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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프리즘]제주 보육교사 살인사건, 다시 미궁 속으로

유력용의자 前택시기사 박모씨, 대법서 무죄 확정
法 "택시 탑승 여부·이동 경로 등 입증 안됐다"
2009년 발생…2016년 재수사했지만 진실 못밝혀
  • 등록 2021-10-28 오후 5:18:08

    수정 2021-10-28 오후 9:23:11

제주 보육교사 살인사건 유력 용의자로 기소됐던 박모씨. 그는 28일 대법원에서 무죄 확정 판결을 받았다. (사진=뉴시스)
[이데일리 한광범 기자] 2009년 2월 1일 새벽 3시께, 당시 제주에서 보육교사로 일하고 있던 A씨는 전날 저녁부터 친구들과 술자리를 가진 후 제주시에 위치한 남자친구의 집을 찾았다. A씨는 남자친구와 다툰 후 10여분 후 집을 나왔다. 그는 택시를 부르기 위해 콜센터에 전화를 했으나 ‘택시가 없다’는 답변을 들었다. 그는 새벽 3시 8분께 114에 전화를 걸었다가 1초만에 통화를 종료했다. A씨는 그후 종적을 감췄다.

가족들은 A씨가 귀가하지 않고 휴대전화마저 꺼져있자 다음 날인 2일 오전 경찰에 실종신고를 했다. 휴대전화 위치추적 결과 A씨 휴대전화는 1일 오전 4시께 꺼진 것으로 확인됐다.

수색에 나선 경찰은 6일 오후 한 농로변에서 휴대전화와 신분증 등이 들어있는 A씨 가방을 발견했다. 그리고 이틀 후인 8일 오후 가방 발견 장소에서 24㎞ 떨어진 한 도로 인근 배수로에서 A씨 시신을 발견했다. 속옷이 벗겨진 상태였다. 부검 결과 목졸림에 의한 질식사였다. 성폭행 흔적은 발견되지 않았다.

사망추정 시간, 2월 7일→재수사 2월 1일 변경

경찰은 A씨의 시신이 발견되자 수사에 나섰다. A씨가 실종 당일 114에 전화해 다른 콜택시 업체 전화번호를 문의하려다가 때마침 지나가던 택시에 승차했을 것이라는 것이 경찰의 추정이었다. A씨를 태운 택시기사가 취한 A씨를 성폭행하려다 미수에 그친 후 살해했을 것으로 판단했다.

이 같은 추정을 토대로 제주도 내 택시 중 해당 시간대에 예상추정 경로를 지난 박모씨를 찾았다. 경찰은 박씨의 개인용 및 업무용 휴대전화 내에 1월 31일부터 2월 1일까지의 통화내역이 삭제됐고, 차량 종류 역시 CCTV 영상 분석에서 확인된 차량과 유사한 점 등을 근거로 박씨를 유력 용의자로 지목했다.

특히 박씨의 옷에선 피해자의 몸에서 발견된 것과 유사한 면섬유가, 또 택시 트렁크에선 피해자가 입었던 무스탕의 털과 유사한 동물털이 발견된 점도 유력 용의자로 특정한 배경이 됐다.

하지만 A씨의 사망시점에 대한 부검 결과가 나오자 경찰은 당황했다. 부검의는 시신의 상태 등을 통해 A씨의 사망시점을 시신 발견 시점으로부터 24시간 이내로 추정했다. 2월 7일 이후 사망했다는 결론이었다. 결국 실종 당일 사망을 전제로 하던 경찰 수사는 사실상 중단됐다.

수사를 피한 박씨는 사건 발생 1년 5개월이 지난 2010년 7월 제주를 떠났다. 전국 각지를 돌며 사실상 은거생활을 했다. 그는 주민등록이 말소됐고 적성검사를 받지 않아 운전면허가 취소되기도 했다. 휴대전화도 동거인 명의만 이용했다.

이 같은 상황에서 경찰 수사는 2016년 사망시점에 대한 새로운 감정 결과가 나오면 전환점을 맞이했다. 동물실험 등을 통해 A씨 사망 추정시간이 7일이 아닌 실종 당일로 나온 것이다.

경찰은 박씨를 다시 유력한 용의자로 보고 수사에 나서 강간살인 등의 혐의로 검찰에 송치했다. 검찰도 2018년 12월 박씨를 구속해 2019년 1월 재판에 넘겼다. 하지만 박씨는 수사기관에서부터 법정에 이르기까지 혐의를 강력히 부인했다.

직접 증거 없어…미세섬유 유죄 근거 안돼

쟁점은 DNA 등 직접적 증거가 없는 상황에서 동선에 대한 추정과 발견된 미세 섬유의 유사성 만으로 유죄를 인정할 수 있는지 여부였다. 검찰의 주장을 받아들여지기 위해선 일단 △피해자의 박씨 택시 탑승 △발견된 미세섬유의 동일성 등이 의심의 여지 없이 입증돼야 했다.

하지만 법원은 그 같은 입증이 되지 않았다며 박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우선 A씨가 당일 박씨 택시 아닌 다른 차량에 탑승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특히 수사 과정에서 다른 택시기사가 A씨 실종 장소 인근에서 20대 여성을 태워 A씨가 근무하던 어린이집 인근에서 내려준 적이 있다고 제보했음에도 이에 대한 추가 조사를 진행하지 않은 점을 문제 삼았다.

법원은 아울러 피해자의 몸에서 발견된 섬유 중 극히 일부만 박씨가 착용한 의류와 유사하고, 이들 섬유가 박씨가 아닌 다른 사람을 통해 옮겨졌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며 “박씨와 A씨 사이에 신체접촉에 있었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결론 냈다.

아울러 CCTV 영상 자체가 판독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박씨가 운행한 택시가 수사기관이 추정한 이동 경로를 지나갔다거나, 검찰이 추정한 운행경로를 살인범이 지났다고 단정할 수도 없다고 판단했다.

박씨는 2019년 7월 1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고 석방됐다. 검찰이 항소했지만 2심의 결론도 같았다. 대법원도 28일 검찰의 상고를 기각하고 박씨에 대한 무죄 판결을 확정했다.

유족들은 대법원 선고를 앞두고 지난 9월 청와대 국민청원을 통해 박씨에 대한 유죄 판결을 호소했지만 이번 판결로 사건은 다시 미제 사건으로 전환됐다. 일사부재리 원칙에 따라 향후 명확한 물증이 나오더라도 박씨에 대한 처벌은 불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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