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외 문화재 돋보기]獨에는 한국 최초 신부의 '성해 주머니'가 있다

반역죄로 참수당한 김대건 신부
흉골 담았던 주머니
'유해 증명서'도 함께 있어
  • 등록 2020-07-15 오후 2:38:45

    수정 2020-07-15 오후 2:38:45

19만 3136점. 지난 4월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이 파악한 해외 소재 국내 문화재 현황이다. 고국을 떠나 타지에 있는 문화재를 환수하기 위해 노력이 지속적으로 이뤄지고 있지만 해외 박물관에서 소장하거나 해당 국가의 보물로 지정돼 있어 가져오기가 현실적으로 어려운 것들이 많다. 이 같은 국외소재문화들은 한편으로는 우리 문화의 우수성을 해외에 알리는 역할도 한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우리 문화재를 기억하고 자긍심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데일리는 국외소재문화재재단과 함께 해외에 나가 있는 우리 문화재에 어떤 것들이 있고, 이들은 어떤 가치를 담고 있는지 차례로 연재해 소개한다.<편집자주>

[이데일리 김은비 기자] 성 베네딕도회의 수도원 중 하나인 독일 상트 오틸리엔수도원 선교 박물관에는 한국 최초의 신부 김대건(1821~1846) 신부의 성해(聖骸)가 담긴 ‘성해주머니’와 ‘유해증명서’가 있다.

김 신부는 한국인 최초의 순교 성인으로 알려져 있지만 한국인 최초로 서양 학문을 배우기 위해 유학을 가 라틴어, 프랑스어에 능통했던 인물이도 하다. 지난해 11월 유네스코에서는 2021년 김대건 신부의 탄생 200주년을 앞두고 그를 세계기념 인물로 선정했다.

천주교가 탄압받던 조선 후기에 태어난 김 신부의 삶은 고난의 연속이었다. 1821년 충청도 내포 지방의 독실한 천주교 집안에서 태어난 김 신부는 1837년 프랑스 출신 신부 모방에 의해 신학생으로 선발돼 마카오에 있는 파리 외방전교회로 유학을 갔다. 이곳에서 김 신부는 4년 6개월 동안 라틴어와 신학 교육을 받았다.

김 신부는 1842년 마카오를 떠나 힘겹게 조선땅으로 돌아왔다. 이미 조선 정부가 김 신부가 신학공부를 위해 유학까지 다녀온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그는 일급 수배자 신분에 가까웠다. 그는 순교하기 전까지 정부의 눈을 피해 서울과 경기도 지역을 오가며 교우들에게 성사를 주고 외국 선교사들의 입국로를 개척했다. 그러던 중 1846년(현종 12) 황해도에서 중국 배에 편지와 조선지도를 전달하고 돌아오다가 체포돼 40여 차례의 모진 고문을 받았다. 결국 반역죄로 사형을 선고받고 같은 해 9월 16일 한강 새남터(지금의 노량진 백사장)에서 참수됐다.

국사범으로 형을 받은 죄수는 통상 사흘 뒤에 연고자가 시신을 찾아가는 것이 관례지만 조선 정부는 김 신부의 시신을 묻고 장례를 치르지 못하게 했다. 이민식과 동료 신자들은 김 신부가 순교한 지 40일 만에 몰래 시신을 옮겨 안성 미리내에 안치했다.

이후 교회법상 절차를 거쳐 개봉한 김 신부의 유해는 한차례 용산신학교로 옯겨졌다가 1925년 다시 개봉돼 로마, 파리, 명동성당, 대구교구, 원산교구에서 각각 모실 수 있게 유해를 나눴다.
한국인 최초 신부인 김대건 신부의 흉골을 담은 ‘성해주머니’(사진=국외소재문화재재단)
상트 박물관에 소장된 ‘성해 주머니’는 김 신부의 흉골을 담았던 주머니로 독일에서 만들어졌다. 주머니는 붉은 수자직 직물로 만들어졌으며 진주와 금사, 산호 등으로 장식돼 있다. 중앙에는 영대, 성작, 성경, 십자가 문양이 있다. 양쪽에는 성경을 감싼 흰색 영대를 중심으로 왼쪽에 “STERNUM B. ANDR”와 “KIM”, 오른쪽에는 “Primi SACER. COREANI”와 “MARTYRIS”라고 자수 돼 있다. ‘한국의 최초 순교자인 복자 안드레아 김의 흉골’이라는 뜻이다.

‘유해 증명서’는 보니파시오 사우어 주교가 1920년 김대건 신부와 프랑스인 신부 2명의 유해에 대해 작성한 증명서다. 유해 개봉은 가톨릭에서 순교를 했거나 특별히 뛰어났던 사람들을 죽은 후에 복사 또는 성인의 품위에 올리는 예식을 앞두고 이뤄졌다.

김근영 국외소재문화재재단 실태조사부 선임은 “김대건 신부의 성해 주머니와 유해증명서는 한국 천주교 역사와 가톨릭 수도승 수도희 중 하나인 성 베네딕도회의 관계를 보여줄 수 있는 단초가 된다”고 유물의 의미를 밝혔다.

한국인 최초 신부인 김대건(1821~1846)신부와 프랑스 선교사 세명의 유해에 대한 증명서. 원산 감목구장 보니파시오 사우어()주교 아빠스가 1920년 작성했다.(사진=국외소재문화재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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