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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뉴욕 월가를 지배하고 있는 키워드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당선인을 필두로 경제정책의 양대 수장인 재닛 옐런 재무장관 후보자와 제롬 파월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이 연일 천문학적인 돈 풀기를 예고하고 있어서다. 현재 달러화 가치는 올해 고점 대비 10% 넘게 급락했는데, 내년 역시 그 이상 떨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다수다. 과거 글로벌 금융위기를 전후한 초(超) 약달러 시대가 다시 올 수 있다는 관측이 적지 않다.
8개월 만에 11.4% 폭락한 달러화
2일(현지시간) 마켓포인트에 따르면 이날 주요 6개국 통화 대비 미국 달러화 가치를 나타내는 달러인덱스는 91.12를 나타냈다. 장중 90.99까지 떨어졌다. 2018년 4월 초 90대가 무너진 이후 2년8개월 만에 가장 낮은 수준이다. 올해 고점인 3월20일과 비교하면 8개월여 만에 11.36% 하락한 것이다. 달러화처럼 글로벌 수요가 공고하고 가치가 안정적인 기축통화가 이 정도 떨어지는 게 흔한 일은 아니다.
약달러는 팬데믹 이후 추세적인 흐름으로 굳어졌다. 달러화는 코로나19 확산 초기만 해도 안전자산 매력이 부상하며 가치가 급등했으나, 그 이후 재정·통화당국의 돈 풀기로 급락했다. 원·달러 환율이 3월19일 당시 1285.70원까지 폭등(원화 가치 하락·달러화 가치 상승)했다가, 다시 1100원선이 깨진 것은 이 때문이다.
백악관 경제자문위원에 지명된 바이든 당선인의 오랜 경제참모 재러드 번스타인은 최근 한 컨퍼런스에서 “코로나19 이후 어마어마한 돈을 풀고 있는 데 따른 재정 압박이 있다”면서도 “기후 변화와 보육 분야에 재정을 많이 투입할 것”이라고 했다. 보육 지원이 이뤄져야 노동시장에 인력 공급이 많아지고, 이는 장기적인 성장을 담보할 수 있다는 논리다.
게다가 재무장관 후보자는 비둘기이자 케인스주의자인 옐런이다. 그는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2010년부터 4년간 연준 부의장을, 그 이후 4년간 연준 의장을 각각 맡았다. 그가 수뇌부로 연준을 이끄는 동안 달러인덱스는 줄곧 70~80대를 보였다. ‘달러 바주카포’를 쏠 여지가 있다고 여길 수 있는 셈이다. 옐런 후보자는 전날 기자회견에서 “긴급 행동이 필요하다”며 의회의 코로나19 부양책 처리를 압박했다.
그는 특히 연준 재직 시절 통화정책의 책무인 인플레이션(물가 안정)과 고용 안정 중 고용 쪽에 더 무게를 둔다는 평가를 받았다. 금융위기를 전후해 2014년까지 이어진 약달러 시대가 도래할 수 있다는 관측이 일찌감치 나오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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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의 또 다른 축인 연준의 스탠스 역시 비슷하다. 이날 달러화 가치가 재차 떨어진 건 파월 의장의 하원 출석 발언에 영향을 받은 것이다. 그는 “연준의 지원을 철회하는 건 이르다”며 “더는 필요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 때까지 상당한 부양을 제공할 것”이라고 했다. 팬데믹 이후 무차별 양적완화(QE)를 통해 경제 재건의 선봉에 선 연준의 역할이 끝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파월 의장은 그간 돈 풀기에 따른 인플레이션 우려에 대해서는 ‘인내하겠다’는 의지를 분명하게 드러내 왔다. 옐런 후보자와 정책 방향 자체가 비슷한 셈이다. 월가 일각에서는 이미 ‘옐런-파월’ 밀월 관계에 대한 기대감이 적잖이 나온다.
피델리티의 살만 마흐메드 글로벌매크로 본부장은 “달러화가 과도하게 넘치고 있다”며 “(백신 등으로 경제 회복이 가시화하면) 리플레이션(디플레이션에서 벗어났지만 심각한 인플레이션까지 가지는 않은 상태) 국면에서 유동성은 더 위험한 자산으로 갈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