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이젠 수도권 인재를 우대해야 할 판입니다"

공공기관 지방 이전 후 인력 확보 어려움
정주 여건 및 인프라 상대적으로 취약
퇴사 결심하는 직원들…"연고 없는데 일만"
  • 등록 2022-05-16 오후 3:39:57

    수정 2022-05-16 오후 9:05:26

[세종=이데일리 임애신 기자] “지방으로 내려온 후 인재를 채용하는 게 너무나도 힘듭니다. 지금은 수도권 인재를 우대하는 정책이 필요합니다.”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수도권에 있다가 지방으로 내려간 공공기관들의 공통된 호소다. 사정을 들여다 보면 괜한 볼멘소리가 아니다.

(사진=이미지투데이)


정부는 2014년 ‘지방대학 및 지역균형인재 육성에 관한 법률’에 따라 공공기관의 지역인재 채용을 권고했다. 2018년부터는 개정된 ‘혁신도시 조성 및 발전에 관한 특별법’에 따라 지역 인재 채용을 의무화했다. 올해 기준으로 채용 인원의 30%를 지역 출신으로 뽑아야 한다. 이는 수도권 쏠림 현상을 완화해 지역의 균형 발전을 도모하고 지방대학의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한 목적이다.

그러나 공공기관이 지방으로 이전한 후 이 제도의 취지가 무색해졌다. 인재 확보와 인력의 안정적 운용은 기관의 경쟁력으로 직결되는 중요한 사안인데, 인력 확보에서부터 삐걱거려서다. 충청권으로 이전한 한 공공기관 관계자는 “본사가 수도권에 있었을 때와 달리 지방으로 내려가니 수도권 지역 인재를 우대해야 하는 상황”이라며 “전국 우수 인재들이 ‘인서울’ 대학에 모이는데 수도권에 있는 인력은 지방으로 오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토로했다.

지방은 수도권에 비해 정주 여건이 상대적으로 취약할 수밖에 없다. 해양수산부 산하 A 공공기관이 이전한 지역은 선호도가 높은 브랜드 아파트를 비롯해 백화점, 대형서점, 공연장 등을 찾아볼 수 없다. 상황이 이렇자 인프라가 갖춰진 곳에 살기 위해 왕복 120킬로미터나 되는 출퇴근을 감수하는 직원도 있다. 스타벅스가 아예 없으니 `스세권(스타벅스 생활권)`도 기대할 수 없다. 평소 스타벅스 커피를 좋아하는 장관이 이 공공기관을 방문하는 날, 미리 수십 킬로미터를 달려 커피를 사 온 후 장관이 도착한 때에 맞춰서 데워서 줬다는 웃기지만 슬픈 에피소드가 전설처럼 전해진다.

이 기관 고위 관계자는 “이렇게까지 정주 여건이 좋지 않을 것이라곤 상상도 못 했다”며 “퇴사하는 직원들을 마냥 탓할 수만은 없는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기러기 아빠·엄마도 속출하고 있다. 자녀 학업을 이유로 가족은 서울에 살고 공공기관 직원만 지방에 내려올 수밖에 없어서다.

(사진=이미지투데이)


바늘구멍 같은 취업 경쟁을 뚫고 입사한 후 얼마 버티지 못하고 나가는 신입 직원들도 속출한다. 한국에너지공단에 입사했다가 퇴사한 이민준(가명) 씨는 “울산은 대도시이지만 수 십년을 연고도 없는 곳에서 지인들도 못 만나고 살아야 한다니 우울증이 왔다”며 “혼자 끙끙 앓다가 돈을 버는 것도 좋지만 삶의 균형을 맞추는 게 더 중요하다고 판단해 그만뒀다”고 했다. 수도권으로 돌아가는 직원들을 비난할 수는 없다. 한국전력 관계자는 “신입 직원들은 본인이 일하게 될 기관이 지방에 있는 것을 알고 지원하지만, 실제 살아보면 현실은 다르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며 “출근 사흘 만에 그만둔 경우도 있었다”고 귀띔했다

정년 보장과 고연봉, 사회적 인정, 알찬 복리후생 등으로 신(神)의 직장이라 불리던 공공기관이지만, 지방 이전 취지를 살리기 위해선 전국 인재가 지방으로 삶의 터전을 옮기는 것을 독려하기 위한 분명한 당근이 필요하단 지적이다. 산업통상자원부 산하 한 공공기관 인사담당자는 “지방으로 이전한 후 그 지역 출신이 많이 채용된다”며 “블라인드 방식으로 채용하지만 그 지역 지원자 자체가 많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블라인드 채용과 지역인재 우대 정책이 상충한다는 지적도 끊이지 않는다. 당초 지역인재 할당제는 서울 대학 선호를 완화하기 위해 도입됐는데, 출신지·대학 등을 적지 않고 실력으로만 뽑는 블라인드 채용 취지에 어긋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지역 인재 기준을 출신대학에 국한하는 것도 문제다. 지역에서 자란 후 서울에서 대학을 나와 다시 해당 지역에 정착을 하고 싶어도 대학만을 기준으로 보기 때문에 기회가 박탈되는 부작용이 생겨서다.

이런 상황에서 야당은 지역인재 할당 비율을 50%까지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비율을 높이기 전에 현장 목소리를 반영한 중간 점검이 요구된다. 또 공공기관과 국가 발전을 위해 과감하게 채용 기준에도 변화를 줄 용기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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