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오늘 하루는 버티는데 내일은 어쩌죠"… 지상조업사의 눈물

"사스·메르스 때도 이 정도는 아냐"…비행 70% 줄어
최저임금 받는 지상조업사…"월급 60만~70만원 줄어"
공항공사, 각종 사용료 납부 면제 요청에도 `묵북부답`
  • 등록 2020-03-11 오후 6:38:42

    수정 2020-03-11 오후 8:30:19

인천국제공항 활주로에 비행기들이 줄지어 서 있다. (사진=송승현 기자)
[인천=이데일리 송승현 기자] “우리같이 최저임금 받으면서 몸으로 일하는 사람들의 현장 목소리는 잘 들어주지 않더라고요.” (인천공항공사에서 근무하는 한 지상조업사 노동자)

지난 10일 오후 비가 부슬부슬 내려 안개가 자욱한 인천시 중구 인천국제공항 활주로는 국가적 재난 상황을 방불케 할 만큼 고요했다. 평소라면 항공기가 이착륙하는 모습과 항공 수하물을 운반하는 차량으로 분주한 풍경을 보였겠지만, 20~30대의 항공기가 나란히 줄지어 선 모습은 활주로의 풍경이 아닌 항공기 전시장을 연상케 했다.

12년째 인천공항에서 청소 업무를 해온 서숙자(63)씨는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SARS·사스),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 사태만 해도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다”며 고개를 저었다.

항공업계가 비상시국이다. 항공업계라고 하면 흔히 조종사와 승무원을 떠올리지만, 항공기 운항을 위해서는 수하물 상·하차와 기내 청소, 항공기 급유 등 오히려 지상조업사의 손길이 더 큰 비중을 차지한다. 쉽게 말해 항공기가 지상에 있을 때 모든 일은 지상조업사의 손에서 이뤄진다고 볼 수 있다. 현재 인천공항에는 지상조업사들과 그 협력 업체들을 합해 만명이 넘는 인원이 지상조업을 수행하고 있다.

지상조업사들은 말 그대로 창사 이래 최대 위기에 놓여 있다. 지난 10일 기준 전국 8개 공항의 조업 항공기는 670여대로 기존 계획보다 70% 가량 감소했다. 항공기가 뜨지 못하자 지상조업 근로자들도 일손을 멈췄다. 지상조업 근로자들은 대게 최저임금을 받는다. 하지만 인천공항이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해 그야말로 ‘개점 휴업’에 가까운 상태에 접어들자 그마저도 제대로 받을 수 있을지 걱정하는 처지에 놓이게 됐다.

항공기 수하물 상·하차 일을 하는 이두영(35)씨는 “항공기가 대거 비운항에 들어가면서 연장근로수당이 아예 사라졌다”며 “월급도 60만~70만원 줄었고, 지난달에는 6일 밖에 근무를 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씨는 코로나19 사태로 임금이 대폭 줄어들게 되자 올해 초 부인과 세운 자녀 계획도 포기했다.

10일 인천국제공항 매표소에 사람이 없이 한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사진=송승현 기자)
30년째 지상조업 업무를 하고 있는 하인택(55)씨는 매일같이 직원들에게 일터에 나오지 말라고 전화를 돌리는 게 일상이 됐다. 노사가 합의해 1개월 무급휴직에 합의했기 때문이다. 하씨는 “오히려 일을 나오면 안 되겠냐고 전화를 먼저 하는 직원들도 있다”며 “차라리 몸이 고된 게 낫지, 지금은 심적으로 너무 힘들다. 할 일이 못 된다”고 눈물을 보였다.

항공업계 불황으로 지상조업사들은 직원들 임금을 챙겨줄 여력도 없게 됐지만, 매달 인천공항에 내야 하는 각종 사용료는 정률 지급에 따라 평상시와 마찬가지로 납부해야 한다. 지상조업 5개사는 지난해 기준 인천공항에 계류장사용료, 구내영업료, 시설사용료 등을 합해 590억원 가량을 냈다.

특히 인천공항 급유시설 관리를 위탁받은 지상조업사 아시아나에어포트의 걱정은 이만저만이 아니다. 에어포트에 따르면 지난해 인천공항 급유시설 일일평균출하량 493만겔런이었지만, 지난 9일 기준 일일평균출하량은 174만겔런으로 64.7%가 줄었다. 다시 말해 매출이 60% 넘게 빠졌다.

결국 에어포트는 직원들에게 매달 10일 지급하기로 한 출퇴근 교통비 지급을 이날 잠정 연기한다고 공지했다. 당장 교통비조차 지급할 자금이 없는 상황인데, 매달 인천공항에 내야하는 급유 관련 운영비 30여억원을 마련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지상조업사의 어려움이 극에 달하자 5개사는 공동으로 비상대책위를 구성하고 인천공항공사에 두 차례에 걸쳐 구내영업료, 계류장사용료 등에 대한 납부 면제를 요청했다. 하지만 인천공항공사는 ‘국토부와 협의가 필요한 사항’이라는 답만 되풀이하고 있다.

평상시 휴대폰 충전을 위해 붐볐던 인천국제공항 로비가 10 일코로나19로 인해 한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사진=송승현 기자)
다른 지방공항을 관리하는 한국공항공사는 “수용이 어렵다”고 선을 그은 상황이다. 국토교통부와 공항들이 항공사를 대상으로 3000억원의 긴급자금 지원과 공항사용료·수수료 감면 등 긴급 지원방안 대책을 내놓은 것과는 대조적이다. 지상조업사들은 피해지원 ‘사각지대’에 놓이면서 생존 자체를 걱정해야 하는 처지인 것이다. 노은준 아시아나에어포트 상무는 “창사 30년 동안 벌어들인 영업이익을 단 두 달 만에 소진하게 될 상황”이라며 “구조조정이라는 최악의 시나리오도 걱정해야 할 처지”라고 하소연했다.

인천공항 사무실에서 만난 한 노동자는 “코로나19는 천재지변과 같은 상황인데도 국회는 선거 때문에 관심이 없고, 정부는 검토하겠다는 말만 하고 있다”며 “규모가 큰 항공사만 관심을 갖지 우리 같이 최저임금을 받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현장 목소리는 귀 기울이지 않는다”고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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