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日공격에 국산화 성공·공급처 다변화로 맞선 韓기업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일본 달려가 규제 해결책 모색
최태원 SK그룹 회장, 불화수소 국산화 의지 현실로
중견·중소기업들도 소부장 자체생산 노력 뒷받침
  • 등록 2020-06-30 오후 4:30:27

    수정 2020-06-30 오후 9:16:24

[이데일리 피용익 강경래 이연호 기자] 한국 기업에 대한 일본 정부의 핵심 소재 수출 제한 조치는 정확히 1년 전인 지난해 7월1일 전격 발표됐다. 일본은 수출관리규정을 개정해 △플루오린 폴리이미드 △포토레지스트 △고순도 불화수소 등 3개 품목의 한국 수출 규제를 시행했다. 삼성, SK, LG를 비롯한 한국 반도체·디스플레이 기업들은 상황을 파악하느라 분주했다. 이르면 3개월 내 국내 반도체 생산 라인이 멈출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기도 했다.

(그래픽=이데일리 김정훈 기자)


청와대는 기업인들을 긴급 소집해 대책 마련에 나섰다. 이 때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향한 곳은 청와대가 아닌 일본이었다. 이 부회장은 아버지 이건희 회장 때부터 구축한 일본 측 인맥을 총 동원해 수출 규제 문제를 풀 해결책을 모색했다. 5박6일 간의 일본 출장을 통해 삼성전자는 ‘급한 불’을 끌 수 있었다. 그러나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니었다. 이 부회장은 출장 이튿날 삼성전자 사장단을 소집해 일본의 수출 규제 장기화에 대비하라고 지시했다.

30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가 최근 발표한 ‘K칩’ 비전은 이 즈음부터 이 부회장의 머릿속에서 구체화됐다. 중소 협력사의 반도체 설비부품 개발 지원을 통해 한국 반도체 생태계를 강화하자는 구상이다. 일본에 휘둘리지 않기 위해선 소재·부품·장비(소부장) 경쟁력을 끌어올려야 한다고 판단한 것으로 해석된다.

◇ 소부장 일본 의존도 낮추는 데 성공

지난 1년 동안 소부장의 일본 의존도를 낮추기 위한 노력은 업계 전반에 걸쳐 진행됐다. 성과는 곧 나타났다. SK머티리얼즈는 최근 초고순도(순도 99.999%) 불화수소 가스 양산을 시작했다. 1년 전 일본의 수출규제 이후 반도체 소재 국산화를 강조해 온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의지가 결실을 맺은 셈이다. 반도체 회로를 새기는 과정에서 불필요한 부분을 깎아내는 공정에 사용하는 불화수소 가스는 기술 난이도가 높아 그동안 전량 해외에서 수입해 왔다.

폴더블 스마트폰 등에 쓰이는 플루오린 폴리이미드는 코오롱인더스트리가 경북 구미에 생산 설비를 갖춰 지난해부터 양산에 돌입했고, SKC도 테스트를 진행하는 등 국산화에 속도를 내고 있다. 포토레지스트의 경우 미국의 글로벌 화학사인 듀폰을 유치해 EUV용 포토레지스트 공장을 충남 천안에 건설하고 도쿄오카공업의 인천공장에서 생산량을 늘려 절반의 국산화를 이뤄냈다.

중견·중소기업 역시 후방에서 지원에 나섰다. 솔브레인은 올해 초 충남 공주에 액체 불화수소 공장을 완공했다. 램테크놀러지는 내년 완공을 목표로 액체 불화수소 공장 증설을 진행 중이다. 솔브레인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000660)에 액체 불화수소를 공급한다. 램테크놀러지는 SK하이닉스와 협력 중이다.

포토레지스트 분야에서는 동진쎄미켐이 두각을 보이고 있다. 이미 불화크립톤(KrF) 감광액을 상용화한 동진쎄미켐은 추가로 불화아르곤(ArF) 감광액 역시 최근 업계에 공급하기 시작했다. 동진쎄미켐은 불화아르곤에 이어 EUV 공정에 적용할 수 있는 감광액 개발도 진행 중이다. 이종호 서울대 반도체공동연구소장은 “일본의 주요 규제 품목 중 기체 불화수소는 일본 수준을 많이 따라잡았다. 다른 품목도 1년 사이에 되진 않겠지만 상당한 진전이 있지 않았을까 생각한다”며 “앞으로 기초기술, 핵심기술을 튼튼히 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 단기간에 일본 경쟁력 따라잡기엔 한계

이 같은 성과에 힘입어 소부장 분야의 대일 의존도는 눈에 띄게 낮아졌다. 한국무역협회가 발표한 ‘일본 수출규제 1년, 규제품목 수입동향과 대일 의존형 비민감 전략물자 점검’ 보고서에 따르면 불화수소와 포토레지스트의 대일 수입 의존도는 1년 간 각각 33%포인트(p)와 6%p 하락했고, 벨기에와 대만 등으로 수입처가 다변화된 것으로 조사됐다.

홍지상 무역협회 연구위원은 “국내 기업의 기술력이 많이 올라왔고 국산화 제품에 대한 테스팅 과정을 거치면서 품질을 맞춰가는 과정에 있다”며 “시간이 문제이지 좋은 흐름으로 가고 있다”고 평가했다.

물론 단기간에 소부장 경쟁력을 일본 수준으로 끌어 올리는 것은 한계가 있다. 전국경제인연합회가 모노리서치에 의뢰해 일본과의 거래가 있는 한국 기업 149개사를 대상으로 실시한 ‘일본 수출규제 1년, 소부장 경쟁력 변화’ 설문조사에서 한국의 기업들의 소부장 경쟁력은 1년 전보다 소폭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전경련에 따르면 지난해 7월 일본의 소부장 경쟁력을 100으로 가정했을 때 한국 소부장 경쟁력은 지난해 7월 89.6에서 올해 6월 91.6으로 높아졌다.

그러나 이는 한국의 소부장 경쟁력이 여전히 일본의 90% 안팎 수준에 머물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실제로 지난 1~5월 기준 불화수소의 일본 수입 비중은 전년 44%에서 12%로 하락했지만, 포토레지스트와 플루오린 폴리이미드는 오히려 일본으로부터 수입액이 늘었다. 김봉만 전경련 국제협력실 실장은 “소부장 경쟁력 강화를 위한 민관의 꾸준한 노력과 함께 양국 정부도 수출 규제 해소를 위해 적극 노력해 주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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