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최훈길 기자] 환경·사회·지배구조(ESG) 관련 정보를 재무제표 수준으로 공개하는 ‘ESG 의무 공시’가 예정보다 1년 이상 늦춰진다. 국내 기업 현실을 외면한 채 강행했다가 후유증이 클 것이란 지적에 정부가 정책 수정에 나선 것이다. 구체적인 각론은 추후 발표될 예정이어서, 기업 현실을 고려한 실효성 있는 기준과 지원책이 포함돼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금융위는 16일 서울 여의도 금융투자협회에서 민관이 참여한 ESG 금융 추진단 제3차 회의에서 ‘국내 ESG 공시제도 로드맵’ 안건을 논의하고 이같이 밝혔다. 김소영 금융위 부위원장은 회의에서 “ESG 공시 도입시기를 2026년 이후로 연기하겠다”며 “구체적 도입 시기는 관계부처 협의 등을 거쳐 추후 확정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금융위 관계자는 “당초 계획보다 최소 1년 이상 연기하겠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 서울 광화문 정부서울청사에 위치한 금융위원회. (사진=이데일리DB)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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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금융위는 자산 2조원 이상 자산 코스피 상장사에 적용하는 ESG 의무공시를 2025년부터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글로벌 스탠다드 격인 ‘IFRS 지속 가능성 공시 기준서’조차 충분히 논의가 안 됐고 미국 등 해외도 신중히 검토하는 상황에서, 우리나라만 과속하면 후폭풍만 거셀 것이란 업계 우려가 컸다. (참조 이데일리 10월5일자<과속 논란 ESG 공시, 결국 1년 연기>)
관련해 금융위는 이날 회의를 통해 주요국·국제기구 표준을 참조하되, 한국경제 산업 구조와 기업 특수성을 충분히 고려하기로 했다. 공시 대상은 일정 규모 이상의 대형 상장사부터 도입하되 국제 동향, 국내 여건을 감안해 단계적으로 확대하기로 했다. 지원을 강화하되, 제도 도입 초기에는 공시 위반에 따른 페널티는 최소화하기로 했다.
공시 의무화 1년 이상 연기로 급한 불은 껐지만, 업계는 여전히 고민하는 중이다. ‘울면 떡 하나 더 주는’ 식이 아니라 기업이 실천할 수 있는 공시 기준, 리스크를 해소할 충분한 준비 시간과 지원 등이 로드맵 최종안에 담겨야 한다는 판단에서다.
한종수 한국회계학회장(이화여대 경영학과 교수)은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 기업 현실에 맞는 실효성 있는 공시 기준을 만드는 것”이라며 “특히 중견·중소기업에 대한 지원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SG 공시제도 로드맵=환경·사회·지배구조(ESG) 관련 정보를 재무제표 수준으로 공개하는 정부 정책이다. 지난 6월 발표된 국제지속가능성기준위원회(ISSB)의 ESG 국제기준을 반영해 한국 기업에 적용된다. 구체적 공시제도 기준, 대상, 시기는 국가별 상황을 고려해 각국 정부가 정한다. 제도 시행 시 기업들은 온실가스 배출량, 감축 계획 등 비재무적 정보도 공시해야 한다. 허위 공시를 할 경우 자본시장법 위반에 따른 제재 조치가 부과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