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골판지 원지 ‘부족 사태’에 골판지 상자 생산 차질이 확대되고 있다. 골판지 원지를 만드는데 들어가는 폐지 물량이 급감한데다 이달에 원지 생산 공장에 화재까지 겹치면서 원지 생산량이 크게 줄어든 탓이다. 문제는 코로나19발(發) 비대면 소비 확산으로 골판지 상자 사용이 급증한 가운데 생산 차질이 장기화하면 결국 골판지 상자 품귀로 이어질 수 있다. 이 경우 골판지 상자 주 사용처인 택배 업계와 수출 업계로 ‘도미노 가격 인상’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골판지 제조업체, 원료 수급 5분의 1로 줄어
22일 한국골판지포장산업협동조합에 따르면 골판지 상자 제조업체들은 이날 현재 이전 대비 3분의 1에서 5분의 1 정도 밖에 골판지 원지를 공급받지 못하고 있다. 김진만 조합 전무이사는 “가뜩이나 골판지 원지를 만드는 데 들어가는 폐지 수입량이 줄어들어 원지 생산 감소 압박이 예상되던 차였다”며 “이런 상황에서 지난 12일 원지 생산 업체인 대양제지 공장 화재까지 겹치면서 생산량 감소가 심화됐다”고 말했다.
골판지 산업은 ‘폐지→골판지 원지(이면지·표면지·골심지 등 낱장)생산→골판지 원단 가공→상자 제조→납품’으로 이어진다. 업체들은 최초 폐지를 납품하는 ‘폐지업계’, 골판지 원지를 만드는 ‘생산업계’, 원지를 가지고 골판지와 상자를 제조하는 ‘포장업계’ 등 크게 3개로 나뉜다. 포장업계는 생산 업체가 생산하는 원지를 받아 골판지나 택배박스 등 완제품을 생산한다.
여기에 골판지 원지를 만드는 데 쓰이는 폐지 수입량도 줄어들어 전체적인 생산량 감소를 가속화하고 있다. 환경부는 올해 7월부터 “이물질 등에 오염된 폐지가 국내에 반입돼 환경오염을 일으킬 수 있다”며 폐지 수입 신고제를 시행했다. 통관 절차가 까다로워지면서 폐지 수입량은 지난 6월 4만 8000t에서 7월 3만 1500t으로 한 달 새 1만 6500t(34%)이나 급감했다.
문제는 폐지 수입 감소와 골판지 원지 생산 공장 화재로 국내의 전체 원지 생산량이 줄어든 상황에서 수요만 여전하면 가격 인상의 트리거(방아쇠)로 작동하게 된다는 점이다. 실제로 국내 골판지 원지 생산량 ‘빅7’ 업체 가운데 태림페이퍼와 고려제지, 아진피엔피 3곳은 골판지 포장업체들에 20% 안팎의 원지 가격 인상 방안을 통보했다.
태림페이퍼는 지난 16일 골판지 상자 겉면에 쓰이는 표면지(SK지)를 톤(t)당 45만원에서 53만원으로 올렸다. 골판지 상자 안쪽면에 쓰이는 이면지(K지)도 35만원에서 43만원으로 인상했다. 같은 날 고려제지도 이전보다 가격을 25% 안팎으로 올렸다. 아진피엔피 역시 19일부터 K지를 35만원에서 43만원으로, 골판지 상자 중간에 쓰이는 구불구불한 골심지(S지)를 36만원에서 44만원으로 인상했다.
골판지 원지 생산업체 줄줄이 가격 인상
이들 3곳을 제외한 나머지 신대양제지와 아세아제지, 한국수출포장 등도 원지 가격 인상에 나서려는 분위기라는 게 골판지 포장업계의 목소리다. 이들 ‘빅7’ 업체들은 국내 골판지 원지 생산량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어 원지 가격 인상은 완제품인 택배박스 인상까지 연쇄적으로 이어질 개연성이 높다.
골판지 포장업계 관계자는 “골판지 상자를 만드는데 들어가는 비용 중 원지 가격이 차지하는 비중이 60% 정도”라며 “원지 가격이 25% 인상되면, 택배박스는 기존보다 12~15% 정도 오르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특히 지금처럼 골판지 상자 수요는 꾸준한데 원지 공급 물량은 못 따라줄수록 가격 인상은 불가피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업계에서는 골판지와 골판지 상자 등의 연쇄적 가격 인상을 막기 위해 골판지 원지 업체에 가급적 수출을 줄여 내수 물량을 늘려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또 골판지 상자 제조업체에도 원지 사재기를 자제해 줄 것을 당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