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태우 정부, 89년 헝가리 수교에 거액 차관 제공

1988~1989년 외교문서 24만쪽 분량 공개
1억2500만달러 선지급 후 수교…6억5000만달러의 경협자금 제공
일왕 방한 추진도…임수경 방북 사건은 누락 논란
  • 등록 2020-03-31 오후 6:14:23

    수정 2020-03-31 오후 6:18:49

최호중 당시 외무부 장관(앞줄 오른쪽)과 호른 줄러 헝가리 외무부 차관이 1989년 2월 1일 서울에서 국교수립의정서를 교환하고 있다.ㄱ
[이데일리 하지나 기자] 20세기 후반 냉전체제의 붕괴 속 들어선 노태우 정권은 북방정책을 강력하게 추진했다. 당시 7.7 특별선언으로 뒷받침되는 대북포용정책과 소련을 비롯해 동국권 국가들과 적극적으로 수교를 맺은 것이 대표적이다. 특히 노태우 정부는 1989년 2월 동유럽 국가 중 첫번째로 헝가리와 수교를 맺기 위해 1억2500만달러의 은행차관을 제공한 사실이 드러났다.

31일 외교부가 공개한 1988~1989년 비밀 외교문서에 따르면, 정부는 1988년 8월 헝가리 측에 △직접투자 자금지원 2억 달러 △연불수출(외상수출)1억1250만 달러 △전대차관 2500만 달러 △대외경제협력기금 5000만 달러 △은행차관 2억 5000만달러 등 6억5000만 달러의 경협 자금을 제공하기로 합의했다. 특히 이 중 은행차관의 절반인 1억2500만 달러를 먼저 헝가리에 제공한 뒤 수교를 하기로 했다.

실제로 그해 12월 외환은행과 산업은행 등 8개 은행이 헝가리 중앙은행에 1억2500만 달러 규모의 차관을 제공한다는 계약을 맺었다. 한국과 헝가리는 1989년 2월 1일 수교를 맺었다.

당초 북한과의 우호적 관계를 맺고 있던 헝가리측은 80년대초 수교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였다. 하지만 심각한 경제난으로 입장을 바꿨다. 우리 정부 역시 헝가리의 무리한 요구에도 불구하고 국교 수립에 따른 파급효과를 고려했을 때 수교를 성사시키는 방향으로 추진했던 것으로 보인다. 당초 헝가리가 요구한 경협자금은 15억 달러였던 것으로 알려진다.

특히 한·헝가리 수교에 북한은 강력 반발했다. 북한과 헝가리 간에는 대사 본국 소환, 외교관계 격하, 공관 축소 등의 후폭풍이 상당했다.

외교문서에는 노태우 정부가 한일 관계 개선을 위해 일왕을 초청하는 방안을 추진했던 내용도 담겼다. 당시 일본에서도 일왕의 방한에 대해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던 것으로 전해진다. 실제로 아키히토 일왕은 1990년 노 대통령 방일 회동 시 만찬사에서 “일본에 의해 초래된 이 불행했던 시기에 귀국의 국민들이 겪으셨던 고통을 생각하며 통석의 염을 금할 수 없다”고 발언하기도 했다. 하지만 국내 반대 여론이 높아 결국 무산됐다.

한편 이번에 공개된 외교문서에 1989년에 발생한 ‘임수경 무단 방북 사건’이 대거 빠지면서 논란이 제기됐다. 이는 지난 1989년 6월 30일부터 8월 15일까지 한국외대 불어과 학생 임수경씨가 북한을 무단으로 방문한 사건이다. 공개된 외교문서에는 남미 페루 주재 리인춘 당시 북한통상대표가 한국 대사에게 임수경 구속에 항의하는 내용은 포함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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