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5일 서울 종로구 계동 메리츠자산운용 본사에서 만난 존 리(사진) 메리츠운용 대표의 말투에는 자신감이 넘쳤다. 스타 펀드 매니저 출신 최고경영자(CEO)다운 여유가 느껴졌다.
리 대표는 미국 월가에서 한국 주식에 투자하는 세계 최초의 뮤추얼 펀드인 ‘더 코리아 펀드(The Korea Fund)를 운용하며 세간에 이름을 알린 인물이다. 국내에선 일명 장하성 펀드로 불리는 한국기업지배구조펀드(KCGF)를 운용하며 유명세를 떨쳤다.
잘 나가던 그가 지난해 국내 운용사 중 수익률 최하위에 머문 메리츠운용 대표로 취임한다고 했을 때 운용업계가 의아한 반응을 보인 것은 당연했다.
그가 선진화된 운용사의 모델로 삼고 있는 곳은 과거 본인이 몸담았던 스커더 스티븐스 앤드 클라크(Scudder Stevens and Clark)다. 리 사장은 스커더 소속 펀드 매니저들이 30~40년간 회사를 떠나지 않고 자리를 지켰던 점을 상기시키며 “운용사의 기본은 고객을 보스(Boss)로 모시고 하나의 철학을 가지고 꾸준한 성과를 내는 것”이라며 “구성원 모두 같은 철학과 생각을 했기에 오랜 기간 일을 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투자란 아무리 포장을 한다 하더라도 위험은 결국 똑같다”며 “이 같은 위험을 회피하는 것은 얼마나 좋은 기업을 찾기 위해 부지런히 발로 많이 뛰느냐에 달렸다”고 말했다. 리 사장의 말처럼 메리츠운용의 펀드매니저를 비롯한 대부분 직원은 외근이 잦다. 회사 경영자를 만나는 것은 물론이요, 생산공장을 둘러보거나 부품 공급업체를 만나기 위해 전 세계를 돌아다니다 보니 회사에 머물 시간이 없다.
그는 특히 한 운용사가 여러 개의 펀드를 운용하는 것이 당연시되는 국내 운용업계에서 ’메리츠코리아펀드’ 하나만을 운용하겠다고 밝혀 화제를 모으고 있다. 리 사장은 “미국을 비롯한 선진 펀드시장에선 한 운용사가 하나의 펀드를 운용하는 게 당연한 것”이라며 “메리츠코리아펀드의 성과를 통해 고객들에게 회사 성적을 제대로 평가받겠다”고 말했다. 설사 메리츠코리아펀드 성과가 부진해 고객들에게 비판을 받더라도 향후 더 나은 성과로 보답하겠다는 것. 그만큼 성과에 책임을 지겠다는 각오다.
그는 “주식과 펀드 투자에 있어 공짜 점심은 없다”며 “주식투자의 성패는 타이밍에 있는 게 아닌 어떤 주식을 선택하느냐에 있다”고 말했다. 주식을 선택한 후엔 자신이 그 회사의 동업자라고 생각하고 애정을 갖고 장기적으로 지켜봐야 한다는 견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