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랭드보통 "사람 키우는 일만큼 중요한 건 없죠"

세계여성경제포럼 2013 특별인터뷰
'사람'을 담을 수 있는 휴머니스트 인덱스 필요
"한국내 인생학교 세워 삶의 의미 가르치겠다"
감성, 설득, 친절 같은 여성성(性)이 중요
  • 등록 2013-12-04 오후 7:00:17

    수정 2013-12-04 오후 7:00:17

[이데일리 김혜미 기자] 남성 작가가 여성의 관점에서 쓴 소설 ‘우리는 사랑일까’를 처음 접한 건 2006년 즈음이었다. 또 한 번의 연애에서 쓴 맛을 보고 난 직후 무작정 들어간 서점에서 집어든 소설은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했다. 그냥 남성과 여성이 아니라 사람들간의 관계가 어떻게 맺어지는 지, 그 안에서 느끼는 복잡다단한 감정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인지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했다.

연애 소설을 밑줄 그으며 읽은 건 기자에겐 처음 있는 경험이었다.

제대로 된 사랑을 한 번이라도 해 본 사람이라면 깊이 공감했을 ‘사랑과 인간관계 3부작’의 저자 알랭 드 보통(Alain de Botton·44)을 지난 달 28일 서울 삼성동의 한 호텔에서 만났다. 그는 이데일리 주최 ‘세계여성경제포럼 2013’ 참석차 서울을 찾았다. 세번째 한국 방문이다.

소설가 알랭 드 보통이 지난 28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인터컨티넨탈호텔에서 인터뷰를 하며 밝게 웃고 있다.[사진 : 이데일리 김정욱 기자]
처음 만나본 그는 선한 인상에 눈이 마주치면 밝게 웃고, 인사를 하면 상대방보다 더 깊이 고개를 숙이는 친절하면서도 겸손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일단 입을 열면 그가 갖고 있는 수많은 분야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화려하진 않지만 진심이 담긴 언변에 상대방을 감동시키는 매력적인 사람이기도 했다.

그에게 요즘 가장 관심있는 게 무엇인지 물어봤다. 독특하게도 ‘육아’란 답이 돌아온다. 오랜 시간 인간의 삶과 행동에 대해 고찰한 결과 육아의 중요성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정작 자신은 어릴 적 바쁜 부모님 밑에서 자라 함께 시간을 보내지 못했지만, 아이들에게 있어 0세에서 15세까지의 교육과 활동이 인생을 크게 좌우한다는 걸 알게 됐단다. 그는 요즘 가장 많은 시간을 두 아들에게 할애하고 있다.

“책을 쓰고 인생학교를 세우고, 많은 일을 하지만 아버지로서 아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일은 그 어떤 일보다도 중요합니다. 저는 두 아들을 친절하고 합리적이며 유쾌하고 현명하게 키우고 싶고, 그러기 위해 노력하고 있죠.”

보통은 아이들과 보내는 시간이 그 자신에게도 많은 깨달음을 준다고 말한다. 자신의 인생에 영향을 끼친 사람은 무수히 많지만, 두 아이들이 자라나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일들과 아이들을 길러내는 경험, 앞으로의 가능성이 그에게도 많은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그는 국가적으로 일반인들도 육아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하는 시스템이 조성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제는 어느 집에 사느냐가 중요한 시기가 아니라 집에서 어떻게 사느냐가 중요한 시기이기 때문에, 산업생산에 치중하던 과거보다는 사람에 집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과거엔 없던 끔찍한 사건·사고가 많아지고, 비인간적인 행태가 많아지는 요즘 귀를 기울일 법한 이야기다.

그러자면 육아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해야 한다. 그는 “직장을 관두고 집에서 아이를 보는 사람들에게 ‘요즘 뭘 하냐’고 물으면 ‘아무 것도 안한다’는 답이 돌아온다”며 “하지만 육아는 한 사람을 길러내는 일이기 때문에 정말 중요하다. 아이를 본다는 것에도 사회적인 지위를 부여하고, 한 사람만 돈을 벌어도 가정을 꾸려나갈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줘야 한다”고 말했다.

보통은 국내총생산(GDP) 같은 경제지표처럼 ‘사람’을 담을 수 있는 지표를 만들었으면 하는 바람을 갖고 있다. 얼마나 아이를 잘 키우느냐에 대한 지표가 필요하다는 것. 이 지표는 만약 70%라면 ‘아이를 잘 키웠구나’, 50%라면 ‘조금 더 노력해야 할텐데’라고 생각할 수 있도록 하는 하나의 기준을 말한다. 그는 이를 두고 ‘휴머니스트 인덱스(Humanist Index)’라 이름 붙였다.

