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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2014년 ‘지방대학 및 지역균형인재 육성에 관한 법률’에 따라 공공기관의 지역인재 채용을 권고했다. 2018년부터는 개정된 ‘혁신도시 조성 및 발전에 관한 특별법’에 따라 지역 인재 채용을 의무화했다. 올해 기준으로 채용 인원의 30%를 지역 출신으로 뽑아야 한다. 이는 수도권 쏠림 현상을 완화해 지역의 균형 발전을 도모하고 지방대학의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한 목적이다.
그러나 공공기관이 지방으로 이전한 후 이 제도의 취지가 무색해졌다. 인재 확보와 인력의 안정적 운용은 기관의 경쟁력으로 직결되는 중요한 사안인데, 인력 확보에서부터 삐걱거려서다. 충청권으로 이전한 한 공공기관 관계자는 “본사가 수도권에 있었을 때와 달리 지방으로 내려가니 수도권 지역 인재를 우대해야 하는 상황”이라며 “전국 우수 인재들이 ‘인서울’ 대학에 모이는데 수도권에 있는 인력은 지방으로 오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토로했다.
이 기관 고위 관계자는 “이렇게까지 정주 여건이 좋지 않을 것이라곤 상상도 못 했다”며 “퇴사하는 직원들을 마냥 탓할 수만은 없는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기러기 아빠·엄마도 속출하고 있다. 자녀 학업을 이유로 가족은 서울에 살고 공공기관 직원만 지방에 내려올 수밖에 없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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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늘구멍 같은 취업 경쟁을 뚫고 입사한 후 얼마 버티지 못하고 나가는 신입 직원들도 속출한다. 한국에너지공단에 입사했다가 퇴사한 이민준(가명) 씨는 “울산은 대도시이지만 수 십년을 연고도 없는 곳에서 지인들도 못 만나고 살아야 한다니 우울증이 왔다”며 “혼자 끙끙 앓다가 돈을 버는 것도 좋지만 삶의 균형을 맞추는 게 더 중요하다고 판단해 그만뒀다”고 했다. 수도권으로 돌아가는 직원들을 비난할 수는 없다. 한국전력 관계자는 “신입 직원들은 본인이 일하게 될 기관이 지방에 있는 것을 알고 지원하지만, 실제 살아보면 현실은 다르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며 “출근 사흘 만에 그만둔 경우도 있었다”고 귀띔했다
정년 보장과 고연봉, 사회적 인정, 알찬 복리후생 등으로 신(神)의 직장이라 불리던 공공기관이지만, 지방 이전 취지를 살리기 위해선 전국 인재가 지방으로 삶의 터전을 옮기는 것을 독려하기 위한 분명한 당근이 필요하단 지적이다. 산업통상자원부 산하 한 공공기관 인사담당자는 “지방으로 이전한 후 그 지역 출신이 많이 채용된다”며 “블라인드 방식으로 채용하지만 그 지역 지원자 자체가 많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이런 상황에서 야당은 지역인재 할당 비율을 50%까지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비율을 높이기 전에 현장 목소리를 반영한 중간 점검이 요구된다. 또 공공기관과 국가 발전을 위해 과감하게 채용 기준에도 변화를 줄 용기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