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훈의 마켓워치]<5>중국은 과연 `환율 전쟁` 중일까

위안화 기준환율 12년여래 최고…역외 1달러=7.19위안
`환율 전쟁` 프레임 확산…의도적 절하 경쟁은 아닌 듯
적극적 통화부양·美와 무역전쟁에 위안화 절하 불가피
지켜보는 中당국, 추가 방치땐 보유고·단기자금에 불똥
국채 해외매각 위해 환율 안정 급선무…곧 개입 나설 듯
  • 등록 2020-05-28 오후 12:40:18

    수정 2020-05-28 오후 12:39:58

역내 달러대비 위안화 환율과 인민은행이 고시하는 위안화 기준환율 추이


[이데일리 이정훈 기자] “중국이 환율 카드를 꺼내 들면서 불장난을 시작했다.”

26일(현지시간)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중국 중앙은행인 인민은행이 이 날까지 사흘 연속으로 미국 달러화대비 위안화 기준환율을 높여 잡자(=위안화 가치 절하) 이같은 헤드라인을 달고 비판적인 기사를 썼습니다. 이날 인민은행이 발표한 달러대비 위안화 기준환율은 7.1293위안이었고, 이는 지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12년 3개월만에 가장 높은 수준이었습니다.

사실 올초까지만 해도 1달러에 6.8위안 수준이던 위안화 기준환율은 5개월 남짓한 기간 동안 3% 정도 높아진 7.12위안대까지 올랐습니다. 미국과 중국 간 무역갈등이 한창이던 지난해 4월이나 7월에 비해 덜 가파르게 올랐지만, 한때 심리적 지지선으로 여겨지던 1달러에 7위안을 넘어선 상황에서 추가로 오른 것이라 더 가팔라 보이긴 합니다.

이를 두고 벌써부터 일본부터 국내 언론들까지 다시 불거진 미국과의 무역갈등 국면에서 중국이 미국 정부를 겨냥해 `환율 전쟁(Currency War)`이라는 카드를 꺼냈다고 입에 올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물론 중국 정부도 수출과 경제 전반에 도움이 되도록 위안화 가치 하락을 슬쩍 내버려둘 순 있을 겁니다. 그러나 지난 2015년 가파른 위안화 절하라는 악몽을 겪었던 만큼 위안화 절하의 장점이 오래 가진 못할 것이라는 것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최근의 위안화 평가절하는 인민은행이 전략적으로 선택한 것(=환율 전쟁)이라기 보다는 시장에서 높아진 위안화 가치 하락 압력을 중국 당국이 어느 정도 용인해주고 있는데 따른 결과로 봐야 한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중국 외환당국자들의 스탠스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밤새 역외시장에서 형성되는 위안화 가치를 기준으로 다음날 역내 위안화시장 거래를 위한 기준환율을 어떻게 책정하는지를 보면 되는데요, 작년 미국과 중국 간 무역전쟁 시기에도 위안화 가치는 뚜렷하게 절하되는 양상을 보였었습니다. 당시에도 인민은행은 어느 정도 역외시장에서의 위안화 약세를 용인하면서도 역내에서는 위안화를 그보다는 다소 절상되는 쪽으로 이끌어 절하 속도와 강도를 조절했었습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최근 닷새간 역외 위안화 가치는 0.33% 떨어진 반면 역내 위안화 가치는 이보다 적은 0.25%만 떨어졌습니다. 간밤 상황만 봐도 그렇습니다. 지금 인민은행이 고시하는 달러·위안 기준환율은 7.12위안대에 있지만, 역내 위안화 환율은 이미 7.14위안 수준에 거래되고 있고 간밤 홍콩 역외시장에서의 달러대비 위안화 환율은 장중 7.1964위안까지 갔습니다. 작년 9월에 기록한 전고점 7.1965위안에 바짝 다가섰습니다. 즉, 기준환율을 높인 건(=위안화 절하) 역외 위안화 절하에 따른 불가피한 조치이며 오히려 인민은행은 역외에서의 절하폭을 기준환율에 덜 반영하고 있다는 겁니다.