‘어떤 직업을 가진 사람이 될 것인가’보다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의 관점에서 그가 세운 것이 바로 ‘인생학교’다. 5년 전 영국 런던에 처음 소개된 인생학교는 현명하게 잘 살기 위해 직면해야 하는 죽음이나 가족, 직장, 돈 등 여러 가지 문제와 관련한 과정이 개설돼 있다. 내년에는 우리나라를 비롯해 호주 멜버른과 프랑스 파리,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스페인 바르셀로나,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도 학교를 열 예정이다.

한국 내 인생학교와 관련해서는 현재 3개 파트너와 협의 중이다.

보통은 인생학교를 두고 ‘교사와 학생이 함께 어울려 서로 공감하고 배우는 공간’이라고 말한다. 현재의 교육 시스템은 사람들이 서로 어떻게 관계를 맺는지, 자기 자신의 불안을 어떻게 해결하고 어떻게 죽는지 등 많은 부분을 놓치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에 대한 해결책을 찾는 것이 이 학교의 최대 목표다.

인생학교의 교사는 특별한 자격이 없다. 보통은 “인생학교의 교사에게 가장 중요한 건 어떤 지식적인 부분에서 현명해야 한다는 것”이라며 “불교에서 모든 사람은 부처가 될 수 있다고 하는 것처럼, 인생학교에서도 모두가 선생님이 될 수 있다. 어떤 문제에선 학생들이 교사보다 더 많이 알고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보통이 인생학교를 세운 배경에는 그가 영국 캠브리지대학교와 킹스칼리지런던, 미 하버드대학교 등 이른 바 ‘엘리트코스’를 밟으며 느낀 실망감이 크게 작용했다. 대학을 가면 우리가 어떻게 서로 사랑하는지, 우리 사회는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자기 자신의 불안감은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지, 인생의 의미는 무엇인지 등을 배울 수 있을 걸로 생각했지만 그렇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그는 두 아들이 정규 교육과정을 밟지 않는다 해도 크게 상관하지 않는다.

“인생학교가 대학 시스템을 대체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진 않아요. 아이들이 과학이나 기술, 이런 부분에 대해 공부하고 싶다면 대학을 가는 게 맞다고 생각하지만, 저처럼 역사나 문학을 배우고 싶다면 굳이 학교에 가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책에 담은 내용이나 제 생각의 많은 부분은 저 스스로 깨달았거나 책에서 나온 것들이거든요.”

보통은 현대 사회에서 부족한 것중 하나가 여성성(性)이라고 보고 있다. 많은 성공한 여성들이 남성들과 경쟁하기 위해 정장을 입고 공격적으로 일하고, 남성처럼 행동해야 했다고 털어놨지만 이제는 남성이나 여성할 것 없이 감성이나 설득, 친절 등이 강조돼야 한다는 것이다.

보통은 “여성들은 남성이 갖고 있지 않은 동정심이나 설득, 친절함, 현명함 등을 갖고 있고, 앞으론 그것이 부각돼야 한다”며 “이제는 자본주의가 종말에 들어선 만큼, 여성성에 기반을 둔 경제로 변모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소설가 알랭 드 보통[사진 : 이데일리 김정욱 기자]
‘이 사람의 관심사는 어디까지일까’ 싶을 정도로 다양한 분야에 식견이 깊은 그는 내년에 또 한번 새로운 분야에 도전한다. 바로 ‘뉴스와 미디어’다.

그는 미디어가 틀을 구성해 제공하는 뉴스에 회의적인 시각을 갖고 있다. 아프가니스탄에서 벌어지는 실제 상황은 미디어가 보여주는 그것과는 다르다고 본다. 그래서 그는 새 책에서 뉴스가 어떻게 구성되고, 미디어 시스템이 어떻게 이루어져 있는지를 실제 상황에서 보여줄 계획이다.

그래서 그는 TV를 끄고 혹은 스마트폰을 내려놓고, 책을 펴라고 말한다. 그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법을 잃어버리지 않을까에 대해 가장 염려하고 있다.

보통은 “뉴스가 중요하다는 데는 동의한다. 하지만 뉴스가 전달해주는 내용을 그대로 수용하기보다는 그에 대해 의심하고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며 “TV를 끄는 대신 책을 펴고, 창조적인 생각을 하는 편을 권한다”고 조언했다.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문득 심술궂은 질문 하나가 떠올랐다. 지능지수(IQ)나 감정적 지능지수(EQ) 테스트는 해 봤는지, 얼마나 나왔는지를 물어봤다. 잠시 고민하다 웃으며 대답한 말은 이랬다. “테스트는 안해봤습니다. 하지만 IQ는 굉장히 낮고 EQ는 아주 높지 않을까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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