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달원 걸어가라`…불거진 갈등에 팔짱낀 국토부

오토바이 진입막는 아파트 속출하며 입주민·기사 갈등
지하 주차장 개방 대안에도 바닥 미끄러워 사고 다발
마찰력 키워 주행안전 확보하면 입주민도 안심인데
`택배대란 중재자` 국토부는 "나설 만큼 문제아냐"
  • 등록 2021-01-20 오전 11:00:40

    수정 2021-01-21 오전 9:06:50

[이데일리 전재욱 기자] 도심 일부 아파트가 단지 내 배달 오토바이 출입을 금지하면서 음식배달 업계와 입주민 갈등이 이어지고 있다. 과거 `택배 대란` 사태에 비춰 보면, 갈등은 불편과 비용을 유발하는데 중재자인 국토교통부는 적극적인 개입을 꺼리고 있다.

(그래픽= 이미나 기자)


신분증 맡기고 걸어서 배달

20일 업계에 따르면 음식 배달대행업체 생각대로는 이달 18일부터 성동구에 있는 주상복합 아파트 아크로서울포레스트로 배달료를 종전보다 2000원 올렸다. 통상 4000원 안팎이던 기본 배달료는 6000원으로까지 오를 전망이다.

이곳 기본 배달료를 올린 이유는 다른 데보다 열악한 배달 여건 때문이다. 생각대로에 따르면 이 아파트로 음식을 배달하려면 배달 기사는 △배달 오토바이를 단지 밖에 세워두고 △신분증을 경비실에 맡기고 출입증을 받은 뒤에 △화물 엘리베이터를 타고 이동해야 한다.

도보로 배달하는 거리가 늘면 노동 강도가 센 데다가, 배달 시간도 더 걸린다. 아울러 화물 엘리베이터를 타야 하는 데에 거부감도 인다고 한다.

업계 관계자는 “수천 세대 규모의 대단지 아파트는 도보로 배달을 마치면 30분은 족히 걸린다”며 “배달이 늦으면 주문을 취소하는 사례도 있는데 기사는 허탕을 치는 것”이라고 했다.

지난달 30일 대설주의보가 내린 광주광역시에서 배달 기사가 오토바이를 끌고 이동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 “배달 오토바이, 주거 안전 위협”


배달 오토바이가 주거 안전을 위협한다는 인식 탓이다. 오토바이가 단지에서 주행하다가 입주민과 사고가 날 가능성이 있고, 가능성 자체만으로 주거에 불안 요소이다. 지상에 자동차 통행을 금지한 아파트라면 오토바이도 예외는 아니다. 아울러 오토바이 주행 과정에서 발생하는 소음(배기음, 경적 등)과 매연도 주민 피해를 유발한다.

사실 마땅한 이유가 없더라도 이런 입장을 나무라기 어렵다. 아파트 단지는 입주민이 공유해서 가진 사유지이고 사유지는 재산에 해당하므로, 배달 오토바이 출입 금지 조처는 재산권 행사 일환이다.

아파트 입주민과 배달 업계 간에 갈등은 이미 오랜 얘기다. 배달대행 A사 측이 소속 배달 기사에게 확인한 결과, 이날 현재 단지에 배달 오토바이 출입을 지상과 지하 모두 금지한 서울 시내 아파트는 36곳이다. 아파트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는 배달오토바이 출입 금지를 공론화하는 움직임이 상당하다. 서울뿐 아니라 수도권과 지방 할 것 없이 공통 현상이다.

A사 관계자는 “지난해 배달이 크게 증가하면서 배달 오토바이 출입을 막는 아파트가 늘었다”며 “전수 조사한 게 아니라서 실제로는 더 많을 것”이라고 말했다.

배당대행업체 생각대로가 가맹점주에게 띄운 공지사항.(자료=독자 제공)


“미끄러운 지하 주차장은 열어줄게”

대안으로 등장한 것이 지하 주차장 개방이다. 배달 오토바이 출입을 금지해서 얻는 `거주의 평안`과 이에 따라오는 `생활의 불편` 사이에서 내놓은 타협안이다.

문제는 지하 주차장이 이륜차 사고 위험을 키우는 것이다. 대다수 아파트 지하 주차장 바닥은 에폭시나 우레탄 페인트로 칠한다. 타이어와 바닥 간에 마찰을 줄여 먼지 발생을 감소시키려는 것이다. 마찰이 줄어든 만큼 바닥의 미끄러운 정도는 더 심해진다. 한 배달기사는 “아파트 지하 주차장은 눈 오는 날 도로보다 미끄러워 사고가 쉽게 난다”고 말했다.

주문자와 배달기사 갈등이 지속하면 배달 산업이 질적으로 성장하기 어렵다. 특정 지역 배달에서 △거부 △지연 △고비용 등 불균형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균형을 맞추려면 또 다른 비용이 발생할 수밖에 없고 부담은 주문자와 배달 기사, 그리고 식당 몫이다. 각자가 양보하고 타협해야 하는 사안이라서 현실적으로 어려운 측면도 있다.

현실적인 대안은 지하 주차장 안전을 강화하는 것이다. 지하 주차장 한 켠에 오토바이 주행로를 아스팔트로 마련하는 방안이다. 업계 관계자는 “배달기사뿐 아니라 오토바이를 타는 입주민에게도 도움이 될 것”이라며 “당국에서 아파트 준공 과정에서 이런 시공을 의무로 지정하는 방안도 검토할 만하다”고 제안했다.

중재자 국토부는 `팔짱`

배달업계 제안은 몇 해 전 일었던 `택배 대란` 사태와 닿아 있다. 지금과 비슷한 이유에서 아파트 측이 택배차 출입을 막는 바람에 기사들이 배송을 거부하면서 일어난 일이었다.

당시 중재자로 나선 국토교통부는 타협보다 현실적 대안을 내놓았다. 2018년부터 짓는 아파트는 지하주차장 높이를 2.3m에서 2.7m로 높이도록 법을 고친 것이다. 이로써 지하주차장 천장이 낮아서 택배 차량이 진입할 수 없는 문제를 해결했다.

국토부는 현재 갈등을 당시와 견줘 처리하기는 어렵다는 입장이다. 국토부 코로나19 생활물류 긴급대응반 관계자는 “정부는 배달 기사가 안전한 환경에서 종사하도록 주시하고 있는데, 지하 주차장 환경 정비는 집중해서 들여다보는 사안은 아니다”며 “다른 시급한 문제부터 해결하는 것이 순서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런 갈등이 정부가 나서 해결해야 할 정도로 문제로 불거진 상황은 아닌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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