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조용한 퇴장' 문무일 검찰총장의 마지막 당부 '민주주의'

24일 비공개 퇴임식 전 '따나면서 드리는 말씀' 소회 전해
국민 기본권 침해 최소화, 절제된 검찰권 행사 당부
"'열심히' 보다 검찰권 '바르게' 행사해야"
  • 등록 2019-07-23 오후 4:13:06

    수정 2019-07-23 오후 4:13:06

문무일(오른쪽) 검찰총장이 23일 오전 퇴임 인사차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을 방문해 민갑룡 경찰청장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데일리 이성기 기자] 별도의 퇴임식 없이 물러나는 문무일(58·사법연수원 18기) 검찰총장이 퇴임을 하루 앞둔 23일 검찰 내부 통신망인 ‘이프로스’에 글을 올렸다. 정식 퇴임사가 아니라 검찰 구성원에게 ‘떠나면서 드리는 말씀’이었다.

검찰에 따르면 문 총장은 24일 오전 11시 대검찰청 8층 회의실에서 검찰연구관 및 사무관 이상 직원들만 참석한 채 간단한 소회를 밝히는 것으로 퇴임식을 갈음한다. 비공개로 영상 촬영도 하지 않는 등 약식으로 진행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걸리는 시간은 10~15분에 지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윤석열 차기 총장(59·23기)이 25일 임기를 시작하는 만큼 후배를 위해 조용히 마무리 하겠다는 문 총장의 의지가 반영됐다는 게 대검 측 설명이다.

취임 당시 ‘권위주의와의 단절’을 내세웠던 문 총장은 임기를 마치면서는 ‘민주주의’를 강조했다.

문 총장은 “젊은 시절부터 우리나라에서 민주주의를 어떻게 이룰 것인지를 삶의 중심으로 삼고, 검사로서 구체적으로 어떻게 실천할 것인지 늘 고민했다”고 돌이켰다. 이어 “민주주의는 시민의 힘으로 쟁취하고 되찾아 오지만, 민주주의의 운영은 우리 같은 공무원이 함께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공사 간 매사를 삼가며 공직생활을 하기 위해 노력했다”고 말했다.

문 총장은 특히 “권력기관은 법치라는 이름으로 민주주의를 운영하기도 하고 국민의 기본권을 보호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심하게 손상시켜 민주주의를 회복시키기 위해 주권자를 역사의 현장에 나오지 않을 수 없게 하기도 한다”고 지적했다.

문 총장은 “취임 직후부터 민주주의의 운영에 관해 검찰의 역할이 미흡하였던 점을 여러 번 사과드렸고, 자체적으로 개혁이 가능한 부분은 우선 개혁하는 한편 필요한 법개정을 건의했다”면서도 “마칠 때가 되어 되돌아보니 부족한 점이 많았다는 지적을 피할 수 없게 돼 안타깝고 송구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후배들을 향해 국민의 기본권 침해 최소화와 절제된 검찰권 행사도 주문했다.

문 총장은 “‘열심히’ 하는 데 너무 집중하느라 국민들이 검찰에 기대하는 것만큼 검찰권능을 ‘바르게’ 행사하지 못한 것은 아닌지 살펴 볼 필요도 있다”며 “10년 후 아니 5년 후에는 이러한 말이 추억거리처럼 과거의 일이 되기를 희망한다”고 글을 맺었다.

앞서 오전에는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을 방문, 민갑룡 경찰청장을 만나 약 30분간 환담을 나눴다. 퇴임 직전 검찰총장이 경찰청장을 만나기 위해 경찰청을 방문한 것은 처음이다.

문 총장은 “경찰이나 검찰이나 국민 안전과 생명과 재산을 보호 하는 게 첫 번째 임무”라며 “그런 임무를 서로 힘을 합쳐 잘 완수하길 바라는 마음”이라고 말했다.

다음은 ‘떠나면서 드리는 말씀’ 전문이다.

사랑하고 존경하는 검찰 구성원 여러분,

무엇보다 먼저 어려운 시기에 묵묵히 맡은 소임에 정성을 다하여 헌신하여 준 여러분께 고맙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검찰의 많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검찰을 신뢰할 수 있는 때가 오기를 기다리는 국민의 바람이 여전하기만 합니다.

검찰에 대한 불신이 쌓여 온 과정을 되살펴보아 우리 스스로 자신부터 그러한 과오가 되풀이 되지 않도록 경계하여야겠습니다.

