지구상의 산소량이 캄브리아기에 급격히 증가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물이 섭씨 100도가 되면 갑자기 끓어오르듯이 수중 산소량이 어느 임계치를 넘으면서 복잡한 종의 진화가 가능해졌을 수 있다.

시각 역시 마찬가지이다. 캄브리아기 이전에 이미 시각 기능은 상당 수준 진화되어 있었다. 하지만 별다른 포식자의 위협이 없는 수중에서 주변의 유기물을 섭취하는 대부분의 생물종에게 시각은 별로 필요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캄브리아기에 시각을 갖춘 빠르게 헤엄치는 포식자가 출현하자 적절한 방어 기능을 갖추지 못한 스펀지와 같은 동물들은 멸종할 수밖에 없었다. 살아남으려면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 단단한 외피나 창과 같이 날카로운 방어무기, 혹은 포식자보다 더 빨리 헤엄칠 수 있는 척추를 갖춰야 했지만 그 모든 것에 선행해서 포식자를 발견할 수 있는 시각이 필요했을 것이다. 다시 말해 시각이라는 테크놀로지가 공격 기능과 방어 기능을 폭발적으로 발전시키는 유도체가 된 것이다.

길고 긴 코로나 대유행의 터널을 지나오면서 벤처 업계는 캄브리아기 못지않은 대폭발을 경험하고 있다. 기술 정보 플랫폼 CB 인사이트에 의하면 올해 1분기 전 세계 스타트업이 일으킨 펀딩은 180조 원에 이른다고 한다. 스타트업 펀딩 최고 기록을 세운 2020년 한 해동안의 펀딩 총액 300 조원과 비교해도 스타트업 펀딩이 올해들어 두 배 이상 증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기업가치가 1조 원 이상 되는 비상장회사를 가리키는 유니콘의 수도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지난 1분기에 새로 출현한 유니콘은 136개로 작년 한 해 동안 출현한 128개를 석 달 사이에 추월해버렸다.

캄브리아기처럼 지금 새로운 기술기업을 일으키기 가장 좋은 환경이 형성되고 있다. 코로나로 인한 경제 침체를 막기 위해 각국 정부가 시중에 자금을 풀면서 벤처 투자 자금이 넘쳐나고 인공지능의 발달로 각종 서비스가 기존에 없던 새로운 도약을 이뤄내고 있다.

그런데 오늘날 벤처를 이끌어가는 사업가들이 캄브리아기에서 배워야 할 교훈이 있다. 캄브리아기에 실험적으로 출현한 대부분의 생물종이 캄브리아기를 넘기지 못하고 멸종한 것이다. 당시 최고의 포식자로 전 세계 바다를 장악했던 아노말로카리스도 멸종의 운명을 벗어나지 못했다. 반면에 아노말로카리스의 공격을 피하기 위해 빠르게 헤엄칠 수 있는 척추를 발달시킨 피카니아는 오늘날 동물 세계의 대부분을 구성하는 척추동물의 위대한 조상이 되었다.

캄브리아기처럼 창업하기 좋은 환경을 맞아 아노말로카리스와 같은 기업을 만들지 피카니아와 같은 기업을 만들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이데일리
추천 뉴스by Taboola

당신을 위한
맞춤 뉴스by Dable

소셜 댓글

많이 본 뉴스

바이오 투자 길라잡이 팜이데일리

왼쪽 오른쪽

스무살의 설레임 스냅타임

왼쪽 오른쪽

재미에 지식을 더하다 영상+

왼쪽 오른쪽

두근두근 핫포토

  • 그림 같은 티샷
  • 홈런 신기록 달성
  • 꼼짝 마
  • 돌발 상황
왼쪽 오른쪽

04517 서울시 중구 통일로 92 케이지타워 18F, 19F 이데일리

대표전화 02-3772-0114 I 이메일 webmaster@edaily.co.krI 사업자번호 107-81-75795

등록번호 서울 아 00090 I 등록일자 2005.10.25 I 회장 곽재선 I 발행·편집인 이익원

ⓒ 이데일리.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