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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들은 김 대법원장 취임 후 정치적 독립성과 중립성이 크게 훼손되면서 사법부의 신뢰가 무너졌다며 법치 회복을 통해 개혁의 동력을 회복하지 않으면 사법개혁은 계속 지지부진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한다.
법원 절대 다수 찬성 개혁법안마저 본회의서 좌초
“충격을 받았다.”
지난달 31일 국회 본회의에서 법원조직법 개정안이 부결되자 과거 법원행정처에서 근무했던 한 부장판사는 이렇게 말했다. 그는 “주관이 다양한 판사들이지만 개정안에 대해선 대부분이 찬성했다. 그만큼 법원 내부에선 판사 인력난에 대한 우려가 큰 상황”이라며 “가장 기본적인 개혁안마저 국회를 통과하지 못했다면 다른 개혁안의 미래도 불 보듯 뻔하다”고 고개를 저었다.
실제 대법원은 내년부터 신규 인력 확보의 어려움으로 올해 3115명인 판사 수가 2029년엔 2919명까지 하락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이 때문에 판사들의 업무량은 폭주하고 있다. 2019년 기준으로 국내 판사 1인당 사건수는 464.07건으로 독일(89.63건)·일본(151.79건)·프랑스(196.52건)에 비해 2.3~5.2배에 달한다. 그러나 국회 법제사법위원회까지 통과한 법안조직법 개정안이 끝내 본회의 문턱을 넘지 못함에 따라 판사 수 감소는 현실화될 것으로 보인다.
다른 개혁안들에 대한 논의도 지지부진한 상황이다. 대표적인 예가 대법원 상고심(3심) 개편 논의다.
현재 대법원장과 법원행정처장직을 겸임하고 있는 대법관을 제외한 12명의 대법관은 1인당 연간 4000건 이상을 처리하고 있다. 주말 포함 하루 평균 11건 가까운 사건을 맡고 있는 셈이다. 이 같은 대법관의 과도한 업무량은 최고법원이자 법률심인 대법원 본연의 역할을 제약하는 요인이 된다. 이 때문에 법조계 내부에선 대법관 1인당 사건 수를 대폭 줄이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하지만 여전히 △상고 허가제 △서울고법 상고부 설치 △대법관 증원 등 여러 대안중 어느 하나 구체화되지 못하고 있다. 김 대법원장은 올해도 신년사에서 상고심 개선 방안 마련을 공언했지만 관련 논의는 4년째 제자리걸음이다.
고위법관 출신 한 인사는 “문제를 심각하게 보는 법원 내부와 달리, 정치권에선 ‘어쨌든 재판이 돌아가고 있다’는 이유로 문제의식이 크지 않은 것 같다”며 “이럴 때일수록 법원이 중심을 잡아줘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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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조계는 지난 4년간의 사법개편 논의가 진척이 없는 가장 큰 이유를 신뢰 잃은 김명수 대법원장의 리더십에서 찾는다. 코드인사, 도덕성과 자질 논란 등으로 정치적 중립성과 독립성이 크게 훼손되면서 법원 안팎의 불신이 깊어지면서 관련 법을 제도화하기 위한 정치적 동력을 상실했다는 얘기다. 지난 6월 국민의힘이 ‘법치(法治)의 몰락-김명수 대법원장 1352일간의 기록’이라는 이름으로 공개한 김 대법원장 비리 백서는 단적인 예다.
특히 우리법연구회, 인권법연구회 등 특정성향을 우대하는 코드인사, 원칙 없는 인사는 법원 안팎의 불신을 초래한 결정적인 요인이다. 정권 비리 사건 재판에서 편향 논란을 일으킨 김미리 부장판사가 대표적이다. 그는 통상 3년이면 근무지를 옮기는 법관 인사 관례를 깨고 서울중앙지법에서 4년째 근무했다. 통상 2년인 재판부 변경 시기도 지켜지지 않았다. 그는 결국 지난 4월 개인적 사정을 이유로 휴직을 하면서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재판부였던 형사합의21부 재판장에서 물러났다.
지난 2월 김 대법원장 사퇴 촉구 성명에 동참했던 김현 전 대한변호사협회장은 “김 대법원장은 사법부의 신뢰를 바닥에 떨어뜨리고 역대 가장 저조한 업적을 남긴 대법원장으로 기억될 것”이라며 “사법개혁의 성과를 내기 위해선 김 대법원장에 대한 신뢰 회복이 먼저”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