(이미지= 파이낸셜타임즈)


그렇다면 역내와 역외에서 위안화 가치는 왜 이렇게 하락하고 있는 걸까요. 여기엔 몇 가지 이유가 있을 듯 합니다.

첫째, 인민은행의 적극적인 통화부양정책 때문입니다. 인민은행은 올 1월부터 코로나19가 확산하자 은행 지급준비율과 사실상 기준금리 역할을 하는 1년만기 대출우대금리(LPR)를 잇달아 내리면서 유동성 공급을 크게 늘려 왔습니다. 지난달엔 1년만기 LPR을 최대 폭인 20bp나 내려기도 했구요. 이 덕에 1분기(1~3월) 위안화 신규대출은 7조1000억위안에 달해 분기 기준으로 역대 최대로 늘었습니다.

그러고도 추가적인 부양기조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지난 22일 리커창(李克强) 중국 총리는 전국인민대표회의 업무보고에서 기존의 `온건한 통화정책`을 더욱 유연하게 집행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광의의 통화(M2) 공급량을 작년보다 `명백히 높은 수준`으로 늘린 가운데 기준금리 인하, 지급준비율 인하 등 정책 도구를 종합적으로 활용해 시중 대출금리를 더욱 내려 기업들의 융자비용을 분명히 낮추겠다고 했습니다.

둘째, 재차 고조되는 미·중 간 무역전쟁이 중국 경제를 더 어렵게 할 것이라는 우려 때문입니다. 지난 1월15일 1차 무역합의에서 2년 간 2000억달러 어치 미국산 상품과 서비스를 추가 수입하겠다고 약속하고도 코로나19를 핑계로 이를 이행하지 않는 중국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칼을 빼 들었습니다. 6개월도 채 안 남은 대통령선거를 위한 전략이기도 하구요. 벌써부터 미국은 화웨이에 대한 고강도 봉쇄를 시작으로, 미국 증시에 상장한 중국 기업 퇴출을 비롯한 다양한 카드를 만지작하며 중국을 압박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홍콩 국가보안법을 본국에서 처리하겠다는 중국의 행보는 기름을 끼얹고 있는 양상입니다.

이런 거대한 불확실성은 역외세력들이 위안화 절하에 마음 놓고 베팅할 수 있는 빌미를 주고 있습니다. 블룸버그와의 인터뷰에서 한 외환 트레이더는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후) 미국과 중국 간 관계가 개선될 때마다 위안화는 절상됐고 반대로 관계가 악화되면 약해졌다“고 말했습니다. 미·중 두 나라 간 전격적인 휴전 합의가 없는 한 적어도 11월 대선까지는 역외 트레이더들이 위안화 가치를 하락 쪽으로 몰아갈 가능성이 높습니다.

끝으로, 위안화 절하에도 중국 외환당국의 뚜렷한 대응이 눈에 띄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한동안 중국 당국은 1달러당 7위안을 넘는 `포치(破七)`를 심리적 마지노선으로 간주해 이 지점에서 적극적인 시장 개입 양상을 보였습니다. 그러나 역외 위안화 환율이 7.13위안까지 넘보는 와중에도 별다른 움직임이 없습니다. 이렇다보니 당국이 위안화 절하를 용인하고 있다는 해석이 나오는 것도 당연합니다.

어찌보면 글로벌 달러화 강세국면에서 코로나19에 따른 통화부양은 필연적인 선택이고, 미국과의 무역전쟁도 중국 홀로 어찌해볼 수 없는 사안이다보니 중국 당국도 일단 시장 상황을 지켜보는 쪽으로 스탠스를 잡지 않았나 싶긴 합니다. 중국 당국도 부동산부문을 중심으로 한 달러화 표시 부채 상환에 대한 우려나 지난 2015년 위안화 절하에 따른 대혼란이라는 트라우마를 갖고 있는 만큼 위안화 가치가 걷잡을 수 없이 미끄러지는 것은 막아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을 건 분명합니다. 다만 미국과의 장기전에 대비해 앞으로 있을 수 있는 위안화 추락과의 싸움에 쓸 실탄을 확보하기 위해서라도 대규모 외환보유고엔 아직까지 손을 대고 싶지 않을 겁니다.

