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순 시인 "동양인 여성 수상 예상못해…'현실 아니다' 생각했죠"

아시아인 여성 최초 수상
'죽음의 자서전'은 산 자의 죽음에 관한 것
"당면문제 속에서 사유하며 시 쓸 것"
  • 등록 2019-06-25 오후 4:44:23

    수정 2019-06-25 오후 7:17:34

김혜순 시인이 25일 서울 중구 달개비에서 열린 ‘그리핀 시 문학상’ 수상기념 기자간담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사진=문학과지성사).


[이데일리 이윤정 기자] “시상식장에 번역자와 저만 아시아인이었어요. 수상자로 제 이름을 불렀을 때 너무 놀라서 ‘현실이 아닌가보다’ 생각했어요.”

아시아인 여성 최초로 캐나다의 권위 있는 문학상인 ‘그리핀 시 문학상(Griffin Poetry Prize)’을 수상한 김혜순(64) 시인이 벅찬 수상소감을 밝혔다. 김 시인은 25일 서울 중구 달개비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문학상 파이널리스트가 시상식장에 도착하면 무조건 1만불을 준다고 해서 캐나다에 갔다”며 “수상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고, 번역자도 ‘우리는 동양인에다 여자라서 절대 상 못받는다’고 축제나 즐기자고 했었다”고 당시의 상황을 전했다.

김 시인은 2016년 출간한 ‘죽음의 자서전’으로 인터내셔널 부문에서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세월호 참사와 계속되는 사회적 죽음들에 대한 49편의 시를 수록한 시집이다. 김 시인은 “‘죽음의 자서전’은 죽은자의 자서전이 아니라 산 자의 죽음에 관한 자서전”이라며 “심사위원들도 죽음과 같은 순간에 처했을 때가 있었을테니 시적 감수성이 그들의 감수성에도 닿지 않았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죽은 이를 위한 ‘49재’를 염두에 두고 일부러 49편을 담았다고 한다. 최근 어머니의 상을 치른 김 시인은 “‘저녁 메뉴’라는 시에 엄마라는 단어가 많이 나와서 가장 아프게 기억되는 시”라고 전하기도 했다.

‘그리핀 시 문학상’은 캐나다의 그리핀 트러스트가 주관하는 국제적인 시 문학상이다. 번역 시집을 포함해 전년도에 영어로 출간된 시집을 대상으로, 매년 캐나다와 인터내셔널 부문 각 한 명의 시인을 선정해 시상한다. 상금은 각 6만5000달러(한화 약 5천750만원)다. 노벨문학상 수상 가능성이 거론된 고은 시인이 2008년 공로상을 받은 적은 있지만, 본상 수상은 김 시인이 처음이다.

그는 현존하는 한국 현대 여성 시인 중 가장 많은 언어로 번역되고 소개된 시인이기도 하다. ‘슬픔치약 거울크림’ 영문판 시집은 2019년 ‘펜 아메리카 문학상’ 번역 시 부문 최종 후보에 올랐고, ‘죽음의 자서전’의 영문판은 2019년 미국 최우수번역도서상 최종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문학계에서 ‘아시아권 시인으로는 노벨문학상에 가장 근접한 시인’으로 평가하는 의견에 대해 김 시인은 “그런 이야기는 제발 하지 말아달라”며 “시인과 소설가들에게 그만 쓰라고 하는 말과 같다”고 손사래를 쳤다.

이번 상은 시집을 영문으로 번역한 최돈미 번역자와 김 시인이 공동 수상했다. 번역 작품의 경우 상금은 원작 작가(40%)와 번역 작가(60%)가 각각 나눠서 받는다. 2000년대 초반 최 씨가 먼저 찾아와 시인의 시를 번역하고 싶다고 요청하면서 인연이 시작됐다고 한다. 김 시인은 “문장의 주어가 무엇인지부터 사소한 개인사까지도 서로 소통하며 작업을 했다”며 “영어로 번역된 시집에 주는 상이기 때문에 번역자에게 더 많은 상금을 주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고 공을 돌렸다.

1979년 등단한 김 시인은 40여년 간 여성 시인으로서 활발한 작품활동을 펼쳐왔다. 그간 ‘또 다른 별에서’ ‘당신의 첫’ ‘날개 환상통’ 등 13권의 시집을 펴냈다. 김수영문학상, 현대시작품상, 대산문학상 등을 수상한 바 있다. 오는 7월에는 신작 산문 ‘여자짐승아시아하기’도 출간할 예정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자신들이 아시아인이라는 것, 짐승이라는 것, 결국엔 여성이라는 것을 제일 모르는 것 같다. ‘페미니즘’이 시와 만나면 어떤 모습일까 하는 생각에서 ‘여자짐승아시아하기’를 쓰게 됐다. 옛날에 쓴 건 굳이 다시 들춰보지 않고 시간 속에 파묻고 지나간다. 당면한 한국 사회의 문제들 속에서 사유하며 그렇게 시를 써나가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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