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작가의 문장, 배우 몸짓이 되다…연극 '휴먼 푸가'

5·18 다룬 소설 '소년이 온다' 무대화
배우 퍼포먼스로 구성 "몸의 감각 초점"
"반복·변주되는 광주 아픔이 곧 '푸가'"
내년 폴란드와 공연 교류…17일까지
  • 등록 2019-11-06 오후 4:30:41

    수정 2019-11-06 오후 4:30:41

연극 ‘휴먼 푸가’의 한 장면(사진=남산예술센터).


[이데일리 장병호 기자] “인간은 무엇인가. 인간이 무엇이지 않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6일 서울 중구 남산예술센터에서 개막하는 연극 ‘휴먼 푸가’의 한 장면. 작가 한강의 장편소설 ‘소년이 온다’ 속 문장 한 구절을 배우가 절규하듯 외친다. 밀가루를 잔뜩 뒤집어 쓴 또 다른 배우는 의자를 들어 벽을 치는가 하면, 한 배우는 카세트테이프를 높이 세웠다 무너뜨리기를 반복한다.

기승전결이 뚜렷한 스토리를 기대했다면 배우들이 2시간 가까이 제각각 펼치는 퍼포먼스가 당황스러울 수 있다. 개막을 하루 앞두고 열린 전막 시연회에서 기자들과 만난 배요섭 연출은 “작품을 준비하면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배우들이 지닌 ‘몸의 감각’이었다”며 독특한 연출 스타일을 취한 이유를 설명했다.

‘휴먼 푸가’는 한강 작가가 2014년 출간한 ‘소년이 온다’를 국내에서 첫 무대화한 연극이다. 원작은 1980년 5월 광주에서 계엄군의 총에 맞아 죽은 15세 소년 동호와 동호를 둘러싼 사람들의 이야기를 옴니버스 형식으로 구성했다. 5·18민주화운동 이후 살아남은 사람들의 아픔을 한강 작가 특유의 필체로 담아내 2017년 이탈리아 말라파르테 문학상을 수상했다.

연극은 원작의 문장들을 배우들의 대사로 그대로 활용한다. 극의 구성과 흐름 또한 원작을 차용하고 있다. 배요섭 연출은 “원래는 원작의 텍스트를 신뢰하지 않는 편이지만 ‘휴먼 푸가’만큼은 한강 작가가 쓴 글자 하나하나가 전하는 감각을 그대로 살리는 것이 중요했다”며 “배우들에게도 원작의 문장을 바꾸지 말고 연기할 것을 요구했다”고 말했다.

연극 ‘휴먼 푸가’의 한 장면(사진=남산예술센터).


1980년 광주의 아픔을 몸의 감각으로 체현하기 위해 배요섭 연출과 배우들은 올해 초부터 여러 차례 광주를 찾았다. 5·18을 직접 겪었던 사람들의 증언을 들었고, 지금은 폐허가 된 옛 국군 광주통합병원 등 사건의 상처가 남겨져 있는 현장을 찾아갔다.

한강 작가와도 직접 만나 대화를 나눴다. 배요섭 연출은 “작가님이 제일 크게 걱정한 것은 소설 속 동호라는 인물이 구체화돼 연극에 등장하는 것이었다”며 “우리도 그런 방식으로 소설을 무대화할 생각이 없었기에 서로 믿음을 갖고 작업을 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무대 구성도 독특하다. 관객은 남산예술센터가 지닌 350여 석의 좌석에 앉을 수 없다. 이곳은 배우들이 천, 유리병, 종이 등 각종 오브제를 전시하고 퍼포먼스를 선보이는 공간으로 쓰인다. 그 대신 관객은 무대 양옆에 따로 설치된 의자에 앉아 배우들의 퍼포먼스를 서로 마주 본다. 객석 수도 100여 석으로 많은 관객이 관람하기에 한계가 있다. 배요섭 연출은 “배우들이 광주에서 체험하고 겪었던 것을 관객이 보다 더 가깝게 느끼게 하고 싶었다”고 무대 구성 이유를 밝혔다.

제목인 푸가(fuga)는 독립된 멜로디가 반복되고 교차되면서 증폭되는 클래식음악의 한 형식이다. 공연에서 배우들은 푸가처럼 각자 같은 행동을 반복하며 광주의 아픔을 극대화해 표현한다. 배요섭 연출은 “처음 소설을 읽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이 ‘푸가’였다”며 “1980년 광주를 겪은 사람들의 아픔은 푸가처럼 반복되고 변주되고 있다는 생각으로 제목을 정했다”고 설명했다.

‘소년이 온다’는 지난 6월 폴란드 스타리 국립극장에서 ‘더 보이 이즈 커밍’이라는 제목으로 먼저 무대화됐다. 유럽에서 현지 연극인에 의해 처음으로 5·18민주화운동을 소재로 한 공연이 무대에 오른 것이다. 남산예술센터는 내년 5·18민주화운동 40주년을 맞아 ‘휴먼 푸가’와 ‘더 보이 이즈 커밍’의 공연 교류를 계획 중이다. ‘휴먼 푸가’는 오는 17일까지 공연한다.

연극 ‘휴먼 푸가’의 한 장면(사진=남산예술센터).
연극 ‘휴먼 푸가’의 한 장면(사진=남산예술센터).
연극 ‘휴먼 푸가’의 한 장면(사진=남산예술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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