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몇달내로 수익을 낼 수 있다는 B사의 말을 믿고 계약을 체결했지만 현실은 달랐다. 상가가 전혀 활성화되지 않자 그는 결국 사업을 포기하기로 했다.
그는 지인 C씨에게 상가를 다시 전대하고자 했다. B사가 새 전차인에게는 전대료를 낮춰서 계약할 수 있다는 새 방침을 내놨기 때문이다. 문제는 기존 계약 해지문제로 A씨는 6개월치 임대료를 위약벌금으로 내야 했다. 계속 상가를 임대할 경우 피해금액만 늘어나는 터라 그는 어쩔 수 없이 5000여만원을 결국 토해냈다.
을의 지위에서 어쩔 수 없이 과도한 위약금을 냈다고 판단한 그는 분쟁조정 전문기관인 공정거래조정원을 찾았다. 조정원은 B사의 갑질을 어느 정도 인정해 조정을 권유했지만, B사가 받아들이지 않았다. 조정원은 어쩔 수 없이 공정위 신고를 통해 해결해 보라고 조언했다. 그는 희망을 갖고 공정위를 찾았다.
하지만 희망은 10일 만에 ‘절망’으로 돌아섰다. 공정위가 “민사절차로 우선적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회신했기 때문이다.
A씨는 “공정위가 을의 눈물을 적극적으로 닦겠다고 해놓고, 실제로는 민사로 알아서 해결하라고 한다”면서 “힘없는 일반 소상공인이 어떻게 민사에서 대형로펌을 앞세운 대기업을 이길 수 있겠냐”고 울분을 토했다.
배경에는 ‘각하제도’가 있다. 신고가 들어오더라도 사무관이 전결로 ‘각하’를 하면 신고건으로 잡히지 않고 단순 ‘민원’으로 처리된다. 공정위에 들어오는 민원은 연간 4만~6만건으로 추정된다. A씨의 신고는 ‘민원에 대한 답변서’를 보내면서 없던 일이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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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위 관계자는 “이미 계약이 체결된 사안의 경우 공정위가 뒤늦게 개입하기는 사실 쉽지 않다”면서 “결국 계약이 부당하게 체결해야하는 점을 입증해야하는데, 모든 사안을 다 따지기는 인력과 시간의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피해자가 많은 사건, 사회적 파장이 큰 사안을 중심으로 볼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한정된 인력과 예산을 고려해 우선순위를 따진 셈이다.
결과는 참담했다. 행정안전부가 지난달 발표한 ‘2020 민원서비스 종합평가’에 따르면 공정위는 최하위 등급인 ‘마’로 선정됐다. 제대로 신고가 처리된 민원인은 일부에 불과했고, 울분이 터진 민원인이 다수였던 탓이다.
공정위도 손을 놓고 있는 건 아니다. 쏟아지는 갑질 문제를 보다 체계적으로 처리하기 위해 서울시, 경기도와 협력관계를 구축하고 있다. 가맹분야, 대리점분야 불공정행위에 한해서 지자체에도 분쟁조정을 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고 있다. 하지만 지자체도 공정거래조정원과 마찬가지로 조정 역할밖에 할 수 없다.
이런 상황에서 지자체에서는 공정위 조사 권한을 넘겨달라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최근 가맹·대리점 분야 불공정 현안 간담회를 열고 “정부 차원의 조사가 어렵다면 시도에 조사처분권 일부를 넘겨야 한다”고 밝혔다. 공정위가 ‘갑질’ 문제를 적극 해결하기 어렵다면 지자체에 권한을 양도해서 ‘을의 눈물’을 적극적으로 닦자는 얘기다.
공정위는 아직은 시기상조라는 입장이다. 갑질 사건은 거래상 지위여부부터 경쟁을 제한하는지 여부까지 복잡하게 따져야 하는 전문적인 분야라, 공정위가 할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대형 로펌 한 관계자는 “공정위가 권한을 뺏긴다고 생각할게 아니라 지자체와 공정위, 공정거래조정원간 적절한 역할분담을 좀더 적극적으로 고려해야 한다”며 “공정위는 시장에 보다 큰 시그널을 줄 수 있는 사안 중심으로 사건을 처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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