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文정부, 지소미아 종료 유예로 세가지 잃었다

日 '수출규제 철회' 확답없이 유예 결정..순진한 판단
내년 4월 총선 앞두고 진보지지층 이탈 우려
'美 눈치보지 말라'는 北에 빌미줘..금강산 재개 요원
연말까지 결단해야..시간끌면 '최악의 외교 실패사례'
  • 등록 2019-11-25 오후 4:48:31

    수정 2019-11-25 오후 4:48:31

지난 23일 오후 서울 청와대 사랑채 앞에서 열린 정부의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조건부 연장 결정 규탄 기자회견에서 김명환 민주노총 위원장이 발언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데일리 이승현 기자] 정부가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종료를 조건부 유예하면서 후폭풍이 거세다. 예상치 못한 결정이 나온데다 우리 정부의 결정 유예 발표 이후 일본이 우리의 발표와 다른 언행을 보여주면서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외교가에서는 일본 얘기의 진실 여부를 떠나 이런 환경을 만든 우리 정부의 외교정책이 안일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우리 정부가 시종일관 주장한 지소미아 종료 철회의 조건은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 철회였다. 하지만 이번에 종료 유예 결정을 하면서 내민 조건은 수출규제 조치 관련 대화를 시작한다는 것이었다. 일본이 수출규제 조치를 철회하겠다는 아무런 확답없이 대화 시작만으로 종료 결정을 미룬 것이다. 당장 일본은 수출규제 조치에 대한 입장 변화가 없다는 식의 얘기도 흘리고 있다. 단순히 대화를 재개하는 것은 지소미아를 종료한 후에도 언제든 할 수 있는 일이다. 정부는 그동안 지소미아 종료 후에도 일본의 태도 변화만 있으면 언제든 지소미아를 복원할 수 있다고 공언해 왔다. 굳이 예상치 못한 종료 유예 결정으로 국민 자존심에 상처를 낼 필요가 없었다는 얘기다. 또 일본의 이중적 태도를 보며 우리 정부가 치열한 외교 현장에서 너무 순진한 판단을 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번 결정은 또한 문재인 정부의 핵심 지지층인 진보세력의 마음을 돌아서게 했다. 진보층은 지소미아 종료 결정에 대해 높은 지지를 보냈다. 정부의 발표 이후 온라인상에서는 문 정부에 대한 지지철회를 표명하는 의견이 다수 개진됐다. 실제 진보성향 600여개 단체로 구성된 ‘아베규탄 시민행동’은 지난 23일 청와대 앞에서 ‘지소미아 종료 번복 문재인 정권 규탄 회견’을 열었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과 참여연대 역시 비판 논평을 내놨다. 이같은 진보층의 움직임은 당장 내년 4월 총선을 치러야 하는 더불어민주당에게도 적잖은 부담이 되고 있다. 게다가 민주당은 이해찬 당대표까지 나서 지소미아 종료의 정당성을 설파해 온 터라 입장이 더 머쓱하게 됐다.

마지막으로 북한과의 관계 개선은 더 멀어지게 됐다. 특히 최근 정부가 공을 들인 금강산 관광 재개에 결정적인 악영향을 미칠 것으로 우려된다. 북한은 남한에 대해 금강산 문제를 포함해 계속해서 미국의 눈치를 보며 끌려다닌다는 지적을 해 왔다. 그래서 직접 대화 상대를 할 수 없다는 말도 해 왔다. 이번 지소미아 종료 유예 결정 역시 미국의 압력에 굴복했다는 지적이 나오는 만큼 북한에겐 탐탁지 않은 소식일 수 밖에 없다. 김연철 통일부장관이 취임 후 첫 방미을 통해 남북관계의 중요성을 미국 인사들에게 강조하며 남북관계 개선에 나섰지만 이번 결정으로 허사가 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이번 지소미아 종료 유예 결정을 두고 한 외교전문가는 “지소미아는 시작을 하지 말았어야 했고, 일단 시작했으면 종료하지 말아야 했고, 종료한다고 했으면 그 결정을 번복하지 말아야 하는데 정부는 이 세가지 잘못을 모두 저질렀다”며 “국가간의 약속과 결정을 이렇게 상황 논리에 따라 손바닥 뒤집듯 뒤집는 것은 외교적 불신을 가중시킬 수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제 우리 정부에겐 딱 한번의 기회가 남았다. 올해 안에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 철회를 받아내거나 지소미아 종료 결정을 내리는 결단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 시간끌기 전략을 펼칠 일본에게 질질 끌려가는 모습을 보여준다면 지소미아는 문재인 정부 최악의 외교 실패 사례로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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