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국내 ESS만 잇단 화재…억울한 배터리업계

정부 대책에도 최근 3건 불…원인 누명에 속앓이
삼성SDI·LG화학, 배터리 셀 해외선 無무사고
업계선 관리시스템 문제 가능성 등에 무게
해외선 시공부터 안전대책·종합관리 의무화
업계 "정부, 화재 방지대책 이행 확인 필요"
  • 등록 2019-10-01 오후 5:36:28

    수정 2019-10-02 오전 9:04:16

그래픽=이데일리 이동훈 기자.
[이데일리 김미경·김형욱 기자] 미래 신성장산업으로 주목받고 있는 에너지저장장치(ESS·Energy Storage System) 시설에서 또다시 원인을 알 수 없는 불이 나면서 ESS 핵심부품인 배터리 제조사들이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지난 6월 정부가 ESS 시설 화재와 관련 “배터리 자체결함이 아니다”라는 결론을 낸 뒤 이번 사고 역시 원인 규명 전인데도 마치 배터리 결함에 의한 화재처럼 비춰지고 있어서다. 배터리업계는 “같은 배터리 셀을 사용한 해외 ESS에서는 화재가 전무하다”며 환경이나 운영·관리시스템의 문제가 크다고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다. 현재 사고 원인 조사를 벌이고 있는 정부는 “관계기관과 협력해 조속히 조사를 완료하겠다”고 밝혔다.

최근 한 달 새 ESS 화재 집중…배터리업계 속앓이

1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지난 6월 정부가 화재원인 조사 결과와 안전강화 대책을 발표한 이후에도 3건의 화재가 추가로 발생, 논란이 커지고 있다. 지난달 30일 충남 예산군 태양광 발전 연계 ESS 화재에 이어 지난 24일에는 강원 평창군 풍력발전소 ESS에서 화재가 났다. 닷새 만인 29일에는 경북 군위군 태양광발전소 ESS에서 불이 났다. 이 중 2건은 LG화학 배터리를 탑재한 ESS에서 발생했으며 1건은 삼성SDI 배터리를 채택했다. 모두 정확한 화재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다.

ESS는 태양광·풍력발전으로 생산된 전기나 값싼 심야 전기를 배터리에 저장했다가 필요할 때 쓸 수 있도록 하는 저장 장치다. 날씨 등에 따라 생산량이 들쭉날쭉할 수밖에 없는 재생에너지 특유의 간헐성 문제를 해소할 수 있어 정부의 에너지전환 정책과 함께 빠른 속도로 보급됐다.

배터리 업계에서는 △해외에서의 ESS 화재는 전무한 반면 국내에서만 불이 발생한다는 점 △ESS는 다중시설로 다양한 화재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원인이 배터리 결함처럼 호도되는 점 △정부가 관리대책 방향만 제시했을 뿐 실행 단계까지 관리감독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 등을 들어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다.

삼성SDI에 따르면 지난 10년간 미국 등 주요 선진 시장에서 ESS 프로젝트들을 수주해왔고, 해외 ESS에 누적 60억개가 넘는 배터리를 공급해왔지만 화재로 문제가 된 적은 없다. LG화학 역시 해외 주요시장에서 굵직한 ESS 프로젝트를 진행했으나 화재 발생은 없었다.

삼성SDI와 LG화학은 설치 과정에서나 혹은 운영상 안전 가이드를 충분히 이행하지 못했을 가능성, 관리 시스템에서 문제가 생겼을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ESS는 배터리 외 전력변환장치(PCS)와 관리제어 소프트웨어인 전지관리시스템(BMS), 에너지관리시스템(EMS) 등으로 구성돼있는 만큼 각 단계마다 유기적으로 잘 관리돼야 하기 때문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ESS는 각각 장치가 복합적으로 구성, 다루는 업체도 모두 다른 다중설비”라며 “해외에서의 ESS 화재는 전무한 반면 국내에서만 불이 발생한다는 점은 운영상의 문제가 영향을 줬다고 볼 수 있다. 배터리 자체 결함보다는 건설 과정과 관리 및 운영시스템 등에 대한 요인이 커 보인다”고 지적했다.

해외선 시공부터 관리까지 의무…안일 정책에 ESS산업 치명상

ESS 설비에 불이 난 건 2017년 8월부터 지금까지 26건에 이른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잇단 화재로 지난해 12월 전기·배터리·화재 분야 전문가 19명으로 민관합동조사위원회를 꾸려 5개월 가까이 조사를 벌였고, 지난 6월 배터리 자체 결함보다는 △배터리 보호시스템 미흡 △운영환경 관리 미흡 △설치 부주의 △통합제어 미흡 등 ‘복합적’ 이유를 화재 원인으로 지목했다. 이를 토대로 ESS 제조·설치·운영 단계의 안전관리를 강화하고, 소방기준 신설을 통해 종합 안전강화 대책을 시행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최근 세 차례나 화재가 발생하면서 애초 정부의 화재원인 조사가 부실했거나 고강도 대책이 제대로 시행되지 않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해외에서는 국내와 달리 ESS 운영 기준이 까다롭고 관리 감독도 철저하다는 게 업계 설명이다. 업계 관계자는 “해외의 경우 아파트를 지을 때처럼 안전시공부터 설비 과정, 시공 후 감리제도까지 제3자가 객관적으로 감독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온도, 이물질, 습도 등 오퍼레이션 기준은 물론 설치 가이드라인(허가) 기준도 허술한 국내와 차이가 난다. ESS 컨테이너 간 이격거리 6m 확보, 콘크리트 방화벽 설치 의무화 등이 그것”이라면서 “건설과 함께 각종 안전대책을 수립해 인프라를 구축하고 안전성을 높이는 게 최우선이다. 해외에서 더 많은 ESS가 예전부터 활용되고 있지만 화재사고를 찾아보기 어려운 이유”라고 말했다.

실제 민관합동조사위는 이번 화재대책 수립 때 이 같은 해외 사례를 벤치마킹했다. 배터리업체 한 관계자는 “현재 정부는 화재방지 대책만 제시했을 뿐 실제 관리감독이 되고 있는지 의심스럽다”며 “정부의 ESS 화재 방지 대책이 잘 지켜지고 있는지 제대로 점검해 종합 솔루션을 내놔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일각에선 정부가 ESS의 양적 성장에만 몰두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익명을 요구한 전문가는 “ESS를 설치하면 평균 30% 정도의 전기요금을 감면해주는 등 정부가 최소한의 안전 기준도 없이 무리하게 ESS 보급을 밀어붙인 결과”라며 “정부의 안일한 정책에 산업 자체가 회생불능 수준의 치명상을 입고 있다. 7일 열리는 국감에는 기업 수장이 아닌 정부가 질타를 받아야 하는 게 맞다”고 비판했다.

산업통상자원부 관계자는 “국립과학수사원, 소방청 등 관계기관과 함께 가능한 빠른 시일 내 원인 조사를 마치려 하고 있다”며 “아직 정확한 원인은 파악하는 중이지만 지난 6월11일 발표한 안전강화 대책 추진 중 발생한 사고인 만큼 빨리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지난 8월30일 충남 예산군 광시면 미곡리 소재 에너지저장장치(ESS)에서 불길이 치솟고 있다(사진=예산소방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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