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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김미경 기자] “그런 발상을 하고 실천했다는 게 정말이지 신기합니다. 지금은 2017년입니다.” 고선웅(48) 연출이 이른바 ‘문화계 블랙리스트’에 올랐다가 연극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 덕분에 명단에서 제외된 사실이 알려진 데 대해 꺼낸 말이다.
연극 ‘조씨 고아, 복수의 씨앗’이 재공연 중인 명동예술극장에서 기자와 만난 고 연출은 “나는 정치적이나 종교적 성향을 작품에서 드러내면 옳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면서 “내 이름이 블랙리스트에 오르내리는지 전혀 몰랐다”고 밝혔다.
앞서 도종환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달 9일 최순실 국정농단 청문회에서 2015년 초연 당시 이 연극을 본 박민권 문체부 1차관이 작품에 감명을 받아 고 연출을 블랙리스트에서 제외할 것을 청와대에 건의했다는 주장이 알려지면서 때 아닌 유명세를 치렀다.
고 연출은 쓴 소리도 쏟아냈다. 그는 “나 같은 보통의 연극인이 청문회에 오르내린다는 것이 온당하지 않다”며 “연극은 아이 같은 마음이라야 비로소 내놓을 수 있는 어떤 것이다. 나는 그런 순정과 나름의 소신으로 연극을 해왔고 그렇게 믿고 살았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5·18 광주민주화항쟁을 배경으로 한) 연극 ‘푸르른 날에’가 무슨 블랙리스트에 오를 작품이냐”고도 반문했다.
청문회 당시 사람들로부터 연락을 많이 받고 깜짝 놀랐다는 뒷얘기도 전했다. 그는 “사뭇 긴장했는데 정황을 보니 결국 나와 조씨고아 팀에는 나쁠 게 없겠더라”면서 “(초연 때 세상을 떠난) 임홍식 선생이 하늘에서 우리 팀에게 선물을 주셨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귀띔했다. “시국도 그렇고 공연이 잘 안 되는 시기인데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이 잘 되라고 하늘에서 응원하는 것 같더라. 그날 술을 많이 먹었다. 생각이 많이 났다.” 그러나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옳지 않다. 그런 발상을 하고 실천까지 했다는 게 믿어지지 않는다.”
12일까지 공연하는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은 중국의 4대 비극 중 하나다. 조씨 가문 300명이 멸족되는 재앙 속 가문의 마지막 핏줄인 조삭의 아들 ‘조씨 고아’를 살리기 위해 자신의 자녀까지 희생하는 비운의 필부 정영이 중심축이다.
이 같은 유명세에 힘입어 연극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은 전석 매진됐다. 지난 3일에는 관객 요청에 따라 3층 3열과 4열에 해당하는 시야장애석 총 33석을 추가 오픈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