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훈의 신경영 비전] 골리앗과 IBM

  • 등록 2021-10-15 오후 3:01:15

    수정 2021-10-15 오후 3:42:49

[이상훈 전 두산 사장·물리학 박사]구약 성경에 나오는 다윗과 골리앗의 이야기는 기독교인이 아니어도 한 번쯤 들어봤을 것이다. 이스라엘과 블레셋이 전쟁을 하고 있었는데, 당시 전쟁은 양국이 대표 장수를 하나씩 내보내 일대일 전투에서 승리한 쪽이 전쟁에서도 이기는 식으로 진행됐다. 블레셋을 대표해서 나온 장수가 골리앗인데 키가 3미터 가까이 되는 거인이어서 이스라엘에서는 감히 골리앗에 맞서 싸우겠다고 나서는 사람이 없었다. 그런데 이스라엘의 양치기 소년 다윗이 하나님에 대한 신앙심으로 무장하고 나와 들짐승을 물리칠 때 쓰는 물매로 돌을 날려 골리앗의 이마에 맞히자 골리앗이 쓰러졌고 다윗이 칼로 골리앗의 목을 쳐 전쟁에서 승리했다는 것이 이야기의 줄거리이다. 이 이야기는 상대에 비해 비교가 되지 않는 약자가 강자를 무너뜨리는 의외의 결과를 냈을 때 흔히 인용되고 있다.

그런데 말콤 글래드웰이란 작가는 2013년 쓴 책 다윗과 골리앗에서 재미있는 주장을 했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에서 약자는 다윗이 아니라 골리앗이란 것이다. 그가 첫 번째로 주목한 것은 골리앗의 키였다. 키가 3미터 가까이 된다는 것은 거인병에 걸려 있다는 것이고 거인병에 흔히 나타나는 증상이 눈이 흐려져 잘 볼 수 없게 된다는 것이다. 골리앗은 가까이 다가온 적은 물리칠 수 있지만 다윗처럼 멀리 떨어져 돌을 날리는 적은 잘 보이지 않아 무슨 행동을 하고 있는지 알아차리고 방어할 수 없었다는 게 말콤의 주장이다. 두 번째 포인트는 다윗이 사용한 무기이다. 물매는 아이들이 가지고 노는 고무줄 새총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무기이다. 물매에 작은 감자만한 돌을 넣고 초당 6-7회 돌리다가 돌을 날리면 날아가는 돌의 속도는 초속 34미터에 달해 치명적인 무기가 된다고 한다. 돌의 속도는 총알이 날아가는 속도의 10분의 1에 불과하지만 돌의 무게가 총알의 10배가 넘기 때문에 맞았을 때 몸에 가해지는 충격은 총에 맞았을 때와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칼과 창으로 무장한 골리앗과 권총과 다름없는 물매로 무장한 다윗 가운데 누가 약자냐는 게 말콤의 주장이다. 말콤은 이 이야기를 토대로 강자와 약자, 전통적인 전술과 비전통적 전술을 비교하는 내용으로 책 한 권을 채우고 있다.

IBM은 누구나 아는 IT 업계의 강자이다. 컴퓨터가 없던 세상에 메인프레임을 공급하며 세계 최고의 컴퓨터 회사가 되었고, 이후 다가온 PC 세상에서도 애플에 맞서 IBM 호환 기종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리더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다. 2009년까지만 해도 IBM은 세계 최대의 IT기업이자 세계에서 45번째로 큰 기업이었다. 그런데 그런 IBM의 최근 모습을 보면 현대판 골리앗이 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암을 치료한다고 매체마다 전면 광고를 내며 선전했던 인공지능 왓슨은 마케팅이 만들어낸 허구라는 게 드러났고, 사업의 핵심이었던 PC와 서버 사업은 중국 회사 르노보에 매각해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 디지털 전환의 중심인 클라우드 사업에서도 아마존이나 마이크로소프트에 밀려 들러리 역할만 하고 있을 뿐이다. 최근에는 IT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IBM의 내부 이메일 시스템에 문제가 생겨 업계의 웃음거리가 되기도 했다. 이런 IBM의 쇠퇴는 재무 결과에도 그대로 나타나고 있다. 지난 10년간 IBM의 매출은 28% 감소했고, 수익 역시 41% 감소했다. 빚은 40조 원 이상 증가했다. 이러니 주가가 44% 떨어진 게 놀라운 일이 아니다.

도대체 IBM에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IBM의 쇠퇴에는 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사람들이 대개 지적하는 문제는 업계의 변화를 제대로 내다보는 비전이 없었다는 것과 초 스피드로 변화하고 있는 경쟁 환경에 대응하지 못한 느린 내부 조직체계이다. 세상이 클라우드로 전환되면서 하드웨어나 소프트웨어를 구매하기 보다 사용료만 지불하는 방식으로 바뀌고 있는데 기존의 하드웨어, 소프트웨어, 서비스의 패키지 판매에 길들어져 있던 IBM은 클라우드 기술 개발을 제 때 하지 못했고, 그나마 시장을 읽은 관리자가 클라우드 개발을 하려고 해도 거대 기업의 조직 문화가 걸림돌이 되어 속도를 내지 못했다. 눈이 흐려져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고, 총을 든 적 앞에서 칼과 창으로 무장하고 있는 골리앗과 닮은 꼴이 아닌가.

작년 IBM의 CEO로 선임된 아빈드 크리슈나는 클라우드와 인공지능 중심의 사업전략을 비전으로 제시하며 IBM의 부활을 꾀하고 있다. 오랜만에 연구 부분 출신이 CEO가 되어 시장에서도 기대를 하는 것 같다. 과연 크리슈나가 IBM의 기업문화를 쇄신하고 과거 IT 업계의 리더 위상을 되찾을지 관심을 갖고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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