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월가를 달구는 용어가 ‘노 랜딩’(no landing)이다. 연착륙(soft landing)과 경착륙(hard landing)에 빗댄 것인데, 미국 경제가 긴축을 버틸 수 있는 만큼 둔화 자체를 겪지 않을 것이라는 뜻이다. 이를 근거로 일부 강세론자들은 뉴욕 증시의 추가 상승을 점치고 있다. 그러나 높은 금리에 따른 침체 위협 가능성이 높다는 견해도 여전히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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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경제 ‘예상 밖’ 반등세
15일(현지시간) 미국 상무부에 따르면 지난달 소매 판매는 전월 대비 3.0% 증가했다. 지난 2021년 3월 이후 1년10개월 만의 최대 폭이다. 직전 월인 지난해 12월(-1.1%) 큰 폭 감소했다가, 한 달 만에 반등한 것이다. 다우존스가 집계한 전문가 전망치(1.9%)를 웃돌았다. 미국 경제의 70%에 육박하는 소비는 경기의 척도로 여겨진다. 역대급 인플레이션이 덮쳤음에도 경제는 흔들리지 않고 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제조업 역시 반등세가 뚜렷했다. 뉴욕 연방준비은행에 따르면 이번달 엠파이어스테이트 제조업지수(엠파이어지수)는 -5.8로 전월(-32.9) 대비 27.1포인트 뛰었다. 이날 함께 나온 산업생산은 3개월 만에 마이너스 국면에서 벗어났다. 연준 집계를 보면, 지난달 산업생산은 전월과 같은 보합을 기록했다. 지난해 11월과 12월 각각 -0.6%, -1.0%로 나왔는데, 다시 살아난 것이다. 산업생산 내에서 가장 비중이 큰 제조업 생산은 전월과 비교해 1.0% 증가했다.
상황이 이렇자 연준을 향한 조기 긴축 중단 기대감은 거의 사라졌다. 경기가 반등하는 와중에 금리를 중단하거나 인하하면 또 다른 과열을 부를 수 있어서다. 마켓워치는 “투자자들이 놀라울 정도로 강한 소매 판매 보고서를 두고 연준이 다음달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0.50%포인트 기준금리를 인상할 가능성을 높이는 식으로 반응하고 있다”고 전했다. 시카고상품거래소(CME) 페드워치에 따르면 이날 오후 연방기금금리(FFR) 선물 시장 참가자들은 연준이 다음달 금리를 5.00~5.25%로 빅스텝을 단행할 확률을 12.2%로 보고 있다. 전날 9.2%에서 약간 높아졌다.
확연히 엇갈리는 증시 전망
문제는 이를 두고 시장의 관측이 확연히 엇갈리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 주목 받는 시나리오는 노 랜딩에 따른 강세장 진입 가능성이다. 연준의 긴축이 길어진다고 해도 미국 경제가 충분히 버틸 체력이 있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강세론자인 야데니리서치의 에드 야데니 대표는 “우리는 연착륙에서 노 랜딩으로 옮겨가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더 나아가 지난해 10월 중순을 약세장의 끝으로 진단하면서 “우리는 새로운 강세장으로 들어섰다”고 강조했다.
제레미 시겔 와튼스쿨 교수는 “뉴욕 증시의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500 지수가 올해 첫 6개월간 20% 상승할 것”이라고 했다. S&P 지수는 올해 들어 이미 8.46% 뛰었는데, 추가로 더 오를 것이라는 얘기다. 펀드스트랫의 톰 리 리서치 헤드는 더 나아가 “주가가 올해 사상 최고치를 갈아치울 것”이라며 올해 S&P 지수를 4800으로 예측했다. 증시가 한창 달아올랐던 2021년 12월 31일 당시의 고점(4766.18)을 넘어설 것이라는 의미다. 이날 S&P 지수 마감가는 4147.60이었다.
다만 새해 증시 반등이 약세장 랠리(약세장 가운데 반짝 상승)에 불과하다는 시각도 여전히 많다. 마르코 콜라노비치 JP모건 수석전략가는 “시장이 최근 인플레이션에 대한 소식에 과도하게 가격을 매기고 위험에 안주하고 있다”며 “높은 금리와 침체 위협, 저조한 기업 실적은 주식에 부담을 줄 가능성이 높다”고 진단했다.
영화 ‘빅쇼트’의 주인공인 마이클 버리 사이언자산운용 대표는 연초 랠리를 ‘닷컴 버블’에 비유하면서 “경기 침체기 때 단기 랠리는 흔히 있을 일”이라고 깎아내렸다. 그는 그러면서 올해 S&P 지수 전망치를 1900으로 내놓았다. 지금보다 50% 이상 폭락할 수 있다는 것이다.
월가 전설인 헤지펀드 GMO의 창업자 제레미 그랜섬은 “향후 몇 년간 금리 환경의 변화를 감안하면 글로벌 부동산 시장의 침체 가능성은 경제 전반에 깜짝 놀랄 만한 위험을 안길 것”이라며 “현재 뉴욕 증시의 가격은 너무 비싸다”고 경고했다. 그 역시 올해 S&P 지수가 50% 떨어질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로젠버그 리서치의 데이비드 로젠버그 대표는 “뉴욕 증시는 아직 바닥을 치지 않았다”며 “연준은 금리를 계속 올리고 있고 미국 경제는 이제 막 침체에 들어섰다”고 했다. 그는 S&P 지수 전망치를 3000으로 제시했다. 지금보다 30% 가까이 빠질 수 있다는 의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