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도 어느 시골 마을의 단관극장 레인보우 시네마. 아버지 조병식(김재건 분)에 이어 극장을 지켜온 조한수(박윤희 분)가 폐관을 얼마 안 남겨둔 극장을 둘러보며 말한다. 바스라질 것 같은 오래된 영화 포스터, 벽마다 깊이 밴 퀘퀘한 냄새. 40여 년 세월을 품은 낡디 낡은 극장을 바라보는 그의 표정이 아련하다.
시간과 공간이 바뀌어도 그곳에 자리한 추억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아픈 기억이라면 더욱 그렇다. 지난 23일부터 서울 종로구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에서 공연 중인 연극 ‘넓은 하늘의 무지개를 보면 내 마음은 춤춘다’는 폐관을 앞둔 극장을 무대로 사라져가는 공간과 잊을 수 없는 기억에 대한 이야기를 무대 위에 풀어낸다.
|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에서 출발하는 극은 이들이 지닌 마음 속 상처와 결핍을 찬찬히 조명한다. 그 중심에는 병식·한수·원우 3대가 있다. 겉보기에 단란한 이들 3대에게는 절대 언급해서는 안 되는 과거의 사건이 있다. 세 사람의 마음에 깊은 상처를 남긴 사건을 병식과 한수는 애써 숨기려 하지만 원우는 끊임없이 이를 끄집어내려고 한다. 여기에 성소수자, 치매, 왕따 등 사회적인 문제까지 극 속에 녹아들어 관객의 궁금증을 자아낸다.
시종일관 유쾌함과 따스함을 잃지 않는 작품이다. 그러나 3대가 감춘 과거의 사건과 함께 인물들의 비밀이 드러나는 극 후반부는 묵직하다. 특히 폐관 직전 폭풍우가 찾아온 극장에서 펼쳐지는 극 후반부는 3대를 연기하는 배우 김재건, 박윤희, 박완규의 열연이 빛난다. 웃음이 끊이지 않던 객석에서도 이 순간만큼은 숙연한 분위기 속에 곳곳에서 눈물을 글썽이는 소리가 들린다.
제목은 영국 시인 윌리엄 워즈워스의 시이자 영화 ‘초원의 빛’에 등장하는 대사에서 따왔다. 공연을 보기 전까지 좀처럼 외워지지 않던 긴 제목은 극장 밖을 나설 때 상처와 결핍을 이겨내자는 강한 응원처럼 입에 착 달라 붙었다. 연극 ‘야끼니꾸 드래곤’으로 국내에도 잘 알려진 재일교포 극작가 정의신의 희곡을 구태환 연출이 무대화했다. ‘제41회 서울연극제’ 공식 초청작으로 오는 30일까지 공연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