그렇다고 이렇게 지켜볼 수만은 없는 노릇입니다. 역외와 역내 위안화 환율 괴리가 커지면 상황이 더 꼬이기 때문입니다. 중국 당국은 본토에서 외환시장을 쎄게 통제합니다. 그렇다보니 지금같은 위안화 가치 하락기엔, 당국 통제를 피해 다소 자유로운 홍콩 역외시장에서 위안화를 팔아 달러를 사려는 수요가 늘어 역외에서부터 위안화 가치가 빠르게 하락합니다. 이로 인해 역내외 역외 위안화값의 차이가 커지면 재정거래(arbitrage) 기회가 생깁니다. 역외에서 위안화를 싸게 빌려 역내에서 비싸게 팔면 돈을 버는 거죠. 이러면 역내 위안화 가치도 덩달아 추락합니다.

이런 일이 생기면 결국 역외에서의 위안화 하락을 막으려고 인민은행이 외환보유고를 풀 수밖에 없습니다. 이 때 인민은행은 역외에서 외환보유고로 들고 있는 달러를 팔아 위안화를 사들입니다. 문제는 역외세력들의 자금 동원력을 알 수 없으니 무한정 매입하다간 외환보유고가 크게 줄어들 위험이 있다는 겁니다.

최근 역내 은행간 단기금리인 사이보(SHIBOR)는 안정적인 반면 역외 홍콩 하이보(HIBOR) 금리는 뛰고 있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이렇게 위안화를 사면 역외 위안화 유동성이 줄어들어 홍콩 시중은행 간 단기자금시장의 하이보(Hibor) 금리가 급등을 할 수 있다는 겁니다. 이는 2015년이나 2018년 공히 나타났던 현상이고, 이러면 시중은행이나 기업들의 크레딧 리스크가 커질 수 있습니다. 지난 21일까지만 해도 0.12071%였던 하이보 하루짜리(overnight) 금리는 다음날인 22일엔 0.34167%까지 치솟았습니다. 28일은 현재 0.24024% 수준입니다.

조만간 중국 당국도 환율 안정화에 나설 겁니다. 우선, 인민은행이 구두개입과 함께 기준환율을 인위적으로 절상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인민은행은 매일 아침 대형 은행들로부터 보고를 받은 뒤 이를 토대로 기준환율을 정하는 만큼 어느 정도 당국 의지가 반영될 수밖에 없습니다. 실제 작년 8~9월에도 위안화가 달러대비 7.2위안까지 하락했을 때 인민은행은 7.08위안까지 절상해 기준환율을 고시했고, `추가적인 위안화 절하를 용인하지 않겠다`는 당국 의지를 읽은 시장은 위안화 안정으로 방향을 틀었던 경험이 있습니다.

그래도 역부족이라면 외환보유고를 풀 겁니다. 우리 돈으로 1100조원에 이르는 천문학적 재정부양책을 내놓은 중국 정부로서는 이 중 일정부분은 시장에서 조달하고자 하고 있습니다. 최근 동일 만기의 미 국채를 살 때에 비해 훨씬 더 높은 투자수익률이 기대되는데다 위안화도 안정되다보니 위안화 표시 국채에 대한 해외투자자들의 투자가 크게 늘어났습니다. 중국채예탁결제기관(CCDC)에 따르면 지난달 말 기준으로 중국 국채에 대해 역외 보유액은 1조3900억위안으로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습니다. 중국 지방정부채에 대한 외국인 투자자 보유도 10% 늘어난 2860억위안을 기록했구요, 전체 중국 채권 보유액도 2.2% 증가한 2조10억위안으로 역대 처음으로 2조위안을 넘어섰습니다.

그래서 얼마 전 판공셩(潘功勝) 중국 인민은행 부행장은 한 외신 인터뷰에서 “위안화 환율을 합리적이고 균형잡힌 수준으로 유지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해외로부터의 중국 국채투자를 유치하기 위해서는 자국 통화가치 안정이 필수이기 때문이죠. 글로벌 달러화 강세 흐름은 11월 미국 대선이 가까워져야 변화를 모색해볼 수 있을 듯 합니다. 앞으로 남은 5개월여, 위안화 안정을 위해 중국 외환당국이 어떤 묘수를 짜낼지 지켜볼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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