저는 젊은 시절부터 우리나라에서 민주주의를 어떻게 이룰 것인지를 제 삶의 중심으로 삼고, 검사로서 구체적으로 어떻게 실천할 것인지 늘 고민해 오면서, 민주주의는 시민의 힘으로 쟁취하고 되찾아 오지만, 민주주의의 운영은 우리 같은 공무원이 함께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공사간 매사를 삼가며 공직생활을 하기 위해 노력하였습니다.

특히 권력기관이라고 지칭되는 기관은, 법치라는 이름으로 민주주의를 운영하기도 하고 국민의 기본권을 보호하기도 하지만, 민주주의를 손상시키기도 하며, 때로는 심하게 손상시켜 민주주의를 회복시키기 위해 주권자를 역사의 현장에 나오지 않을 수 없게 하기도 합니다.

검찰은 이러한 역사적 변환과 공과를 늘 함께 하여 왔고 저는 이러한 과정을 목격하면서 민주주의와 검찰의 관계를 더욱 깊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검찰이 민주주의를 염두에 두어야 하는 첫 번째 이유는, 검찰 탄생의 시대 배경이 프랑스 대혁명이며, 그 지향하는 가치는 국민의 기본권 보호이고, 탄생의 원리는 형사사법 분야에서 국가적 권능의 분리, 분산과 통제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이유로, 헌법에 규정된 국민 기본권을 더욱 철저히 보장하기 위하여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세세한 절차를 형사소송법으로 정하였으며, 그 운영의 중요한 한 축이 검찰이기 때문입니다.

형사소송법은 ‘국민 기본권을 침해하는 절차법’이라는 인식을 갖고, 형사소송법이 정한 절차에 따른 국가적 권능을 우리에게 부여된 권력으로 여기는 우를 범하여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형사소송법이 정한 여러 절차를 지키는 것은 국민의 기본권 침해를 최소화 하여야 하는 우리의 의무이자 책무이며, 그 절차에 대한 통제 해제나 용이한 적용은 엄격히 절제하여야 합니다.

국가적 권능을 행사하려면 그 권능을 행사하는 동안에는 끊임없이 통제를 받아야 하고 권능 행사가 종료되면 책임을 추궁받을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부터 통제받지 않는 권능을 행사하여 왔던 것은 아닌지, 행사하려고 하는 것은 아닌지 늘 성찰하여야 합니다.

거악 척결, 자유민주주의 수호 등의 가치도 매우 중요하고 우리가 한시도 소홀히 하여서는 안 되는 가치입니다만, 독재시대, 권위적 민주주의 시대를 거쳐 수평적이고 보편적인 민주주의 시대가 된 이 시기에 더 중요한 것은 법치라는 가치, 형사사법에서의 민주적 원칙과 절차의 준수입니다.

저는 취임한 직후부터 민주주의의 운영에 관하여 검찰의 역할이 미흡하였던 점을 여러 번 사과드렸고, 자체적으로 개혁이 가능한 부분은 우선 개혁하는 한편 필요한 법개정을 건의하였습니다.

저는 제가 할 수 있는 한, 비난과 비판을 감수하고라도 내외부적 제도 개혁을 다 끝내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마칠 때가 되어 되돌아보니 과정과 내용에서 국민들께서 보시기에 부족한 점이 많았다는 지적을 피할 수 없게 되었고 이러한 상황을 참으로 안타깝고 송구스럽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저는 검찰 구성원 여러분의 자부심과 자제력, 국민에 대한 책임감과 충성심을 믿고 있습니다.

나아가, 현재 우리나라에 시행되고 있는 형사소송절차에 혹시라도 군국주의적 식민시대적 잔재가 남아 있는지 잘 살펴서 이러한 유제를 청산하는 데에도 앞장서 나서주기를 당부드립니다.

또 세세하게는 우리가 ‘열심히’ 하는 데 너무 집중하느라 국민들께서 검찰에 기대하는 것만큼 검찰권능을 ‘바르게’ 행사하지 못한 것은 아닌지 살펴 볼 필요도 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10년 후 아니 5년 후에는 제가 드린 이러한 말이 추억거리처럼 과거의 일이 되기를 희망합니다.

다시 한 번 국가와 국민을 위한 소명의식으로 열정을 가지고 헌신하여 준 검찰 구성원 여러분께 감사의 말씀을 드리며, 어려운 가운데에도 이를 뒷받침하여 주신 가족분들께도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여러분 모두의 건승을 기원합니다.

감사하였습니다.

2019. 7. 24. 문무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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