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 만에 이뤄진 블랙리스트 사과…가해자는 없었다

예술위, 2015년 '팝업씨어터' 사태 사과
피해자들과 협의해 작성한 사과문 발표
블랙리스트 실행자 불참에 거센 항의도
  • 등록 2019-07-19 오후 5:18:54

    수정 2019-07-19 오후 5:18:54

19일 서울 종로구 대학로예술극장 1층 씨어터에서 열린 ‘팝업 씨어터’ 사태에 대한 공개 사과 자리에서 박종관 한국문화예술위원장이 사과하고 있다(사진=예술위).


[이데일리 장병호 기자] “우리가 원했던 것은 사실에 대한 인정과 사과였다.”

19일 서울 종로구 대학로예술극장 1층 씨어터카페를 찾은 연극연출가 김정, 배우 황순미, 임영준, 김원정의 표정은 무거웠다.

이들은 2015년 10월 18일 이곳에서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이하 예술위) ‘팝업씨어터’ 사업의 일환으로 연극 ‘이 아이’를 공연하던 도중 당시 예술위 직원들로부터 공연 방해를 받았다. ‘세월호를 연상시킨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사건은 당시 ‘팝업씨어터’ 사업을 담당했던 예술위 직원의 고발로 수면 위에 드러났다. 박근혜 정부 시절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의 대표적인 사건이다.

김 연출과 배우들이 약 4년 만에 이곳을 다시 찾은 이유는 예술위가 이들에게 직접 사과하는 자리를 마련했기 때문이다. 김 연출은 입장문을 통해 “우리는 4년 가까운 시간 동안 단 한 번도 이 사건의 가해 당사자나 기관으로부터 제대로 된 사과를 받지 못했다”며 “우리가 다시 한 번 놀라고 경악한 것은 (블랙리스트 진상조사 결과) 사실이 드러났음에도 불구하고 그들로부터 어떤 사과를 받지 못했다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어 “이번 자리가 마지막이 아니라 오늘의 이 시간을 시작으로 예술위가 상처줬던 모든 예술가들과 더욱 긴밀히 만나길 바란다”며 “그것이 오늘의 사과가 가진 무게이며 강력한 자기반성 의지라고 생각하고 각오하길 부탁드린다”고 강조했다.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와 관련해 예술위는 2017년 2월 23일과 2018년 5월 17일 두 차례 사과했다. 그러나 피해 당사자인 예술가에 대한 직접적인 사과가 아니라는 이유로 ‘반쪽짜리 사과’라는 지적을 받았다. 이날 자리는 ‘팝업씨어터’ 피해자들이 블랙리스트 진상조사 및 제도개선위원회의 진상조사 결과 발표에 따라 정확한 사실 인정과 책임 인정이 담긴 사과와 재발 방지를 위한 후속조치를 예술위에 요청해 이뤄졌다.

박종관 예술위원장은 ‘팝업씨어터’ 사태를 “공연예술계의 중심이 될 청년 예술에게 가해진 국가 폭력”이라고 규정했다. 박 위원장은 “피해자 중 아직도 이곳 씨어터카페를 마음대로 찾아오지 못하는 이도 있고 아예 연극계를 떠난 이들도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며 “젊은 예술가들이 받은 고통에 비하면 오늘 이 사과의 자리는 늦어도 너무 늦었다”고 사과했다.

19일 서울 종로구 대학로예술극장 1층 씨어터에서 열린 ‘팝업 씨어터’ 사태에 대한 공개 사과 자리에서 피해 당사자들이 사과에 대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사진=예술위).


‘팝업씨어터’ 사태 당시 사업 담당자로 공연을 취소하라는 상부의 지시를 거부했다 인사상 불이익을 받았던 예술위 직원들도 이날 현장에서 입장을 밝혔다. 대표로 입장문 발표에 나선 염한별 씨는 “‘팝업씨어터’ 사태 이후 우리는 모두 예술위를 떠났고 좋아했고 꿈꾸던 일을 포기하기도 했다”며 “우리는 예술위라는 우리가 속한 조직으로부터 상처받았음을, 부당한 권력으로부터 피해를 받았던 사람들이 이렇게나 다양하게 있었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다”고 말했다.

예술위는 지난 두 달 여 동안 ‘팝업씨어터’ 피해자 및 당시 담당 직원들과 만나 ‘팝업씨어터’ 사태에 대한 사과 및 재발 방지를 위한 약속을 공동 작성했다. 이날 발표한 사과문은 지난 8일부터 아르코·대학로예술극장, 씨어터카페, 예술가의집, 예술위 홈페이지에 게시되고 있다.

다만 이날 현장에서는 사건 당시 공연 취소를 실질적으로 지시한 ‘가해자’인 공연예술센터장, 운영총괄본부장, 문화사업부장은 참석하지 않았다. 예술위의 사과를 듣기 위해 현장을 찾은 예술가들은 가해자들을 비롯해 당시 사태에 책임이 있는 문화체육관광부 담당자가 불참한 것에 거세게 항의하기도 했다.

예술위에 따르면 이들 중 공연예술센터장은 퇴직했고 운영총괄본부장, 문화사업부장 등은 정직 및 감봉 등의 징계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박 위원장은 “가해자 및 당시 문체부 담당자 등이 함께하지 않는 자리로 폭이 좁아진 것을 죄송스럽게 생각한다”며 “추후 가해자들의 진정한 사과가 이뤄질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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