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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손의연 기자] ‘화성연쇄살인 8차 사건’ 당시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의 체모 감정 결과가 조작됐다는 검찰의 주장을 경찰이 재반박하고 나섰다. 사건 당시 국과수의 체모 감정 결과는 8차 사건 범인으로 지목된 윤모(52)씨가 20년간 억울한 옥살이를 하게 된 결정적 계기였는데, 최근 이를 두고 검찰은 ‘조작’, 경찰은 ‘오류’라고 주장 중이다. 사건의 진위 여부를 두고 서로의 주장을 연일 반박하고 있지만 최근 수사권 조정 등을 둘러싼 검·경의 신경전이 화성연쇄살인사건으로 옮겨 붙은 모양새다.
경기남부지방경찰청 이춘재연쇄살인 수사본부는 18일 오전 경기도 수원시 장안구 남부청에서 백브리핑을 열어 “검찰은 사건 당시 국과수가 일반인 체모인 ‘스탠더드’ 시료를 감정한 결과를 윤모씨 감정서에만 사용해 감정서를 조작했다고 주장했다”면서 “그러나 스탠더드 시료는 테스트용인 일반인의 모발이 아니라 (8차 사건 당시) 현장에서 발견된 음모”라고 해명했다.
경찰은 당시 보고서를 작성한 원자력연구원의 J 박사에게 받은 답변을 토대로 검찰의 주장을 반박했다. 경찰 관계자는 “테스트용 시료에는 ‘인증 방법’, ‘인증값’, ‘상대오차’ 등 내용이 기재돼 있어야 하는데 당시 스탠더드 시료에는 이러한 표기가 없다”며 “스탠더드라는 용어를 사용한 것도 국과수가 신뢰도 확인을 위해 보내 온 시료의 명칭을 그대로 기재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경찰은 감정인의 연구논문이나 원자력연구원 보고서에 일반인의 음모를 사전에 분석해 기기성능을 테스트했다는 기록이 없다고 밝혔다. 경찰 관계자는 “보통 분석기기의 정확성을 측정하기 위해 스탠더드로 테스트할 수 있으나 모발의 경우 상업용 인증 표준물질이 없다”면서 “테스트용으로 일반인의 모발을 사용했다기보다 현장 음모를 사용했다는 것이 논리적”이라고 했다.
현재 검·경은 화성 8차 사건에서 국과수의 감정 결과에 대해 날선 공방을 벌이고 있다. 검찰은 지난 11일 8차 사건을 직접 수사하겠다며 “국과수의 감정결과가 조작됐다”고 발표했다. 이에 지난 17일 경찰은 “조작이 아닌 오류”라고 맞섰다.
경찰 관계자는 “조작이란 없는 것을 지어내 만드는 것”이라며 “국과수는 감정 과정에서 시료 분석 결과값을 인위적으로 조합, 가공, 첨삭, 배제해 중대한 오류를 범했다고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검찰도 즉각 입장을 냈다. 그동안 검찰이 입수한 원자력연구원의 감정 자료, 국과수의 감정서 등과 관련자·전문가 조사 결과에 비춰 보면 경찰의 발표 내용이 사실이 아니라는 것이다.
검찰은 “범죄 현장에서 수거하지 않은 일반인들의 체모를 감정한 결과를, 범죄현장에서 수거한 음모에 대한 감정 결과인 것처럼 허위로 작성한 후 감정 결과 수치도 가공한 것으로 확인됐다”며 “모든 용의자들에 대한 국과수 감정서엔 범죄현장에서 수거한 체모 감정결과를 기재했지만 윤씨의 감정서에서만 엉뚱한 일반인의 체모를 현장에서 수거한 체모인 것처럼 허위 기재하는 방식으로 조작했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경찰은 늦은 오후 다시 반박문을 냈으며 다음날인 18일 백브리핑을 열고 검찰의 주장이 사실이 아니라고 재반박했다.
최근 화성연쇄살인사건의 피의자로 입건된 이춘재가 8차 사건을 포함한 10건의 화성 사건과 다른 4건 등 14건의 살인을 자백하면서 진범 논란이 불거졌다. 윤씨는 박준영 변호사와 함께 수원지법에 재심을 청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