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본 기업 ‘엔저’ 피해 가시화…4월 수입물가 급등
16일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일본은행이 이날 발표한 4월 기업물가지수(속보치·2015년 평균=100)는 113.5를 기록, 전년 동월대비 10% 상승했다. 이는 14개월 연속 상승세를 이어간 것일 뿐더러, 1980년 12월(10.4%) 이후 약 41년 만에 두자릿수 상승률을 기록한 것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원유 및 석유제품을 비롯해 국제 원자재 가격이 급등한 영향도 크지만, 엔화 가치가 급락하면서 물품을 수입할 때 전보다 더 비싼 가격을 치르게 된 것도 주요 원인으로 꼽혔다. 실제 엔화를 기준으로 산정한 수입물가지수 상승률은 44.6%에 달해 계약 통화를 기준으로 산정한 상승률(29.7%)을 크게 웃돌았다.
최근 한국을 비롯한 세계 대부분의 국가 통화가 달러화 강세로 변동성이 확대되고 있지만, 일본 엔화는 더욱 크게 영향을 받고 있다. 지난 3월까지 달러당 112엔 수준에 머물렀던 엔·달러 환율은 지난달 28일 2002년 4월 이후 20년 만에 130엔대를 돌파했다. 이달 들어서도 꾸준히 130엔대를 유지해 왔다. 이날은 128엔대로 소폭 하락했지만, 미국의 장기금리 상승세가 다소 진정된 덕분으로 일시적 현상에 불과하다는 진단이다.
일본철강연맹 회장인 하시모토 에이지 일본제철 사장은 지난 3월 말 “일본 제조업 역사상 처음으로 ‘엔저 리스크’가 발생했다”고 토로했다. 과거와 달리 엔화 약세로 수출기업의 가격경쟁력이 오르는 효과보다 원자재 가격 급등 부담이 더 커졌다는 설명이다.
“재정악화 부담 커”…금리인상도 환율개입도 없을 듯
엔저를 막으려면 일본은행이 기준금리를 인상해 미국과의 장기금리 격차를 좁혀야 한다. 하지만 일은은 금융완화·저금리 정책을 고수, 즉 엔저를 용인하고 있다. 장기금리인 10년물 금리 상한을 0.25%로 정하고 이 이상 오르면 무제한 사들이며 금리를 0%로 유도하고 있다.
이는 기준금리 인상시 일본 정부 재정이 급속도로 악화하는 구조 때문이다. 일본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부채 비율은 지난해 말 기준 256%로 선진국들 중 가장 높다. 부채 대부분이 국채 10년물로, 90% 가량이 자국민 소유 등 일본 안에서 소화되고 있다. 지난해 말 기준 국채 잔액은 약 1000조엔(약 9961조원)에 달한다.
이런 상황에서 금리를 1% 올리면 이자 부담이 급등하고 정부 재정이 크게 악화된다. 일본 재무성은 일은이 금리를 1~2%포인트 올리면 연간 원리금 부담이 3조 7000억~7조 5000억엔(약 36조 8800억~74조 7500억원) 증가할 것으로 추산했다.
금리 인상을 위한 명분도 취약하다. 지난 10년 간의 아베노믹스를 부정하는 셈이기 때문이다. 아베노믹스를 진두지휘해 온 구로다 하루히코 일은 총재는 지난 달 중의원 결산 행정 감시위원회에 참석해 급격한 엔화 가치 하락에 우려를 표하면서도 “(여전히) 경제 전체적으로는 플러스”라고 강조했다.
집권 자민당 내부에서 여전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아베 신조 전 총리도 지난 달 말 현재의 엔화 환율 수준에 대해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잘라 말했다. 그는 오히려 기준금리 인상으로 대응하면 “경제를 둔화시키고 스태그플레이션에 돌입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닛케이는 “엔화 가치 급락·원자재 가격 급등으로 경상수지가 적자를 기록하고, 미·일 장기금리 격차가 확대하면 엔저가 가속화 할 것”이라며 “수입물가 상승은 소비자 가격 상승으로 전가될 것”이라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