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다가 유럽연합(EU)이 자국 완성차 산업을 지키기 위해 전기차 무역장벽 세우기 작업에 돌입한 것도 변수다. 이는 사실상 EU 내 중국 전기차 확산을 막기 위한 정책이지만 결국 국내 완성차 업체들의 전기차 수출에도 영향이 미칠 것으로 점쳐지고 있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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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 외신 등에 따르면 리시 수낵 영국 총리는 지난 20일(이하 현지시간) 내연기관차 신차 판매 금지 시작 시기를 기존 2030년에서 2035년으로 5년 미루기로 결정했다. 2020년 11월 내연기관차 신차 판매금지 일정을 기존 2035년에서 2030년으로 앞당겼다가 약 2년 만에 원상 복귀한 것이다.
미국에서도 빠른 전기차 전환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미국 바이든 행정부는 2032년까지 미국에서 판매되는 승용차의 최대 67%까지 전기차로 보급한다는 목표를 설정했는데 이에 따른 부작용이 만만치 않다는 주장이다.
EU가 중국의 저가 전기차들의 유입을 막기 위해 나선 것도 이와 같은 맥락에서다. EU가 지난 13일 중국 전기차 정부 보조금에 대한 조사에 착수한 것을 두고 업계에서는 중국산 전기차에 높은 관세를 매기려는 사전작업에 돌입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가격 경쟁력을 무기로 한 중국산 전기차 판매 확대가 EU 완성차 업체들이 경쟁력 하락으로 이어질 수 있어서다.
프랑스 정부는 지난 20일(현지시간) 아예 ‘프랑스판 IRA(미국의 인플레이션 감축법)’로 불리는 전기차 보조금 개편 최종안을 발표하기도 했다. 탄소 배출량을 따져 보조금 지급 대상을 선별한다는 게 골자인데 석탄 연료 의존도가 높은 중국산 전기차 대부분이 보조금 지원대상에서 제외될 것으로 관측된다.
전기차 대부분 수출하는 韓..돌파구는
문제는 미국과 유럽의 이 같은 정책들이 우리나라 전기차 수출 전략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데 있다. 가뜩이나 최근 전기차 수요가 줄어드는 추세인데 주요 자동차 수요 국가들이 전기차 전환 속도를 줄이고 무역 장벽을 세우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자동차모빌리티산업협회(KAMA)와 유럽자동차공업협회(ACEA)에 따르면 최근 영국과 프랑스의 전기차 시장 성장세는 급격히 둔화하고 있다. 올 들어 지난 8월까지 영국의 전기차 판매량은 19만3218대로 집계됐다. 이 추세라면 지난해 연간 판매량(26만7203대)에 못 미칠 가능성이 높다. 프랑스도 사정은 비슷하다. 올해 누적 전기차 판매량은 17만4443대로 지난해(20만3122대)와 엇비슷한 수준의 판매가 예상된다.
업계에서는 보호무역주의가 심화할 경우 현대차·기아 역시 전기차 판매 전략의 수정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온다. 유럽은 현대차·기아의 글로벌 전기차 최대 판매처로서 유럽 현지 전기차 수요는 대부분 수출로 대응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대차의 코나 EV만 체코 현지 공장에서 생산하고 있고 아이오닉 5·6는 모두 수출로 판매하고 있다. 기아 역시 니로 EV, EV 6, EV 9 등 주력 전기차 모두를 수출로 대응하는 중이다. 현대차와 기아 모두 유렵 현지 공장을 전기차 전용 라인으로 전환한다는 계획을 이미 밝힌 만큼, 이 전환 속도가 빨라지거나 라인이 확충될 가능성도 있다.
이항구 자동차융합기술원장은 “EU가 중국 전기차 보조금 조사에 들어가겠다는 것은 실제로 관세를 높이겠다는 것이라기보다는 자국 보조금 확대를 위한 명분 쌓기 목적이 강하다”며 “우리나라 완성차업체들은 전기차 시장 수요를 보며 유연하게 대응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