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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면 끓이는 회장님, 못 먹는 사장님

식품사 경영자 제품 사랑은 시장에 던지는 메시지
크라운해태 윤영달·SPC 허영인, 신제품 직접 시식
양대 맥주회사 사장 상반된 주도에 담긴 경영철학
담배회사 사장 오른 비흡연자들…"경영은 별개 문제"
"애착은 몸에 배야…집착해서 긍정 결과 못 얻어"
  • 등록 2020-12-02 오전 11:01:30

    수정 2020-12-03 오전 10:36:40

[이데일리 전재욱 기자] 월가 투자자 워런 버핏의 ‘코카콜라’ 사랑은 유별나다. 하루에 다섯 캔 넘게 마시고, 공개 석상에서는 유난히 더 마신다. 시장은 이런 그의 모습을 통해 코카콜라사(社)를 신뢰한다. 버핏은 이 회사 최대주주다.

코로나19가 식품회사에 기회가 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우리 입으로 들어가는 것’에 대한 집착에 가까운 애착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평소 회사 경영자가 보인 애착 하나하나에서 시장은 신뢰를 읽었고, 이렇게 쌓인 신뢰는 코로나19 위기를 빗겨가는 거름이 됐다. 그들의 행동에 담긴 의미를 짚어보면 입이 더 즐거워진다.

(그래픽= 이동훈 기자)
긴장 흐르는 품평회…“누구인가? 누가 빵을 구웠어”

2일 업계에 따르면 평소 윤영달 크라운해태제과 회장은 모든 제품을 출시하기 직전에 직접 맛본다. 반드시 시식은 점심 먹은 직후에 한다. “배부를 때 먹어서 맛있는 과자가 진짜”라는 게 윤 회장의 지론이다. 신제품은 꼭 손자에게 먹인다고 한다. 가까이 있는 소비자에게서 의견을 들어 보려는 의도인데 숨겨진 의미는 따로 있다. 회사 관계자는 “가족에게 먹일 만큼 안전하게 만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허영인 SPC그룹 회장도 맛이라면 엄격하기 그지없다. SPC그룹 제빵 계열사는 매주 제품 보고회를 열어 신제품을 품평하는데, 허 회장은 이 자리를 고정 일정으로 잡아둔다. 직접 참석해 맛과 질을 따진다. 빵은 몇 도에서 얼마나 구웠는지, 오븐은 어느 회사 제품인지, 원재료 품종은 무엇인지 등 전문적인 질문을 던져 연구원이 쩔쩔매는 자리라고 한다.

SPC그룹 관계자는 “빵 회사는 빵이 맛있어야 살아남는다는 기본을 지키는 것”이라며 “회장보다 제빵왕으로 불리는 이유”라고 전했다.

식품사 경영자가 곁에 두고 즐기는 제품은 히트 상품과 거리가 멀지도 않다. 신춘호 농심그룹 창업주는 80대 나이에도 ‘신라면’을 스스로 즐기고, 김호연 빙그레그룹 회장의 냉장고 한편에는 늘 ‘바나나맛우유’가 채워져 있다. 샘표식품이 식초 명가로 거듭나기까지는 작고한 박승복 회장의 식초 예찬을 빼놓을 수 없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왼쪽부터 윤영달 크라운해태제과 회장, 허영인 SPC그룹 회장, 신춘호 농심 회장, 김호연 빙그레 회장.(사진=각사)
비우거나, 남기거나

양대 맥주회사 사장의 주도(酒道)를 대비해서 읽는 것도 재미있다. 김인규 하이트진로 사장은 1989년 입사하고 다른 회사 술은 입에도 안 댄다. ‘술은 한 방울도 남기지 않는다’는 게 그의 술버릇으로 굳어졌다. 많이 마신다는 게 아니라, 단 한 병을 마셔도 다 마신다는 의미다. 자사 제품에 대한 존중 차원이다.

하이트진로 관계자는 “회사 회식은 항상 김 사장이 남은 술병의 술을 모아서 제 잔에 따라 마시는 걸로 끝난다”며 “직원의 노력이 담긴 술을 남기는 것은 실례라는 게 김 사장 신조”라고 말했다.

배하준(본명 벤마그다제이베르하르트) 오비맥주 사장은 올해 유럽 맥주를 끊었다. 평소 ‘스텔라’와 ‘호가든’을 즐겨 마셨는데 올해 초 오비맥주 사장이 되고서는 ‘카스’만 마신다. 벨기에 출신 배 사장의 까다로운 맥주 입맛을 카스가 사로잡은 것이다. 그는 여태 주량을 재 본 적이 없다. 양을 정해두고 마시는 게 아니라, 마실 만큼만 마시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지나친 음주를 삼가라는 백 마디 말보다 이런 행동 하나가 낫다”고 평가했다.

김인규(왼쪽) 하이트진로 사장과 배하준 오비맥주 사장.
담배회사 흡연실은 풍경이 엇갈린다. 백복인 KT&G 대표는 소문난 애연가다. 자사 제품만 피우는데, 궐련형에서 최근 전자담배로 갈아탔다고 한다. 반면에 외국계 담배회사 BAT코리아의 김은지 대표이사와 한국필립모리스 백영재 대표이사는 모두 비흡연자다. 두 회사를 두고 신선한 평가가 나온다. 비흡연자도 담배회사에서 한자리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줬기 때문이다. 회사 문을 두드리기 꺼리는 비흡연자의 우려는 기우라는 메시지다. BAT코리아는 전임 김의성 대표도 담배를 피우지 않았다.

BAT코리아 관계자는 “흡연자는 특정 담배에 기호가 강해서 한 가지에 익숙하기 쉬운데, 김 대표는 비흡연자로서 여러 취향을 생각할 수 있어 되레 경쟁력을 가진다”고 말했다.

가까이 하기엔 너무 매운 당신

이처럼 자사 제품을 입에 대지 않는 사례는 종종 있다. 식품은 기호성이 강해서 불가피한 측면도 무시하지 못한다.

삼양식품 창업주 전중윤 회장의 맏며느리 김정수 사장은 자신이 개발한 ‘붉닭볶음면’을 먹지 못한다. 불닭볶음면은 ‘경영난에 빠진 회사를 구출한 제품’이라는 평가를 받지만, 그가 먹기에는 너무 매운 탓이다. 평소 매운 음식을 가까이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의 시댁과 친정은 이북에 있다. A 피자 대표이사는 사석에서 “젊은 시절 피자를 너무 많이 먹었더니 지금은 못 먹겠다”고 말하기도 한다.

사실 입맛은 강요해서 맞추지 못한다. 애착은 기호에서 비롯하고, 살다 보면 기호도 변한다. 외국계 식품회사 관계자는 “자사 제품에 대한 애착은 몸에 배어서 자연스럽게 나오는 것”이라며 “강요한다고 해서 마냥 긍정적인 결과를 기대하기도 어려운 게 요즘 분위기”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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