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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가 이어 기시다…성역 없는 일본 정치 풍자[김보겸의 일본in]

33년 명맥 日정치풍자 그룹 '더뉴스페이퍼'
새로 총리 오른 기시다役 코미디언 데뷔전
정치풍자 코미디, 韓서는 찾아보기 어려워
  • 등록 2021-10-18 오후 1:33:30

    수정 2021-10-18 오후 1:33:30

기시다 총리로 분장한 하마다 타이치(가운데)가 초보운전 마크를 들고 있다. 오른쪽은 스가로 분장한 야마모토 텐신, 왼쪽은 아베를 맡은 후쿠모토 히데(사진=더뉴스페이퍼)
[이데일리 김보겸 기자]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로 분장한 한 코미디언이 초보운전 마크를 들고 등장한다. 특징이 없는 점이 특징인 기시다 총리를 나타내기 위해 새로 취임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상징물로 내세운 것이다. 지난 15일 일본의 정치 풍자 콩트 집단 ‘더뉴스페이퍼’에서 기시다 총리 역할을 맡은 하마다 타이치(57)는 총리로서의 데뷔전을 치르며 “정계가 변화무쌍하게 움직이고 (코미디) 소재도 변화시켜야 하기에 기시다의 언행을 계속 관찰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앞으로 새로운 총리를 신랄하게 풍자할 것임을 선언한 것이다.

더뉴스페이퍼는 멤버들이 정치인들 역할을 맡아 정치 패러디를 기본으로 하는 콩트 집단이다. 역할에 따라 배우가 고정되어 있으며 개그 철학은 다음과 같다. 음담패설은 안 한다. 그리고 지난 소재 재탕은 안 한다.

더뉴스페이퍼가 결성된 건 지난 1998년 쇼와 천황이 중병을 앓으면서다. 방송계에 가무 음곡 자제령이 떨어졌고, 연극예술인들은 하루아침에 실업자가 됐다. 이를 기점으로 코미디언 오디션 프로그램 ‘코미디 스타 탄생!’에 출연하던 3개 그룹이 합쳐 만든 게 지금의 더뉴스페이퍼다. 국내외 정치와 경제, 사회 등 모든 이슈를 웃음으로 승화하겠다는 포부를 갖고 있다.

“항상 지금을 사는 사회 풍자 콩트 집단”이라는 소개가 걸맞게 33년째 명맥을 이어가는 더뉴스페이퍼의 장수 비결은 성역 없는 풍자다. 아베 신조 전 총리 역할을 맡은 코미디언 후쿠모토 히데(50)는 아베 재임 시절인 지난 2016년 총리공관에 초대받은 적이 있다. 아베로 분장한 그의 사진에 아베의 부인 아키에 여사가 ‘비슷하다’며 댓글을 남긴 것이 인연이 됐다.

아베로 분장한 후쿠모토 히데(왼쪽)가 지난 2016년 아키에 여사의 초대로 총리관저를 방문한 모습(사진=후쿠모토 히데 블로그)
훈훈한 방문이 이뤄졌지만 풍자는 멈추지 않았다. 후쿠모토가 아베 부부가 연루된 모리토모 학원 문제를 콩트에 언급하면서다. 지난 2017년 12월 아베로 분장한 후쿠모토는 아키에 여사가 벨기에에서 훈장을 받은 것을 두고 “아키에는 열심히 해 왔고 아직도 활약할 수 있다. 그래도 학교는 그만두는 게 좋지 않을까?”라며 아슬아슬한 대사를 치며 풍자를 이어갔다. 아베가 5200억원을 쏟아붓고도 코와 입술만 간신히 가리는 ‘아베마스크’로 곤욕을 치르는 모습도 후쿠모토가 놓칠 리 없었다.

아베가 건강 악화로 사퇴한 뒤에도 더뉴스페이퍼의 풍자는 이어졌다. 지난 1년간 스가 요시히데 전 총리 역할을 맡은 야마모토 텐신(59)은 정권의 불성실함과 기만을 웃음으로 승화시켰다는 평가를 받는다. 불리한 질문이 나올 때마다 입력한 것 마냥 같은 대답으로 일관하면서다. 코로나 관련 질문에도, 올림픽 질문에도 야마모토의 대답은 한결같았다. “안전하고 안심되는 올림픽을 개최하겠다”는 것. 기자회견 때 원고를 보고 읽기만 한다는 비판을 받는 데 대해선 “총리를 그만두고 시간도 있고, 자민당에서도 푸대접받고 있으니 이제 말하기 학원이라도 다니려 한다”고 답하기도 했다.

나몰라패밀리가 ‘전남 영광 출신 나일론머스크’ 컨셉트로 만든 딥페이크 영상(사진=나몰라패밀리 유튜브)
한국에서는 정치인 소재로 한 풍자를 찾아보기 어렵다. 더뉴스페이퍼처럼 설 자리를 잃은 코미디언들이 그룹을 결성해 콩트를 선보인다는 점에서는 SBS 출신 개그맨들이 모인 ‘나몰라패밀리’나 KBS와 SBS 출신 개그맨들이 결성한 유튜브 채널 ‘피식대학’도 비슷하다. 나몰라패밀리는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의 트위터 한 줄에 테슬라와 암호화폐 주가가 출렁이는 데 따른 투자자들의 분노를 웃음으로 승화했으며, 피식대학은 코로나19 시국에 발맞춘 ‘B대면데이트’ 등으로 웃음을 유발했지만 정치 풍자는 여전히 금기시되는 모습이다.

스가 분장을 한 채 인터뷰를 하는 야마모토 텐신(사진=서일본신문)
1년간의 단명 총리인 스가 역할을 맡은 야마모토는 지난 17일 서일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새 정권 출범을 어떻게 보고 있느냐’는 질문에 “이번 총재 선거는 이상했다”며 뼈 있는 답변을 내놨다. “후보자가 공약과 정책을 설명하는 대신 의원들 호불호로 리더가 결정됐다. 내가 응원한 고노 다로는 여론 대다수의 지지를 받았는데도 말이다. 국민의 소리가 의원들에게 묻혀서 되겠는가? 총리를 그만뒀기 때문에 말할 수 있지만, 이 나라의 민주주의는 이상하다.”

33년째 정치 풍자 외길을 걸어온 코미디언의 일침은 대선 후보를 정하는 경선에서 당심과 민심이 심각하게 엇박자를 보이고, 후보자의 정책이나 국가관을 논하기보다는 후보들을 둘러싼 의혹이 난무하는 한국에도 유효한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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