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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만난 다윗과 골리앗
10일 업계에 따르면 국민건강보험공단은 2014년 4월14일 KT&G와 한국필립모립스, 브리티쉬아메리칸토바코(BAT)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냈다. 공단이 2003년부터 10년간 흡연자 3465명에게 지급한 건강보험료 533억원을 담배회사가 물어내라는 소송이었다. 흡연자들이 앓은 폐암과 후두암은 담배를 피워서 걸린 것이기 때문에 담배회사 책임이라는 게 공단의 주장이었다.
소송은 거는 쪽이나 당하는 쪽이나 법률대리인이 필요하다. 우선 공단을 대리해 소송을 접수한 쪽은 법무법인 남산이었다. 공단은 공고를 내 입찰에 참여한 이들 가운데 남산을 선별했다. 소송 수행 능력이 제일의 평가 기준이었다. 유사한 소송을 진행해봤는지를 우선으로 봤다. 당시 남산은 개인 흡연자를 대리해서 KT&G를 상대로 소송을 진행하고 있어서 좋은 평가를 받았다. 2007년 시작한 이 소송은 공단이 소송을 준비하던 2013년 무렵에도 끝나지 않고 있었다. 남산은 1심과 2심에서 패소하고서 3심(대법원) 결과를 기다리고 있었다.
우연인 듯 필연으로, 공단과 담배 3사의 소송은 ‘리벤지 매치’로 흘러갔다. 앞서 남산이 개인 흡연자를 대리해서 낸 소송은 2014년 4월10일 대법원에서 패소가 최종 확정됐다. 공단이 소송을 내기 나흘 전이었다. 남산은 흡연자의 주장을 끝내 관철하지 못하고서도, 공단을 대리해서 같은 소송을 진행하게 된다. 그런데 이 소송에서도 KT&G를 대리했던 법률대리인이 바로 세종이었다. 앞서 유사한 소송에서 붙어 승부를 봤던 패장(남산)과 개선장군(세종)이 다시 전장에서 만나는 상황이 연출된 것이다.
체급차 한계…허망한 복수혈전
이런 이유에서 소송은 시작부터 기시감이 있었다는 게 결과론적인 시장의 평가다. 법률 분쟁은 법률 대리인 간 싸움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법무법인 남산은 변호사 23명이 소속한 중소형 규모 로펌이다. 세종은 변호사를 포함한 법률전문가 500여 명이 소속한 국내 수위권 로펌이고, 화우도 각계 법률 전문가 384명이 활동하는 상위권 로펌이다. 김앤장은 말할 것 없이 국내 최대 규모 로펌이다. 로펌 실력을 덩치로 판단하는 것은 금물이지만, 체급 차이는 시작부터 현격했다. 이런 격차가 어떤 결과를 낳는지는 앞선 승부에서 판명 난 뒤였다.
물론 남산은 공단 소속 변호사와 함께 소송을 준비했지만, 이들 로펌 셋을 한번에 상대하기에는 벅찰 수밖에 없었다. 지난달 20일 나온 이 소송의 1심 결과는 공단의 패소였다. 업계 관계자는 “대형 로펌이 공단의 편에 서서 담배회사를 상대로 소송을 진행하기 어려운 이유는 자본력을 갖춘 담배회사는 로펌의 주요 고객이기 때문”이라며 “굳이 싸워서 적으로 만들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공단 소속으로 송무 업무를 담당하는 안선영 변호사는 “입찰에 중소 로펌이 지원했으나 선택지가 많지 않은 상황에서, 유사 소송 경험이 있는 법무법인을 선임한 것”이라며 “소송이 보통 일이 아니라서 백지상태에서 시작했다면 준비하는 것조차 어려웠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항소할지는 검토 중인데, 하더라도 법무법인을 교체할지는 정해진 게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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