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 복덕방' 진출…골목상권 파괴 vs 선의의 경쟁

  • 등록 2016-02-01 오전 11:43:03

    수정 2016-02-01 오후 4:41:33

△서울시 강남구 대치동에 있는 한 상가건물 1층에 공인중개업체가 나란히 자리잡고 있다
[이데일리 정다슬 기자] 변호사들이 부동산 법률자문 서비스에 뛰어든지 한달 가까이 지났지만 골목상권까지 침해한다는 논란은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지난달 5일부터 정식으로 영업을 시작한 ‘트러스트 부동산’은 공인중개 자격증 없이 변호사가 부동산 매물등록·알선·거래과정에서의 법률 자문을 제공한 첫 사례로 이번 논란을 촉발시킨 장본인이다. 현재 한국공인중개사협회는 트러스트를 상대로 형사 고발 방침을 밝힌 상태다. 협회는 트러스트가 무등록·무자격 중개행위에 해당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트러스트측은 법률자문의 대가로 보수를 받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쟁점 1. “보수는 부동산 중개 아닌 법률자문의 대가”…합법 vs 불법

트러스트와 기존 공인중개업자의 갈등에서 가장 표면적인 쟁점은 공인중개 자격증이 없는 이가 과연 이에 준하는 서비스를 할 수 있느냐이다. 2006년 대법원은 변호사가 부동산중개업을 하려면 공인중개사법 2조에 따라 공인중개사 자격증을 추가로 취득해야 한다고 판결을 내린 바 있다. 그러나 공승배 대표를 비롯해 트러스트 소속 변호사는 모두 공인중개사 자격증이 없다.

공 대표는 “공인중개사법은 부동산중개를 대가로 보수를 받는 이들에게 적용되는 것이고, 우리는 부동산을 중개하지만 중개 자체에 대한 수수료는 받지 않고 있다”고 설명했다. 자신들이 보수를 받는 것은 부동산 거래에 있어서 법률자문서비스이지 매매·임대상대방을 알선한 데 대한 대가는 0원으로 받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공인중개사협회는 법률자문이라는 이름으로 매물을 확보해 다른 계약자와 연결하는 행위 그 자체가 바로 중개라며 반발하고 있다. 실제 트러스트부동산 홈페이지에는 130여 개의 매물이 올라와 있고 주택 매매, 전·월세를 원하는 쌍방을 연결해준다는 점에서는 여타 공인중개사와 다른 게 없다. 법률자문 수수료로 받는 시점 역시 매매·임대차 계약이 체결되는 시점에 지급하도록 돼 있다.

법에 대한 양측의 해석이 엇갈리는 만큼 국토교통부는 법원에서 판결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김상석 국토부 부동산산업과장은 “트러스트 측은 공인중개업 영업인가를 받아 운영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국토부가 영업인가를 취소하거나 정지할 수 없다”며 “위법성 여부는 법원에서 판가름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공인중개사협회는 이달 안에 트러스트를 공인중개사법 위반으로 형사 고소할 계획이다.

쟁점 2. “99만원만 받겠다” vs “골목상권 죽인다”

두 번째 쟁점은 ‘가격’이다. 트러스트는 매매 거래금액이 2억 5000만원(전·월세는 3억원) 미만이면 45만원, 이상이면 99만원을 받는 2단계 보수체계를 내놓고 있다. 주택 가격이 3억이든 10억이든 한 건당 보수는 99만원이다.

이는 공인중개업계의 보수체계를 완전히 흔들어놓는 일이다. 서울시 기준 공인중개보수요율표는 거래금액에 따라 △2억~6억원 미만 0.4% △6억~9억원 0.5% △9억원 이상 0.9%의 상한요율을 적용하고 있다. 이 경우 10억원 짜리 집을 매매했을 때 중계수수료는 최대 900만원인데, 트러스트에 맡기면 10분의 1 수준인 99만원만 내면 된다.

공인중개 업계는 ‘덤핑’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우리나라 공인중개보수는 세계 어느 곳과 비교해도 저렴한 편이라는 것이다. 실제 중계보수 요율이 1% 미만인 우리나라와 달리 미국·영국·프랑스·독일 등은 2~6% 수준으로 높이 책정돼 있다. 공인중개협회 한 관계자는 “44만명이 넘는 공인중개업자 대부분이 자영업자들”이라며 “법의 빈틈을 노려 중개 서비스에 뛰어드는 이들이 많아지면 이들의 생계는 위협받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반면 트러스트 측은 지역별로 영업구역을 나누고 매물을 공유하는 공인중개업의 카르텔이 바로 비싼 가격의 원인이라고 주장한다. 공 대표는 “우리는 변호사들이 직접 방문해 매물을 확인하고, 소비자들이 홈페이지를 통해 매물을 확인하는 ‘O2O’(Online to Offline) 방식”이라며 “임대료가 비싼 상가 1층에 사무소를 낼 필요가 없는데다 서울·경기 지역 매물을 모두 취급하기 때문에 ‘규모의 경제’를 통해 충분히 가격을 내릴 수 있다”고 말했다.

쟁점 3. 우간다보다 낮은 거래투명성…신뢰·전문성 누가 갖는가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공인중개사는 다양한 요구를 충족할 인적·물적 네트워크망과 풍부한 현장경험으로 법적 자문 이상의 전문성을 발휘할 수 있는 충분한 역량을 갖고 있다”며 “문제는 현재 공인중개 업계에 대한 소비자의 신뢰가 바닥을 치고 있는 현실”이라고 말했다.

1999년부터 세계부동산시장 투명성 지수를 발표해 온 다국적 부동산투자회사인 존스랑라살(Jones Lang Lasalle)에 따르면 2014년 기준 우리나라의 부동산 투명성 지수는 43위로 중국(35위), 필리핀(37위), 인도네시아(39위)보다 낮다. 거래투명성만 보면 우리나라는 60위로 가나(52위·전체지표 83위), 우간다(58위·전체지표 82위)보다도 못하다.

이런 불신의 배경에는 공인중개사가 계약체결에 불리한 사항을 제대로 알려주지 않는다는 인식이 자리 잡고 있다. 지난해 4월 경기도 부천에서 신혼집을 알아보던 홍모(31·여)씨는 “공인중개사가 등기부등본을 떼기 전까지 근저당권이 잡힌 집이라는 것을 알려주지 않아 불쾌한 경험을 한 적이 있다”고 말했다. 투기를 조장하는 기획부동산도 불신을 부추기는 주요한 원인으로 지목된다.

이런 상황에서 향후 트러스트와 공인중개업계의 다툼은 누가 더 소비자의 신뢰를 얻고 전문성 있는 서비스를 제공하느냐로 승패가 갈릴 것으로 보인다. 심 교수는 “공인중개업계도 전속중개제도, 에스크로우 등 선진 시스템을 활성화해 신뢰성을 높이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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